조슬기나기자
이희자 루펜리 대표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매일 오전 5시면 눈을 뜬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침대 옆 노트를 펼치고 볼펜을 드는 것.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몇 페이지를 빼곡히 채운다. 마치 스스로 세뇌라도 하듯. 그렇게 흐른 시간이 3년여, 어느덧 그의 침대 옆에는 다 쓴 노트 3~4권이 쌓였다. "회사가 어려워 졌을 땐 사람들을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 모든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심으로, 절실하게요." 한 때 '벤처계 신데렐라'로 불렸던 여성 대표 최고경영자(CEO), 이희자 루펜리 대표(59·사진)의 이야기다.이 대표는 10년 전인 2003년 주부에서 사업가로 변신, 음식물 처리기 한 대로 '성공한 여성 CEO' 반열에 올랐다. 이제는 익숙해진 '처리기'라는 단어를 그가 최초로 만든 셈이다. 회사 설립 5년 만에 매출 1000억원대를 돌파하고 승승장구하는 듯 했던 그의 사업가 인생은 2008년께 벽에 부딪혔다. 한 방송사에서 방영한 전기세 관련 고발프로그램 배경화면에 루펜리의 제품이 나오며 국내 영업이 사실상 중단된 것이다. 여기에 2007년 2000억원대에 달했던 음식물처리기 시장이 2009년 500억원대로 쪼그라들며 그의 행보도 발목을 잡혔다.어려워지자 당장 은행권에서부터 독촉이 시작됐다. 매출은 급락했다. 동고동락했던 임직원들은 하나, 둘 그를 떠나, 일부는 라이벌사에서 그를 공격해댔다. 이 대표는 "기업을, 경영을 쉽게 본 값을 치렀다고 생각한다"며 "10년차가 된 지금은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말했다. 힘든 기간 그를 버티게 했던 것은 책임감이었다. 그는 "여성 CEO이기에 더 주목받은 장점도 있지만, 어려운 시기에는 더 꼬리표가 달리기도 했다. 지난 몇년 간 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많았을 것"이라면서도 "수많은 여성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만큼, 무너지면 안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매일 아침 노트에 감사하다는 글을 빼곡히 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그래야만 내 마음도 편해지고 일도 잘 풀릴 것 같았다"며 "그간 내 제품이 최고인 냥 잘난척 했다. 시행착오를 겪은 이제는 진심으로 절실히 모두에게 감사한다"고 미소 지었다. 2000년대 중후반 성공가도를 달릴 때 출판했던 자서전에 시선이 닿자,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열정은 넘쳤지만 성숙함은 부족했던 시기"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어려웠던 시기에는 그만큼 유혹도 많았다. 이 대표는 "루펜리를 팔아라, 녹즙기에 이름만 붙여 함께 출시하자 등 수많은 유혹이 다가왔다"면서도 "개발하지 않은 제품에 이름만을 붙여 팔고 싶지는 않았다. 이걸 딛고 도약해야 내게 제대로 된 '성공한 CEO'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대신 이 대표는 그 자신이나 다름없는 처리기 개발에만 몰두했다. 그는 "훨씬 저렴하게, 더욱 친환경적으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을 원했다"며 "몇 년간에 걸쳐 개발을 완료했고 내년 출시 예정이다. 혁신이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49년을 평범한 여성이자 주부로만 살아온 그가 사업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슨 일이든 진심을 다해야 한다는 그의 지론과 실천이 있었다. 이 대표는 "최선을 다했는데 안됐다는 말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최선을 다하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최선을 다했는데 안됐다란 말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며 "분명 무언가를 끝까지 하지 않았기에 일이 안된 것"이라고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CEO도 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겨선수로 세계 1위의 자리에 우뚝 선 김연아를 가리키며 "김 선수가 피눈물 나는 훈련을 매일매일 겪고서야 정상에 갈 수 있었던 것처럼, CEO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느덧 10년차가 된 그는 "10년이면 이제부터 시작이라더라"고 환히 웃었다. 이어 "지난 10년 간 상처도 받았지만 겁난 적은 없었다"며 "겁이 나도 겁나선 안된다고 스스로에게 항상 말했다. 겁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