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무거움에 관하여

많은 부처들은 돌이나 금속의 몸을 입고 있다. 처음에 깨달음을 얻었던 석가모니 부처는 나와 같은 살을 가진 존재였다는 걸 때로 잊을 만큼, 나는 돌부처와 금동부처들에 익숙하다. 깨달은 존재의 몸을 금석(金石)으로 만들 생각을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는 시간이 흐르면 허물어지는 인간의 살이 아니라, 영원한 살을 꿈꾸었으리라. 100년의 안쪽에서 깜박거리는 존재가 아니라 1000년을 넘어서는 영원한 몸을 그 돌과 그 청동에 불어넣고 싶었으리라. 그런데, 돌과 청동이 지닌 뜻은 '영원의 꿈'만은 아니다. 세월을 견디는 그 강하고 단단한 속성은, 자연스럽게 부처의 체중을 높였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돌부처와 금동부처는 무척이나 무거운 존재라는 얘기다. 깨달음과 무거움, 관련 없는 이항(二項)일까. 부처의 무거움. 부처를 경배하러 온 사람들은 돌이나 청동을 경배하러 온 건 아니다. 깨달음으로 나아간 사람의 어떤 상징과 의미와 기운을 만나러 온 것이다. 불상 앞에 있노라면 대개 고요를 느낀다. 돌이나 청동이 스스로 소란을 만들어 내는 법이 없으니 고요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보다도 미묘한 표정에서 우러나는 고요, 안정감 있는 자세와 편안한 몸짓이 주는 고요, 그리고 돌과 청동의 묵중함이 자아내는 고요가 공간 전부를 고요하게 한다. 시앗싸움에 돌부처가 돌아앉는다는 말이 있지만, 그만큼 처첩의 갈등은 보기 흉하다는 걸 강조하는 말이다. 결코 돌아앉을 수 없는 대상 1호로 돌부처를 꼽았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돌부처는 돌이기도 하지만, 결코 돌아앉지 않을 거라는 신뢰를 지닌 무게감으로 앉은 부처이기 때문이다.  돌의 무거움은, 부처를 새긴 질료의 무거움이기도 하지만, 깨달음의 무거움,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깨달음의 안정감이기도 하다. 깨달음은 이제 막 돋아나는 미소와 어딘지 모르게 슬픈 표정들로 꽉 차 있다. 미소는 자비의 자(慈)이다. 내가 아끼는 타인이 잘되었음을 기뻐하는 마음이다. 슬픔은 자비의 비(悲)인데, 내가 아끼는 타인이 괴로워할 때 그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마음들은 모두 자신을 향해 있는 게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이다. 돌부처는 타인을 바라보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을 영원히 새겨 놓은 것이다. 그 마음은 가볍게 변하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우린 돌부처가 자기를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오직 모든 이의 말을 듣고 빙긋이 웃어 줄 뿐이다.  인도에서 스승을 의미하는 말인, 구루(guru)는 '무겁다'는 의미를 지닌 산스크리트어다. 스승은 왜 무거운가. 그는 오랜 수련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중심돌을 쌓아 왔기 때문이다. 탐욕과 분노는 그 무게중심에 생긴 문제이다. 세상의 변화, 혹은 환경과 인심의 변화에 따라 본질이 흔들리는 것은, 중심이 저 무거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깨달음은 하나다. 삶은 짧고 괴롭다. 그것을 가장 길고 행복하게 쓰는 방법은 너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베푸는 일이다. 너 자신에게 쓰면 너는 가벼워진다. 너의 몸과 마음이 너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너를 쓰면 너는 무거워진다. 많은 사람들이 변함없는 너를 쓸 수 있으려면 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꿀벌은 꽃 속의 꿀을 한 번에 한 방울씩 꺼내 온다. 그런 다음 봉방(蜂房)에 그 화밀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는 벌집 위에 떠서 날개로 부채질을 한다. 이런 건조작업으로 화밀은 90% 이상의 수분이 증발하고 밀정(蜜精)이 남게 된다. 이 일이 끝나면 벌은 다시 화밀 한 방울을 꽃에서 봉방으로 운반한다. 다시 날개로 부채질을 한다. 묵직한 벌통은, 꿀벌들이 수백만 번을 날아서 따온 꿀들의 무게이다.  돌부처와 구루의 무게에는 저 무수한 날갯짓이 숨어 있다. 내부에 중심돌을 쌓는 일은, 그저 단순한 무위(無爲)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하나 고뇌와 성찰과 단련의 결과이다. 자기애(愛)에서 빚어지는 온갖 인간적인 가벼움들 모두가 마음을 흔들고 훔치고 빼앗는 강도이며 도둑들이다. 돌처럼 꾹 눌러앉아 꿈쩍 않는 무게. 가벼움으로 다들 몰려가는 세상에서, 늘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저 묵직한 구루가 그립다.   <향상(香象)><ⓒ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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