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이사를 했다. 딱 2년 만이다. 새로 얻은 집에 들어가 짐을 정리하다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갔다. 주위가 생경하다. 심란하다. 이 낯선 풍경도 곧 익숙해질 것이다. 늘 그랬으니까. 살아오면서 거처를 몇 번이나 옮겼을까? 고교 때까지는 거의 매년 이삿짐을 쌌던 것 같다. 전세 만기가 1년이었던 탓도 있지만, 가장의 잦은 전근과 사업 실패로 인한 금전의 결핍이 상당 기간 계속됐다. 집도 학교도 거리도 사람도 처음인 곳에 보릿자루처럼 부려졌을 때의 낭패감. 극복하기보다(처음 몇 번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던 듯) 도망치거나(책이나 상상 속으로?) 숨어 버리기(고독 예찬?) 일쑤였다. 내가 가정을 꾸리면 한곳에 뿌리박고 새끼들을 키워 내리라 다짐했지만….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태어난 곳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사람과 만난 건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시집올 때 싼 가방이 첫 번째 이삿짐이라고 했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이렇게 살아 온 인생도 있구나, 낯설었다) 그녀는 이번까지 딱 열 번 둥지를 옮겼다. 대전에서 2년, 도봉구(1년)와 성북구(1년)를 거쳐 다시 대전으로 내려갔다가 강남을 지나 고양, 서초, 다시 강남으로. 그 사이 식구는 넷으로 늘었고 그녀의 짐도 삶의 무게만큼 불어났을 것이다. 장롱 생채기가 하나둘 늘었고, 경첩은 헐거워졌으며, 침대도 삐걱거린 지 이미 오래. 담배 한 개비를 다 태우고 산책 삼아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본다. 슈퍼마켓과 담배 가게, 세탁소, 푸줏간, 목욕탕, 철물점, 빵집 등이 어디 있는지 눈여겨본다. 집 앞으로 되돌아와 담배 한 개비를 더 피우고 집으로 들어온다. 계단도 현관문도 비밀번호까지도 아직은 낯설기만 한데 낯익은 그녀는 짐정리를 하다 지쳤는지 소파에 모로 누워 단잠을 자고 있다. 가까이 가 보니 귀밑에 새치가 며칠 새 더 늘었다. 나는 아직은 낯선 방으로 들어가 헐렁해진 장롱 문을 열고 이불을 꺼내 그녀의 맨다리를 덮는다. 열린 창으로 낯선 바람이 들어온다. <치우(恥愚)><ⓒ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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