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39.1 x 374.6cm, 캔버스에 유화, 1897-1898년, 보스턴 미술관, 보스턴 (자료=고갱 전시본부)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가장 자유로운 영혼의 화가, 19세기 마지막 인상주의자, 그리고 '타히티의 여인들'의 주인공인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년). 그의 기념비적 대작들이 한데 모인 전시가 서울에서 열린다. 고갱의 발자취와 예술사적 의미를 조명하는 국내 최초의 회고전이다. 특히 고갱 예술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3대 걸작'이 전시사상 세계 최초로 한자리에 모였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파리 오르세 미술관, 모스크바 푸시킨 국립 미술관 등 전세계 유명 미술관 30여곳에서 빌려온 60여점의 진품들을 14일부터 오는 9월 29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폴 고갱
'가난과 방랑, 열정과 예술혼, 반문명, 타히티섬, 원시생활, 병마와 자살기도'. 고갱이 살아온 인생은 이 같은 단어들로 압축할 수 있다. 프랑스 출생인 그는 10대 후반부터 선원생활을 했고, 20대 중반부터는 주식 중개인으로 일했지만 미술품을 수집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점차 회화에 빠져들게 된다. 1882년 프랑스 주식시장의 붕괴로 실업자가 발생하는 와중 그는 서른다섯이라는 나이에 전업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고갱은 인상주의를 통해 화가로 입문했지만 과감한 원색과 원근법을 무시한 화면분할법으로 현실과 상상을 접목해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회화적 언어로 표현한 마지막 인상주의 화가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20세기 미술사조인 야수주의, 표현주의, 입체주의, 추상미술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타고난 색채감각과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열정은 그의 화업과 인생 여정에 여실히 드러난다. 고갱 예술의 특징은 브르타뉴 시기(1873~1891년)와 폴리네시아 시기(1893~1903년)로 양분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될 고갱의 3대 걸작인 '설교 후의 환상'(1888년작), '황색 그리스도'(1889년),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1896년) 중 앞의 둘은 브르타뉴, 세번째는 폴리네시아 시기의 작품이다. 특히 프랑스령 타히티 섬에서 그린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는 폴리네시아 시기를 상징하는 걸작이다. "문명은 당신을 메스껍게 만든다"고 말했던 고갱은 문명의 흔적이 없는 타히티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원시생활과 이국적인 매력에 빠져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결국 화가로서 성공을 거두진 못하고 불행한 말년을 맞이한다. 이 작품을 그릴 당시 작가는 병마에 시달렸으며 파리에서 열었던 개인전의 실패로 패배감을 느낀 나머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마지막 유언처럼 남겨진 이 작품은 폭 4m에 달하는 벽화양식으로 고갱 작품 중 가장 대작이다. 이기모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는 "이 작품은 탄생부터 삶과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운명을 단계적으로 서술한 것으로 고갱의 인생관, 세계관, 우주관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설교 후의 환상(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72.2 x 91cm, 캔버스에 유화, 1888년,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에든버러 (자료제공=고갱 전시본부)
황색 그리스도, 92.1 x 73.3cm, 캔버스에 유화, 1889년, 올브라이트녹스 아트 갤러리, 버팔로, 미국 (자료제공=고갱 전시본부)
타히티의 생활에 앞서 고갱은 파리에서 브르타뉴 퐁타방으로 이전해 그림에 전념하는데 이때부터 종전 인상파풍의 외광묘사를 버리고 특유의 장식적인 화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 바로 '설교 후의 환상'과 '황색 그리스도'다. 가족과 헤어져 생활하는 삶, 가난, 명예욕 등 그가 느낀 삶의 고통과 고난은 작품들 속에 깊은 인간의 내면을 다루는 주제로 나아가게 했다. 이들 작품을 제작하기 앞서 고갱은 파리를 오고 가며 알게 된 화가 고흐와 깊은 우정을 나누며 남프랑스 아를의 '노란집'이라는 화실에서 함께 살았던 적도 있다. 한편 이번 전시의 전체 작품 보험평가액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2007년 같은 전시장에서 열린 반 고흐 전시의 보험평가액 1조원을 훨씬 웃돈다. 전시 작품 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는 3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가치가 매겨져 있다. 보스턴 미술관 소장품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지난 50년간 단 세 번의 '외유'만이 가능했는데, 이번에 처음 국내에 소개된 것이다. 이번 전시는 세계 유수 미술관들을 개별적으로 설득하면서 만 3년이 넘는 준비과정을 거쳐 성사됐다. 오진희 기자 valer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회문화부 오진희 기자 valere@ⓒ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