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여의도 한 대형증권사 사장인 A씨와 차 한잔을 마시며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당시 코스피지수는 1900~2000선에서 지루한 박스권 장세를 이어가던 때였다. 그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입니다. 지금처럼 증권업계가 어려웠던 적은 없었죠. 위로 뻗든 아래로 추락하든 방향성이 있어줘야 하는데 시장이 갇혀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의욕을 잃고 있습니다"고 푸념했다. 올 들어 여의도 증권가는 최악의 시간을 보냈다. 중소형주 투자자들을 빼면 대부분이 의욕을 잃었다. 고액자산가들은 세원 노출을 피하기 위해 주식시장에서 이탈했고, 중산층은 부동산가격 하락 등으로 투자 여유자금이 없었다. 하위층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다 보니 증시의 혈액과 같은 거래대금은 과거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해 3분기(2012년 10~12월) 증권사의 영업이익은 68.2%, 순이익은 76% 각각 급감했다. 적자를 기록한 증권사는 전체 61개 증권사 중 39.3%에 달하는 24개 사였다. 3분기까지 누적 실적으로도 적자인 증권사가 19개 사(31%)나 됐다. 대형사들조차 순이익이 직전분기보다 70~90%씩 급감했을 정도다. 일부 대형사는 적자를 보기도 했다. 상황이 이런 데도 정부 정책이 규제 일변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꼽았다. 국내 자본시장의 인프라 확충이 늦어지면서 증권업계는 여전히 매매 수수료에 의존하는 낡은 비즈니스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전체 매출의 절반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으나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 사업 비중은 거의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해외 IB와 국내 증권사 간 총자산이익률(ROA) 격차는 2009년 2.08배에서 지난해 6.28배로 크게 벌어졌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났다. 최근 A씨를 다시 만나 점심을 같이했다. 그사이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그는 "앞으로 어찌해야 될지 더 고민"이라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 "도움이 되긴 하겠는데, 자본금을 3조원까지 늘리려고 노력한 것에 비하면 이득인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신용공여 규모가 당초 자기자본의 200%에서 100%로 축소된 탓이다. 일부 투자기관은 증권사들의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이 400~500% 수준을 충족하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실제로 공여 가능한 금액은 자기자본의 20% 정도밖에 안 된다. '대형 IB 육성'이라는 정책 취지에 맞춰 자본금을 3조원이나 쌓았는데, 당초 정부가 제출했던 개정안에 정치권의 요구가 상당부분 반영되면서 변질된 탓이다. 바야흐로 '창조경제'가 화두다. 창조경제 시대에는 창조금융으로 대응해야 한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도 최근 '멈춰버린 기적(Stalled Miracle)'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을 일으켜 세웠던 '한강의 기적'이 정지돼 있다"고 지적하면서 헬스케어, 관광업과 함께 금융서비스 산업 부문을 육성해야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대안을 내놨다. 앞으로 더 이상 금융투자업을 제조업 등 기존 산업에 자금공급을 하는 기능으로 국한해서 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대형 증권사들이 확충한 자본을 가지고 해외로 나가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해 새 먹거리를 찾고 고급 일자리와 성장잠재력을 샘처럼 창출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돼야 한다. 자기자본이 3조원에 미치지 못하는 중소형 증권사들 역시 차별화를 통해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본회의 통과는 물론 시행령 등 추가 법령에서 제도적 보완이 절실한 이유다. 올해도 여의도엔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윤중로의 벚꽃은 꽃샘추위로 늦은 개화가 미안했던지 꽃망울을 더 크게 터뜨렸다. 금융투자업계에도 그동안 짓눌렀던 증권업 공멸의 위기감이 성장에 대한 자신감으로 바뀌어 봄기운이 만연하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을 기대해본다. 김종수 증권부장 kjs333@<ⓒ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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