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해병대가 올해로 창설 64주년을 맞았다. 해병대는 1948년 10월 여수ㆍ순천 반란 진압작전 당시 신현준 해군중령이 적진에 침투할 수 있는 상륙작전부대의 필요성을 느끼고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에게 건의한 것이 계기가 돼 창설됐다. 이듬해 4월 15일 경남 진해 덕산비행장 격납고에서 해군 13기중 지원한 380명에게 일본군의 99식 소총과 무명천에 국방색 염색을 한 훈련복을 입히고 해병 1기를 만들었다. 6ㆍ25전쟁 이후 해병전투단은 여단으로 증편됐고 1965년 9월 20일 창설된 제2여단 청룡부대는 전투부대로는 최초로 베트남 해외파병을 떠나기도 했다. 또 지난해 10월 15일부로 해병대 지휘관리 개선법률이 시행돼 1973년 해병대 사령부해체로 상실했던 지휘권한을 되찾기도 했다. 해병대는 초라하게 시작했지만 전설적인 전투 승전보를 울리며 명성을 만들어냈다.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명성을 낳은 한국군 최초의 단독 상륙작전인 통영지구 전투, 전 장병이 일계급 특진한 진동리지구 전투, 인천상륙작전, 산악전에 유례없는 승리를 거두며 이승만 대통령에게 무적해병 휘호를 하사받은 도솔산지구전투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해병대는 현재 수도 서울의 관문인 서부전선과 백령도,연평도 등에서 방어를 주임무로 하고, 유사시 적지에 침투하는 상륙작전을 전개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해병대는 기동장비로 K-1 전차, KAAV 상륙돌격장갑차, K-200계열의 장갑차 등을 비롯한 59종을 보유하고 있다. 포병화력으로는 K-9 자주포 등 4종의 자주포와 3종의 박격포를 갖추고 있다. 2003년 징집제도 폐지 후에는 지원자들로만 부대를 편성한다. 현재 막내 기수는 지난 3월 25일 입대한 1171기다. 해병대를 지원한 훈련병들은 7주간 훈련을 받고 2개사단과 1개여단, 연평도 방어를 막는 연평부대, 상륙군지원단 등으로 배치된다.우리 해병대의 상륙작전 능력은 세계 해병대 보유국 50여개국 중 셋째로 꼽힌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이는 강한 훈련의 결과다. 신병은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다음, 해병대만의 상륙기습기초훈련, 상륙장갑차탑승훈련, 천장봉 행군 등을 받아야 한다. 이런 힘든 훈련 때문에 지원자가 적을 것이라는 것은 오해다. 일반장병 지원 경쟁률은 4대1이 기본이다. 부사관과 장교 지원율은 7대1까지 올라간다. 여군 지원자도 늘어나 현재 100여명이 있다. 해병대 여군이 육군여군보다 먼저 창설됐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해병대 여군은 1950년 8월 30일 입대한 해병4기중에 126명이 최초 입대자다. 육군여군 창설(1950년 9월 5일)보다 6일 빠르다. 해병대출신 유명인사도 많다. 정계엔 정병국ㆍ신학용 의원을 비롯한 홍사덕ㆍ김기춘ㆍ공성진 전 의원 등이 있고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박상범 전 국가보훈처장, 이희일 전 동력자원부 장관 등도 해병대 출신이다. 재계에선 김무일 전 현대INI스틸 대표이사 겸 부회장, 김동렬 아세아시멘트 사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밖에 탤런트 임채무, 김흥국, 소설가 황석영씨, 해병을 내세운 영화 해안선 연출자 김기덕감독 등이 있다. 클릭비 출신 오종혁은 오종혁은 당초 지난 2월 18일 만기 제대 예정이었으나 이달 4일부터 22일까지 진행하는 설한지 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제대연기 신청을 한 바 있다. 오종혁은 지난 2011년 4월 해병 1140기로 자원입대해 수색대에 지원했으나 고등학교 출석일수가 부족해 입대가 불가능했다. 이후 군악대에서 군생활을 시작한 오종혁은 해병대 사령관에서 탄원서를 써가며 수색대대에 입교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지난해 6월부터 포항 해병대 제1사단 수색대대에서 복무했다.양낙규 기자 if@사진제공=해병대<ⓒ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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