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의 사생활-3장 화실이 있는 풍경 59

“아, 그 무섭게 생긴 이층집 할아버지? 잘 모르지만 동네 사람들이 슈퍼 와서 하는 이야기 들으니까, 베트남전에 갔다가 고엽제 피해를 당했대나, 어쨌대나. 그래서 정신이 약간 이상하대요. 혼자 골짜기에 올라가서 군가도 부르고, 차렷, 열중 쉬엇, 하면서 구령도 하고 그런대요.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어요. 예전엔 안 그랬는데, 여기 요즘 들어 정말 이상한 사람들만 몰려오는 것 같다니까요.”“그래?”소연의 말에 하림은 자기도 모르게 약간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윤여사로부터 들어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이야기였던 것이다. 베트남전.... 고엽제.... 말로만 들었던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실재로 이곳에 산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대령 출신이람서?”“흥, 누가 그래요? 그냥 하사래요. 운학이 이장 아저씨가 말해줬어요.”“그래?”“그래도 나중에 사업을 해서 큰돈을 벌긴 했나봐요. 집도 잘 지어놓은 걸 보면....”하림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반가웠다기 보다 새로운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근데 개는 왜 쏘았대?”하림이 다짜고짜로 물어보았다.“누가 그래요? 그것도 확실하지 않은 소문일 뿐이예요. 아무도 본 사람도 없고, 내가 보기엔 좀 무섭게 생기시긴 했지만 그럴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그 할아버지 미워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어야지.”하고 말했다. 그래 놓고 곧 자신이 없는지,“몰라요. 나도 그저 슈퍼에서 지나가는 이야기를 들은 것 밖에 없으니까.”하고 토를 달았다.“그러면 소연인 그 영감을 별로 싫어하지 않나보군.”하림이 짐짓 떠보듯이 말했다.“싫고 좋고가 아니라 어쩌면 좀 불쌍한 생각이 든다고나 할까. 암튼 그래요.”그리고나서 소연은 영감의 얼굴을 떠올렸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럼,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무슨 뜻이니?”하림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계속해서 물었다.“그게.... 그러니까, 나도 잘 모르지만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니까 영감이 정신이 좀 오락가락 한 대요. 그래서 지금 영감이랑 같이 살고 있는 딸이란 사람이, 무슨 신학대 교수였대나 하는 사십대 후반의 깡마른 여잔데, 하여간 그 딸이 자기 아버지를 위해 골짜기 근처에 땅을 샀대요.” “땅을....? 왜?”“기도원을 짓는대나 어쩐대나.... 하여간 그 일로 동네 사람들이랑 사이가 나빠졌어요. 오래전부터 살았던 이곳 동네 어른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펄쩍 뛰었구요.”“기도원? 그래서....?”하림은 무언가 어렴풋하게 집히는 것이 있어 소연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재우치듯 물었다. 그러나 커피를 다 마신 소연이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더니,“어머! 너무 오래 있었네. 사촌언니가 또 뭐라 하겠어요.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풍을 맞아서 오른쪽 반쪽을 잘 못쓰니까 되니까, 여간 신경이 날카로워진 게 아니라니까요.” 하고 화들짝 놀란 사람이 되어 일어섰다. 그리곤,“그게 다예요. 어쨌든 하림 아저씨, 아니, 하림 오빠. 시 가르쳐 준다는 약속 잊어버리면 안 돼요.”하고 빈 법랑 그릇을 들고 급히 밖으로 나서면서 다시 한번 다짐이라도 하듯 말했다.글 김영현. 그림 박건웅.<ⓒ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김영현 기자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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