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피의자가 불법 체포돼 조사받았으니 유죄를 인정할 근거가 없다는 주장을 펼치는 데도 제한이 따른다. 불법 체포된 피의자를 상대로 이뤄진 증거 수집은 유죄의 근거가 될 수 없더라도 이후 법원의 영장발부 등을 거쳐 적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유죄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및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49)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하고 10만원을 추징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대법원은 “메스암페타민(일명 필로폰) 투약 범행은 법정형이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로, 그 수사를 위한 경찰서 동행 과정에 위법이 있었다는 사유만으로 법원 영장 발부로 수집된 2차적 증거의 증거능력마저 부인한다면 이는 오히려 헌법과 형사소송법 규정을 마련해 적법절차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규명의 조화를 통한 형사 사법 정의를 실현하려는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 참작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A씨는 지난해 5월 부산 모 호프집에서 필로폰을 커피에 타 마시고, 이후 경찰 조사 과정에서 유치장 내 출입문을 걷어 차 파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커피에 필로폰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마셨다며 무죄를 주장했으나 1심은 “경찰에서의 소변채취 요구를 거부하며 종이컵에 소변이 모이자 이를 고의로 버리는 등 소변에 대한 검사를 못하게 하려는 행동을 취하였던 점에 비춰 이유없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A씨는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했지만 뒤이은 2심도 “마약류 범죄로 수차례 징역형 및 벌금형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인미수죄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출소한 뒤 누범기간 중에 동종 범행을 반복한 점 등에 비춰 죄질이 중하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이에 A씨는 영장 없이 강제 연행된 상태에서 채뇨를 요구받았으므로 유죄를 인정할 적법한 증거가 없다며 상고했다. 당시 경찰은 정신이상 행동을 목격했다며 A씨가 마약을 투약한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A씨는 방안에서 운동화를 신고 안절부절하다 경찰관 앞에서 아랫도리를 모두 벗는 등 비정상 행동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경찰은 마약 투약이 의심되니 동행하라는 요구에 “영장 없으면 가지 않겠다”며 A씨가 거부했음에도 결국 경찰서로 데려가 1차 소변검사를 하고 양성반응에 대한 소변검사시인서를 작성받았다. 이후 경찰은 A씨를 긴급체포하고 법원으로부터 구속 및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2차적으로 A씨의 소변과 모발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 ‘양성’반응이 검출됐다.대법원은 “(1차 채뇨 요구 당시 수집된)소변검사시인서는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면서도 “설령 수사기관의 연행이 위법체포에 해당하고 그에 이은 1차 채뇨에 의한 증거 수집이 위법하다 하더라도 이후 법관이 발부한 구속영장에 의해 적법하게 구금되고, 압수영장에 의해 2차 채뇨 및 채모 절차가 적법하게 이루어진 이상 그와 같은 2차적 증거 수집이 위법한 체포·구금절차에 의해 형성된 상태를 직접 이용해 행해진 것으로 쉽사리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불법 체포는 허용될 수 없고 그와 같은 상태에서 수집된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도 이후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유죄 인정의 근거로 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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