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네덜란드 야구 역사, 축구만큼 깊다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네덜란드는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 수준의 작은 나라는 아니지만 ‘강소국’으로 불러도 될 만하다. 최근 통계자료에 따르면 인구는 1670여만 명으로 세계 60위권이다. 7450여만 명인 한국(남한+북한)보다 훨씬 적다. 1억2700여만 명인 일본엔 1/8 수준이다. 이렇게 작은 나라는 17세기 초부터 세계사 전면에 등장했다. 스페인과 벌인 치열한 독립전쟁에서 이긴 뒤 뛰어난 조선 기술을 앞세워 세계적인 해양 강국으로 위세를 떨쳤다. 이 시기 네덜란드는 나가사키를 근거로 일본과 무역을 독점했다. 인도네시아를 식민지화하기도 했다. 1670년께 네덜란드가 보유한 선박은 영국의 약 3배였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 여러 나라의 배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한다. 그 무렵 연간 조선 능력이 2천척에 이르렀다고 하니 ‘세계의 운반인’이란 별명이 붙을 만했다. 네덜란드는 17세기 후반 영국과 치른 세 차례 전쟁에서 패하며 해양 강국의 위상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20세기 중반까지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거느리는 등 옛 영화를 어느 정도 유지했다. 1938년 제3회 프랑스 대회 때 처음 월드컵에 출전한 아시아 나라 ‘네덜란드령 동인도’가 바로 인도네시아다. 네덜란드는 스포츠에서도 ‘강소국’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전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인 월드컵에서 세 차례나 준우승을 거뒀다. 1974년(서독), 1978년(아르헨티나), 2010년(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 등이다. 1998년(프랑스) 대회에선 4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유럽선수권대회에서의 활약도 눈부셨다. 1988년(서독) 대회 우승, 1976년(유고슬라비아) 대회 3위, 2000년 대회(벨기에+네덜란드)와 2004년 대회(포르투갈) 4강 등의 성과를 올렸다. 요한 크루이프는 1970년대 네덜란드 축구가 낳은 세계적인 선수다. 거스 히딩크와 딕 아드보카트는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네덜란드 출신 지도자이기도 하다. 네덜란드는 1912년 국가올림픽위원회를 결성했지만 이보다 빠른 1900년 제2회 파리 대회부터 올림픽에 출전했다. 옛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항의해 1956년 멜버른 대회에 불참(스톡홀름에서 따로 열린 승마 종목엔 출전)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올림픽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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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긴 성적도 훌륭했다.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금메달 12개, 은메달 9개, 동메달 4개로 미국, 러시아, 중국 등에 이어 금메달 기준 종합 8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역대 대회에서 다섯 차례 톱10에 진입했다. 특히 안톤 헤싱크는 1964년 도쿄대회 유도 무제한급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전 체급(4) 석권을 노리던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네덜란드는 서유럽 나라지만 겨울철 종목의 강국이기도 하다. 최근 대회인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로 종합 10위를 차지하는 등 역대 대회에서 11차례나 톱10에 진입했다. 강세 종목은 스피드스케이팅. 동·하계 올림픽에서 수확한 금메달 100개, 은메달 110개, 동메달 122개 가운데 금메달 27개, 은메달 29개, 동메달 26개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모든 메달에서 압도적인 1위다. 이렇게 탄탄한 스포츠 저변을 갖춘 네덜란드지만 유럽에 속했단 이유로 야구는 그저 그런 수준일 것이라는 게 국내 스포츠팬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을 것이다. 지난 2일 고정관념은 깨졌다. 한국은 대만 타이중에서 벌어진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첫 경기에서 네덜란드에 0-5로 완패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0-5로 진 기억이 떠올랐다고 한다. 종목이 다르고 점수를 내는 방법도 다르지만 경기 내용에서 완전히 졌단 점에선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1975년 6월 서울에서 열린 제11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1963년, 1971년(이상 서울) 대회에 이어 통산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한 한국은 여세를 몰아 그해 7월 캐나다에서 열린 제2회 대륙간컵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6년 김호중, 정순명, 이선희, 계형철(이상 투수), 우용득, 신언호, 박해종(이상 포수), 김봉연, 배대웅, 김일권, 김용철, 김재박(이상 내야수), 장효조, 임신근, 윤동균, 이해창(이상 외야수) 등으로 구성된 대표팀은 네덜란드에서 열린 국제친선야구대회에 출전했다. 이 정도 멤버면 이번 WBC 대표팀에 견줘 절대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 야구 올드 팬들은 동의할 듯하다. 대회에서 한국은 유럽 주둔 미국 공군팀과 2-3, 2-1(연장 10회)로 승패를 주고받았다. 네덜란드와도 1-2, 2-0으로 1승1패를 기록했다. 네덜란드왕립야구연맹은 우리나라 전국체육대회의 기산점이 되는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가 열린 1920년보다 8년 앞선 1912년 3월 결성됐다. 축구 팬들이 잘 알고 있는 아약스 등 4개 클럽이 리그를 시작한 건 그로부터 10년 뒤였다. 2011년 파나마에서 열린 야구월드컵(세계야구선수권대회 후신)에서 네덜란드는 이 대회에 앞서 39차례 대회에서 25번이나 우승한 쿠바를 2-1로 꺾고 1938년 제1회 대회 영국 이후 유럽 나라로는 두 번째로 정상에 올랐다. 이 대회에서 네덜란드는 프로-아마추어 혼성팀인 한국을 5-1로 누르기도 했다. 2일 경기는 역사적으로 보나 경기력으로 보나 질 수도 있었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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