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포럼]코끼리 다리와 갯지렁이 다리의 공통점

염승식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동물들의 눈, 심장 그리고 다리와 같은 것들을 학술적으로 부속지라고 한다. 이들의 형성과정을 보면 발생학적으로 놀라운 일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눈의 경우를 보자. 파리와 같은 곤충류는 미세한 낱눈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겹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비해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렌즈와 망막을 갖는 아주 발달된 눈을 가지고 있어, 이 두 가지 형태의 눈 사이에는 공통점이 전혀 없어 보인다.  곤충인 초파리에서 눈 형성과 관련된 유전자는 'eyeless(ey)'이며, 포유류는 'Pax-6'이다. 그런데 두 동물군의 발생과정에서 눈의 형성을 유도하는 유전자인 초파리의 'ey'와 포유류의 'Pax-6'의 구조는 매우 닮아 있으며, 상호 호환된다. 즉, 실험적으로 포유류의 'Pax-6'를 초파리에 도입하면 초파리의 눈 형성이 유도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심장을 보자. 심장은 체액을 순환시키는 순환계의 중추기관으로 수축과 이완을 되풀이하는 펌프의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기관이다. 순환계를 갖는 모든 동물들은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심장을 가지고 있다. 곤충류의 순환계인 개방혈관계에도 등쪽에 위치한 원통과 같이 생긴 굵은 혈관이 있는데, 이것이 수축해 체액을 체내로 내보내고 다시 받아들이는 심장의 역할을 한다. 이것은 보다 발전된 폐쇄혈관계를 갖는 지렁이류에서는 주심장과 부심장으로 구분된다. 척추동물들은 심방과 심실로 구분되는 상당히 복잡한 구조의 심장을 갖는다. 구조가 간단하건 복잡하건 간에 이들 심장의 발생 및 형성에는 유사한 구조를 갖는 유전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을 'NK-2'라고 부른다.  재미있는 사실은 순환계를 갖고 있지 않는 자포동물인 히드라도 'NK-2'와 구조가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즉, 새로운 구조나 기관을 만들기 위한 요소들은, 어느 순간에 새로이 도입된 것이 아니고, 이미 원시적인 생물들이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끝으로 동물의 부속지를 살펴보자. 동물의 부속지는 대개 이동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 형태는 곤충 애벌레(누에 등)의 다리, 갯지렁이의 수많은 다리, 성게의 가시와 관족, 척추동물의 사지(앞, 뒷다리)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수톤에 달하는 몸무게를 지탱하는 코끼리의 다리는 매우 육중하다. 이에 비해 외골격을 갖고, 두께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곤충들의 다리는 한없이 약해 보인다. 마디마다 좌우에 하나씩 달려 있는 갯지렁이의 다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다른 동물들의 다리와는 어떤 공통점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앞의 두 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들의 다리 형성에는 한결같이 'Distal-less(Dll)'라는 유전자가 관여하고 있다.  이처럼 생물의 다양성은 애초부터 다른 방식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고, 일관된 보편성이 내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생물의 다양성은 갑자기 이룩된 것이 아니고, 긴 세월을 두고 진행된 생물진화의 소산이다.  우리는 인간의 보건 및 의료를 위한 기초연구에 포유류 모델인 실험용 쥐들을 주로 이용하고 있으나, 보다 폭넓은 생물학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모델생물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모든 동물들의 생명현상은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일관된 방법에 의해 조절되고 있기 때문에 원시적인 생물에서 얻어진 지식을 분화된 생물에 도입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는 보다 다양한 동물들에 흥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흥미는 새로운 발견과 새로운 아이디어의 도출로 연결돼 커다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염승식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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