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과 마니아를 모두 잡으려면 아티스트가 내놓는 결과물에 대해 디테일한 컨트롤이 가능해야하지 않나. 그래야 그들도 수긍할 거고. 양현석: 나는 춤을 많이 췄으니까 안무에 대해 지시할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곡은 서태지와 아이들 끝나고 6개월 동안 화성과 미디를 배웠고, 그 결과로 지누션의 ‘가솔린’을 작곡했다. 하지만 작곡에는 재능이 없다는 걸 아니까 포기했다. 대신 아티스트와 대화할 만큼은 안다. 그리고 무대에 섰으니까 가수들을 코치할 수 있고. 잘 모르는 사람이 가수들에게 이래라 저래라하면 무시하지 않겠나. 다른 일들은 많이 놓기는 했다. 하지만 아티스트와의 커뮤니케이션과 사운드는 내가 절대로 놓을 수 없다. 그리고 연습생들에 관한 일은 내가 100% 관여하고. 제일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 남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사운드에 직접 관여하는 걸로 알고 있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까지 YG의 모든 앨범은 당신이 믹싱 엔지니어 역할을 직접 하던데. 양현석: 얼마 전에도 에픽하이 앨범을 마스터링하면서 세 번 수정하고 겨우 넘겼다. (웃음) 내가 회사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좋은 사운드를 판단하고 만들어내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한다. <H3>“새 걸그룹, 예쁜데 잘 하는 애들”</H3>
결국 당신이 YG의 사운드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데, 특별한 판단 기준이 있나. 양현석: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듣고, 만들었고, 그래서 좋은 사운드의 기준이 있다. 그건 말로 풀 수도 없고 수학처럼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운드라고 생각하는 건 대중들도 똑같이 좋아하고,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건 대중들이 구체적인 건 몰라도 별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계적인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강남 스타일’도 앞에 부각되는 건 싸이 특유의 보컬이지만 싸이가 놀고 있을 것 같은 클럽의 공간감은 굉장히 잘 살아났다. 양현석: 시간 나는 대로 클럽 DJ를 계속 해오기도 했고, PC스피커로 듣든 클럽의 큰 스피커로 듣든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어디서든 들어도 똑같은 음질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고, 그래서 믹싱 엔지니어도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같이 했던 제이슨 로버츠와 계속 하고 있다. 서로 쌓은 노하우가 많으니까. 그가 믹싱하면 곡을 만든 아티스트가 다시 수정하고, 내가 다시 수정하면서 세계적인 기준에 가까운 사운드를 만들려고 한다. 그렇게 스튜디오에서 듣고 주말에는 클럽에서 들으니까 좋은 사운드에 대한 기준이 생기고. 공간감이 좋은 건 그런 소리의 균형들이 잘 잡히도록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목소리만 키우기 위해 한 쪽만 부각하면 공간감이 살아나지 못한다. 그리고 제작사에서 직접 관여하지 않으면 곡의 특성에 어울리는 믹싱도 못하고. YG는 그걸 할 수 있다. 그러면 요즘은 어떤 사운드에 관심이 많나. 양현석: 특정 사운드에 대한 유행 같은 건 크게 없는 것 같다. 대신 장르의 유행이 변한다. 한 때는 힙합이 유행했고, 한 때는 일렉트로니카가 유행한 것 같다. 그런 장르의 특성에 맞춰서 사운드를 조율한다. 장르에는 각각 어울리는 사운드가 있으니까. 거기에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 사운드처럼 대중음악계의 흐름도 변한다. 동시에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기준도 있고. 아이돌이 포화 상태인 상황에서 새로운 걸그룹을 제작하고 있는데, 무슨 기준으로 그들을 모은 건가. 양현석: 아이돌이 좋냐 아티스트가 좋냐, 이런 정답은 없다. 나는 둘 다 좋다. 잘 하는 아이돌을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면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돌 시장이 포화 상태고, 차별화된 아이돌이 아니면 망할 수밖에 없다. 이제 YG가 나와야 하는데, 수없이 생각한다. 제 2의 빅뱅을 만들까? 그건 내가 내 목에 칼을 대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떻게 신선하게 할까. 그래서 이번 걸그룹을 만드는 이유는 딱 하나다. YG는 하도 연습생 얼굴을 안 본다고 하니까 (웃음) OK, 그럼 예쁜데 잘하는 애들로 해볼게. 여느 아이돌처럼 예쁜데 제대로 랩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하면 좋아하지 않을까. 확실히 문화에는 흐름이 있고, 어떤 흐름이 강하면 다른 게 그걸 돌려놓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신용을 쌓으면 우리에게 좋은 흐름을 길게 가져갈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려면 연습생들 자체가 어떤 흐름에서든 살아남을 만큼 뭔가가 있어야 한다. SBS <일요일이 좋다>의 ‘K팝스타’에서 오디션을 볼 때처럼, 연습생을 뽑는 데는 어떤 기준이 있나. 양현석: 무조건 예뻐서 뽑은 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재능과 끼를 갖춘 애들을 뽑는다. 연습생을 뽑을 때 뭔가 좋아하게 되는 이유가 한 가지 있는데, 그러면 그들이 얼마나 더 보여줄 게 있을지 기대한다. 아무리 잘 생겨도 마음에 안 와닿게 잘 생긴 애들도 있고,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애들도 있지 않나. 그런 건 노력보다 타고난 매력인 거고, 매력 있는 애들이 노력으로 실력을 늘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 점에서는 내가 잘 해야지. 잘 해내야 하는 거고. <H3>“테디가 베이스, 지드래곤이 기타를 치는 밴드도 만들어보고 싶다”</H3>
그만큼 소속 뮤지션이 최대한 좋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상장기업이 된 후로는 비즈니스적인 측면의 압박도 크지 않나. 시장은 늘 안정적인 수익을 요구할 텐데. 양현석: 분명히 회사 전체로는 그게 필요하다. 그래도 회사 전체가 그 점에서 날 믿고 따라와 준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가 마음에 들고 아티스트 마음에 드는 걸 내놓는 게 절대적인 기준이다. YG에서 지금까지 발표한 가수들은 대부분 성공했는데, 그건 잘 된다는 확신이 있는 것만 했기 때문이다. 그건 변하지 않는다. 죽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건가. 양현석: 아티스트들이 음악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로 관여 안 한다.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뭐가 불편한지 알아보고, 일을 안 하면 해야 한다고 한 마디 하는 거고. 그래서 전 직원들이 나만 바라본다. 아티스트들을 컨트롤하는 게 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뭔가 일이 안 풀리면 나한테 전화하고. 그럼 나는 죽겠다. (웃음) 그러다보니 YG는 앨범 발표가 정해진 일정보다 굉장히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팬들이 당신의 노래 제목을 따서 ‘악마의 연기’라고 했을 정도다. 양현석: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YG는 앨범 발매 계획은 내가 세워도 음악은 아티스트가 만들어낸다. 스케줄을 알려주고 어르고 달래는 건 내가 한다. 그런데 지드래곤이 머리를 쥐어짜고 음악을 만들려고 하는데, 회사가 7월 1일까지 내기로 했으니까 무조건 하라고 하는 건 절대 안 된다. 그건 YG가 아니다. 이 놈이 마음에 들어서 “이제 됐습니다” 할 때 내놓는다. 가장 애가 타는 건 나다. 상장한 뒤에는 연간계획이 나오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무조건 해야 한다. 하지만 프로듀서가 고민하고 있는데 내가 뭐라고 그들을 압박하나. 그래서 2NE1도 한 곡 발표하고 월드투어를 하게 됐다. 시간적인 여유를 충분히 주고 싶었는데 그런데도 생각대로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지드래곤도 두 달이 밀리면서 월드투어 계획도 잡혀서 한 달 반밖에 못하게 됐고, 거기다 <인기가요>만 출연하니까 팬들이 불만이 많다는 걸 안다. 아티스트는 아티스트대로, 팬들은 팬들대로 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겠다. 그걸 견디는 게 당신 일이고. 양현석: 스트레스가 크다. 하지만 아티스트들은 더하겠지. 매일 닦달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부담일 테니까. (웃음) 같이 밤을 새는 게 내 일이다. 그러다 정말 뭔가 문제라면 그 때 한 번 크게 하는 거고. 그렇게 어르고 달랜다. 그리고 지드래곤은 앨범이 늦어진 만큼 앨범을 한 번 더 낼 계획이다. 한 번 더? 양현석: 지드래곤은 원래 정규 앨범을 내려다 미니 앨범을 낸 거다. 발매가 늦어지면서 활동 기간이 줄어들어서, 그 곡들로 많은 활동을 못하는 게 아까웠다. 그래서 내년 봄에 또 앨범을 낼 계획이다. 콘서트도 그 때 쯤 할 거고. 빅뱅이 내년 2월까지 활동을 할 테니까 지드래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준비하게 할 생각이다. 물론 이것도 희망사항이긴 하다. (웃음) 하지만 스케줄이 너무 엉켜서 활동기간이 짧았던 만큼, 지드래곤의 앨범과 공연은 꼭 있을 거다. 2NE1도 보다 보다 테디를 붙잡고 사정사정해서 (웃음) 지금 녹음 중이고, 일단 싱글로라도 곡들을 낼 예정이다. 노래 한 곡으로 월드투어를 돌았으니 얼마나 미안한가. 하지만 그건 내 능력 바깥의 문제니까. 음악은 내가 하는 게 아니고 그들이 하는 것이고, 나올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일이다. 그렇게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고 일하다보면 모두가 반대하는 경우도 생기지 않나. 외로울 때도 있겠다. 양현석: 외로움보다는 오기가 밀려온다. 몇 년 뒤에라도 반드시 내 생각이 옳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오기가 있다. 물론 나도 사람이니까 틀릴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지금 YG가 성장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YG는 제대로 하는 애들이라는 신뢰감 같은 것들이 모여서 지금의 YG가 된 것 아닐까. 물론 외롭기도 하다. 하지만 좋은 결과물이 나오면서 지금은 조금 수월해졌다. 그리고 좋은 결과물은 옳고 그른 걸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생각하고. 절대적인 기준에 대해 자주 말하는데, 그 기준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뭘까. 양현석: 나는 스티브 잡스를 존경한다. 이 사람의 전기를 읽어본 적도 없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궁금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사람은 나에게 아이폰이라는 좋은 결과물을 줬다. 그리고 아이폰 하나로 세상을 바꿨다. 그 사람이 회사에서 쫓겨났었다는 말도 들었고, 아마도 사람들에게 자신의 구상이 가능하냐는 말도 들었을 거다. 그런데 가능하게 만들었다. 나도 그러고 싶다. 얼마나 시장을 잠식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세계 시장에 우리의 음악을 제대로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 사람들이 요즘 YG에서 내 주식 지분이 얼마다 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그게 지금보다 100배가 되도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은 변하지 않는다.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확신. 당신이 구상하는 YG는 이제야 시작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양현석: 그렇다. 나보다 돈이 많은 사람들도 나에게 행복하다고 말해줄 때가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런 말을 들을 때 솔직히 기분이 좋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요즘 취미로 드럼을 배우고 싶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잠깐 배워서 흉내를 내는 수준인데, 5, 60이 돼서라도 제대로 연주해보고 싶다. 테디가 베이스를 치고, 지드래곤이 기타를 치는 밴드도 만들어보고 싶고. 그냥 우리끼리 놀 수 있는 프로젝트 그룹도 언젠가 한 번 해보고 싶다. 사업확장보다는 그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합주실을 만드는 게 더 즐거운 꿈 같다. 사진제공. YG 엔터테인먼트<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10 아시아 글. 강명석 기자 two@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취재팀 글. 강명석 기자 two@편집팀 편집. 이지혜 seve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