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정당정치'를 둘러싼 기싸움이 치열하다. 민주통합당 측이 '무소속 대통령은 국정운영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입당을 주장한 것에 대해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직접 나서 '정당 없이도 잘할 수 있다'고 반박하며 그야말로 격한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안 후보의 무소속 대통령론이 공감을 얻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이 '정당정치론'을 내세우며 안철수의 입당을 압박하는 것이 국민들에게 지지를 얻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사실 정작 문재인 후보 자신도 민주당에 '입당'을 통해 합류한 것이 아니다. 지난 해 민주당의 창당 과정을 보면 이해찬, 문재인 등이 주도했던 '혁신과 통합'의 인사들은 낡은 정치를 타파하고 시민들의 바람을 반영해 민주당을 더 크게 만들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입당방식이 아닌 세력통합 방식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기존 민주당 내부는 정당도 아닌 '개인들의 집합'에 불과한 혁신과 통합의 이런 주장을 정략적 접근으로 보고 크게 반발했으나 이들은 결국 입당이 아닌 세력 통합을 통해 민주당에 합류했다. 그 같은 과정은 이후 결과를 놓고 보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통합 이후 민주당은 2007년 정권을 잃은 이후 가장 높은 지지도를 기록했다. 기득권을 벗어던지고 통합을 이뤄낸 민주당의 진정성에 야권의 지지자들이 지지로 화답한 것이다. 한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 후보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한 오픈 프라이머리나 모바일 투표방식은 사실 원칙적 정당정치를 약화시키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정당정치의 고루한 틀을 깨고 기존 정당 내부의 기득권을 해체한 길을 걸어온 것은 정작 문 후보 자신이었다. 따라서 국민들이 '정당 없는' 안 후보를 인정한다면, 특히 문 후보가 나서 정당정치의 원칙이나 민주당의 외연적 틀을 완고히 고집할 입장은 아니다. 민주당이 안 후보의 입당을 압박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사실 '안철수 현상=민주당 불신'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면 개인에 불과한 무소속 후보가 민주당 후보보다 더 많은 지지를 획득하는지에 대한 민주당의 좀 더 깊은 고민과 성찰의 모습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맥락을 살피지 않고 정당정치에 대한 교과서적 입장을 고집하며 안 후보의 민주당 입당을 단일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거는 것은 '얼굴 두꺼운 정치'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정당정치를 불신의 대상이 되도록 한 것은 안철수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십 수년간 당 깨고 합치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해 온 것은 민주당 자신이기도 하다. 그래도 만일 민주당이 정권교체의 역사적 책무보다는 정당정치를 우선순위로 친다면 안 후보에게 단일화하자고 집적거리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니다. 무소속 후보가 완주하는 것이 민주국가 선거에 있어 특별한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 재검표까지 가며 박빙의 차이로 승리했던 2000년 미 대선에는 제3후보인 시민운동가 출신 랄프 네이더가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그러나 당시 미 민주당은 네이더에게 '후보단일화'하자고 조르지도 않았으며, 또 패배 이후 역사적 책임을 네이더 후보에게 돌리지도 않았다. 즉 문 후보 스스로가 '정당정치'와 '민주당 지키기'가 대선승리보다도 더 중대한 시대정신이라고 판단한다면 단일화에 미련을 갖지 말고 무소속 후보에게 지지층을 뺏긴 자신의 과오를 깊이 성찰하면서, 또 안철수의 역사의식을 믿고 스스로 의연하게 자기 갈 길만 가는 것이 옳다. 반대로 정권교체와 구체제 청산이 모든 것에 앞선 시대정신이라고 판단한다면 낡은 정당주의나 작은 민주당의 틀에 집착할 필요가 없으며 안 후보에 무리하게 입당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여론조사를 볼 때 야권의 유권자들은 지금 문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를 원하고 있다. 즉, 그들 야권지지층들은 '정권교체'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두 후보의 역사적 책무라 생각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우리 정치에서 새누리당과 더불어 없어지려해도 없어질 수가 없는 민주진보 진영의 중심정당이다. 사람마다 생각이야 다르겠지만, 민주당은 한 때의 의원명단이나 당원명부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인권과 평등, 평화를 중시하는 전통이자, 정신이며 가치와 노선으로서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기호 2번에 집착하는 것은 진짜 민주당이 갈 길이 아니며, '작은 민주당'에 대한 집착일 뿐이다. 게다가 실제 민주당 2번을 못 지켜서 민주당이 망할지, 대선에서 패배해서 민주당이 망할지는 모를 일이다. 최악의 경우 민주당이 후보를 못 낸다 해도 안 후보와 정치연합을 만들어 대선에서 승리하면 민주당 의원들이나 당원들이 새누리당이나 다른 진보정당으로 갈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시대의 흐름에 뒤처져 정당정치를 고집하다 패배하고 나면 민주당은 정말 존립이 어려워 질 수도 있다. 이제 모든 판단은 궁극적으로 문 후보 스스로의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다. 만일 안철수씨가 당선되어 무소속의 한계로 성공한 대통령이 못되면 그것은 안철수의 역사적 책임으로 기록될 것이다. 반면 민주당이 작은 민주당의 틀을 고집해 대선에 진다면 초보 정치인 안철수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역사적 결단에 주저한 문재인의 책임으로 기록되는 것이 맞다. 사실 그게 지금의 여론이 보여주는 안철수 현상의 의미다.김헌태 정치평론가ㆍ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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