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詩]이빈섬의 '욕지도((欲知島)'

섬의 남쪽 집들은 산마루로 오를 수록 허물어져 있다. 천계天階가 이런 길인지, 욕지도 노을이 환하다. 집집마다 외톨노인들이 사는 마을, 멸문滅門엔 순서가 원래 없는 법이라 죽은 이웃이나 산 이웃이나 소리칠 일이 없다. 저녁답이나 아침나절 연기가 멈춘 뒤로는 담이 슬금슬금 주저앉고 풀들이 자랄 뿐이다. 시래기가 말라가는 죽담, 계곡을 기어올라온 팔뚝 굵은 붉은 게들이 호구조사 나온 사람처럼 두리번거린다. 저마다 더 나아갈 데 없는 곳까지 와서 가슴으로 바다를 받으며 달려나간 생, 젊은 날엔 알아내야할 것이 없었겠냐만 물음을 거두며 가만히 내려앉았다. 이 섬엔 뜻밖에 적막이 깊다. 산을 넘어서면 바람이 들이치는 서쪽은 집들도 몸을 낮췄다. 막 이륙하기 직전인 맨끝집, 나이가 몇인지도 모른다는 총각영감 산그늘에 쭈그리고 앉아 풍로에 부채질을 한다. 잘 붙지않는 시간의 연기를 흩으며, 느린 그림자 섬을 빠져나가려는 것처럼 고개 숙여 불길을 본다. (……)
이빈섬의 '욕지도((欲知島)'■충무로의 사무실도 때로 소슬하다. 긴급한 질문들이 대답없이 나자빠지면서 저절로 과묵해져서 저 총각영감처럼 부채를 부칠 뿐.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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