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민│<고고70>에서 <더킹투하츠>까지 이성민의 골든타임

<div class="blockquote">MBC <골든타임>은 사실상 최인혁의 드라마였다. 환자 살리기에 목숨 거는 의사 최인혁, 민우(이선균)와 재인(황정음)의 성장을 돕는 멘토 최인혁, 은연 중에 한 여자(송선미)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남자 최인혁까지 그가 등장하는 매순간이 화제가 됐다. 덕분에 <골든타임>이 끝나기 전부터 데뷔 25년 만에 첫 주연작을 맡은 지금이 배우 이성민의 ‘골든타임’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조금은 서운하고 억울한 평가이기도 하다. MBC <파스타>의 설 사장은 셰프만큼이나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이름이었고, KBS <브레인>의 고재학 과장은 ‘고블리’라는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매력적인 악역이었으며, MBC <더킹 투하츠>의 이재강은 <해를 품은 달>의 훤에 이어 또 한 번 ‘전하앓이’ 열풍을 불러 온 장본인이었다. 그에게 빛나지 않았던 순간이 없었다. 다음은 고심 끝에 고른 배우 이성민의 사랑스러운 매력이 넘쳐흘렀던 다섯 작품들이다.
한 번 상상해보자. <브레인>의 고재학 과장보다 더 긴 파마머리, <파스타>의 설준석 사장보다 더 넓은 오지랖의 소유자, 그것으로도 모자라 갈색 잠자리 안경과 발목까지 길게 늘어지는 트렌치코트가 패션의 완성이라 굳게 믿고 있으며 “이 놈의 나라에서 팝의 운명은 바람난 여인의 운명”이라는 멘트로 못 다 이룬 아티스트의 꿈을 이루려는 말이다. 생각만 해도 촌스럽다고? 이성민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담배 하나를 입에 문 채 “통금 있는 밤이 너무 지루해. 미드 나잇 레볼루셔언!”을 외치며 ‘크럽 닐바나’를 오픈할 때는 멋있는 낭만주의자, 상규(조승우)의 전화는 100번 넘게 받지 않으면서 미미(신민아)의 눈물 작전에는 당장 아르바이트 자리를 주선해주는 귀여운 남자. 그와 함께라면 정말이지 매일이 아름다운 밤일 것 같다.
<대왕세종>의 최만리는 세종의 한글 반포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신하였다. 하지만 그의 반대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이유 있는 신념이자 고집이었다. 촛불 하나 켜지 않은 방에서도 흔들림 없는 눈빛은 빛났고, 한글 반포를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읊어대는 목소리는 그의 믿음만큼이나 강하고 힘이 셌다. 고민의 종류가 달랐을 뿐, 그것의 깊이는 세종과 최만리 모두 똑같았을 터. 그래서 세종은 최만리의 반발을 쉽게 내칠 수 없었고, 최만리는 과거 세종과의 애틋했던 관계를 쉽게 잊을 수 없었다.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던 최만리가 깊은 밤 홀로 세종을 생각하며 “당신의 그 헌신만은 인정합니다. 설령 후대가, 역사가 내가 옳고 당신이 틀리다 판단해도 오늘의 저는 당신께 집니다”라고 고개를 숙이니, 세종이 어찌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흥분하면 삿대질부터 하고 불리하다 싶으면 괜히 더 큰소리치는 독불장군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고작 막대사탕 하나에 마음이 풀려서 주방 보조의 새우 밑작업을 도와주는 따뜻한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최현욱(이선균)을 쫓아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악동 같지만, 결국 최현욱의 고단수에 넘어가 “네에!! 천만 원 받았어요!!!! 또띠한테!!!”라고 이실직고하는 걸 보면 뼛속까지 악한 사람은 아니다. 최현욱에게 멱살 잡혀 끌려가는 순간에도 “나, 나... 사...사장이야”라고 자존심세울 땐 언제고 며칠 후 홀직원 유니폼 차림으로 돌아온 얌전한 ‘설막내’를 보고 있으면 그냥 꿀밤 한 대 때리고 용서해줘야만 할 것 같다. 육중한 몸을 배배 꼬면서 “나 좀 이쁘게 봐줘라, 나 잘할게”라고 애교부리는 사장 겸 막내는 이젠 라스페라의 마스코트가 되었으니까.
꼭 파마 때문만은 아니다. 웃을 때마다 눈가 주름 관리하고 진료가 없을 땐 틈틈이 뷰러로 속눈썹을 집어 올리며 기분이 한껏 좋을 때면 “으.흐.흐.흐.흐” 스타카토 웃음을 내보이는 중년 의사라니, 과연 ‘고블리’라 불릴만하다. 특히 눈을 최대한 치켜떠야 보일 듯 말 듯한 길이의 속눈썹을 끝까지 올려보려는 집요함은 이강훈(신하균)의 명예욕 못지않다. “회장님 머릿속이 아주 깨끗하십니다. 맑은 호수 같으세요”라는 직유법 아부로 VIP 환자를 내 편으로 만드는 데는 능숙하지만,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대드는 이강훈의 반항에는 여지없이 쩔쩔맨다. 그저 이강훈 없는 곳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우어어어어” 괴성을 지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뿐이다. 고재학 과장의 속 좁은 행동과 불타오르는 질투심에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고집을 부려도 될 때와 고개를 숙여야 할 때를 정확히 아는 국왕이자 철없는 동생의 투정을 다 받아주는 따뜻한 형이자 아내의 무릎을 베고 잠드는 귀여운 남편. 어떻게 한 사람이 이 모든 조건을 갖출 수 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이재강이 발 디디고 있는 세상은 언제 전쟁이 날지 모르는 험난한 분단국가이건만, 그가 보여주는 미소는 마치 걱정 없는 천국에 살고 있는 사람의 그것처럼 온화하다. 내 여자, 내 동생뿐만 아니라 심지어 내 제수씨에게도 따뜻한 남자다. “내가 좀... 나눠가지면 어떨까요? 이래봬도 나, 왕이거든요? 방패로 딱일 거예요.” 누가 보면 고백하는 줄 알겠다. 타지에서 외로워하는 제수씨(하지원)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이재강이라면, 시(어머니)월드는 싫지만 시(아주버니)월드는 두 팔 벌려 환영한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이가온 thirte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취재팀 글. 이가온 thirtee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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