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질은 우리나라 국민 절반정도가 평생 한 번 이상 겪어본 흔한 질병 중 하나다. 처음엔 통증도 없고 별거 아니라며 치료를 미루는 경우도 많지만 그리 간단히 치부할 일이 아니다. 생활 속에서 간단한 몇 가지 방법을 실천함으로써 치질을 예방하고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이정표(재무설계사, 39세)씨는 장거리 외근을 몹시 꺼린다. 고객이 조금만 멀리 있어도 찾아가서 상담해 주겠다고 선뜻 약속하기가 망설여진다. 회사에서는 그런 이 씨를 영 못마땅해 하는 눈치이지만 이 씨에게는 남들에게 말 못할 사연이 하나 있다. 바로 치질이다. 처음엔 변을 본 후 피가 나오는 정도로 통증은 없었지만 치료를 미루는 동안 불규칙한 생활과 잦은 회식, 그때마다 이어지는 과음으로 치질은 걷잡을 수 없어졌다. 이젠 변을 보는 것도 고통스럽고 특히 장시간 운전은 정말 기피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됐다.우리나라 통계에 따르면 치질은 국민의 50%정도가 평생 한 번 이상 겪거나 겪고 있는 흔한 질병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입원치료가 필요한 질병 1위를 차지했다. 2009년에만 21만4107명이 입원 치료를 받았을 정도이다.일반적으로 흔히 치질이라고 생각하는 질환은 대부분 ‘치핵’을 의미한다. 치핵은 배변 시 가하는 힘으로 항문 주위나 하부 직장에 혈관을 덮고 있는 피부와 점막이 늘어나서 생긴 덩어리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주된 증상은 항문의 불편감이 느껴진다든지, 배변을 볼 때 통증 없이 빨간 피가 변기에 퍼진다든지, 아니면 항문에서 무엇인가 튀어나온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치핵을 치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는 치핵 절제술이 있다. 치핵을 좌욕이나 약으로 통증과 출혈을 일시적으로 호전시킬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좌욕과 약을 사용한다고 해서 치핵이 완치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진행된 치핵은 수술을 해야 해결되는 외과적 질환이다. 치핵의 진행 정도에 따라 1도부터 4도까지 구분한다. 3도, 4도 치핵에 해당되면 수술을 받는 것이 좋으며 2도 치핵에서도 근본적인 치료를 원한다면 수술을 받는 것이 좋다. 또한 치핵의 증상 중 특히 출혈은 대장암 및 직장암이나 다른 위장관(胃腸管) 관련 암의 증상과 유사하므로 이러한 증상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생활습관의 개선으로 치질은 예방이 충분히 가능하다. 우선 변비를 피해야 한다. 변비가 있으면 치핵은 당연히 잘 생긴다. 이는 딱딱한 대변을 억지로 볼 때 항문압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변비 예방을 위해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고, 채소와 잡곡밥 등 다량의 섬유질을 함유한 식사를 하도록 한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아침식사를 꼭 하는 것이 좋다. 아침에는 대개 위가 비어 있게 되는데, 이때 아침식사를 하면 위-결장 반사가 일어나서 대변을 원활하게 볼 수 있다. 유산균 발효유 복용도 장내 환경을 개선하고 장운동을 원활하게 하여 변비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항문 주위가 공기와 소통하게 하는 것이다. 치핵 예방을 위해선 헐렁한 면소재의 옷을 입어 항문 주위의 공기소통을 원활히 해주거나 항문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항문 괄약근 강화를 위한 항문 조이기 운동, 누워서 다리를 직각으로 들고 무릎을 굽혔다 펴기를 반복하는 하지 유연운동도 예방에 효과적이다. 세 번째 술을 멀리해야 한다. 치핵은 항문의 혈관이 뭉쳐있는 정맥총과 관련되어 발생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면 일시적으로 혈액유입이 촉진되어 정맥총으로 많은 양의 혈액이 공급된다. 이때 혈관의 탄력성이 떨어져서 혈액순환이 되지 않고 늘어나 정체된다. 따라서 술은 치핵에 절대적으로 해롭다. 치핵이 있는 사람이 만취상태로 잠든 후 다음날 일어나 보면, 치핵이 하룻밤 사이에 충혈되고 커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네 번째 의자나 변기에 너무 오래 앉아 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의자에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항문이 압박돼 치핵이 생기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하며 화장실에 오래 앉아있는 습관도 삼가해야 한다. 다섯 번째 목욕이나 좌욕을 자주 하는 것이다. 목욕을 자주 하면 우리 몸 전체의 혈액순환과 특히 항문 정맥총의 혈액순환에도 도움이 많이 되므로 따뜻한 물에서 전신욕을 하는 것도 좋고 항문 좌욕을 하는 것도 좋으며, 항문에 샤워기를 대고 항문샤워를 하는 것도 좋다. 배변 후 비데를 사용하는 것도 치핵 예방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비데 수압을 너무 높여 통증을 느낄 정도는 피해야 하며 치열 등으로 항문에 상처가 있어서 통증이 있을 때는 상처가 나아 통증이 없을 때까지 당분간 비데 사용을 중단하는 것이 좋다.
김갑중 | 서울스카이(SKY)병원 원장·외과 전문의(소화기·위암)·서울대학교 의과대학졸업·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석·박사·前 서울아산병원 외과 전임의·前 서울아산병원 외과 교수<ⓒ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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