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재훈 기자)
몇 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조카가 미국 유학길에 오를 때 여비에 보태라며 봉투를 건넸다. 글쓴이는 겉면에 ‘장도(壯途)’라고 적었다. 흔히 썼던 말이지만 신세대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한자어. 그 뜻은 “중대한 사명이나 장한 뜻을 품고 떠나는 길”이다. 단어의 의미대로 조카 녀석은 작지만 장한 뜻을 품고 미국으로 향해 3년 반 만에 우수한 성적으로 학부를 마쳤다. 이번 가을 학기에 대학원에 진학한다. 대학원도 1년 반 만에 마칠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을 받았다. 23세 이하의 선수들을 축으로 꾸려진 한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이 15일 장도에 올랐다. 이 기사가 공개됐을 때는 런던에 도착해 있겠다. 제30회 하계올림픽에 출전하는 이번 선수단은 중대한 사명을 안고 있다. 국민 모두가 기대하는 한국 축구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이다. 지난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질랜드와 평가전을 앞두고 서울 지역에는 장맛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경기장이 위치한 서울 마포구 성산동 일대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퍼붓듯 내리던 비는 경기 시간이 가까워오자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경기를 치르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경기에서 선수단은 다양한 희망을 쏘아 올렸다. 주전 공격수 박주영의 골 감각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2-1의 경기 결과는 축구 팬들에게 분명 기분 좋은 일이었다. 경기 중반 뉴질랜드가 다소 거친 플레이를 할 때 우려를 불러일으킨 부상도 나오지 않았다. 그간 축구팬들은 주요 국제 대회를 코앞에 두고 주력 선수가 부상을 당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주전 공격수로 뛰던 황선홍이 크게 다쳐 본선 무대를 한 차례도 밟지 못한 것이 대표적이다.한국에 오기 전 일본에 일방적으로 밀리다 1-1로 비긴 뉴질랜드의 전력을 낮게 보는 이들도 있다. 경기가 끝난 뒤 닐 엠블렌 뉴질랜드 감독은 스스로 약체라는 표현을 꺼냈다. 경기를 앞두고는 “한국과의 평가전은 올림픽 예선에서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수준 높은 팀과 경기를 치러 보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럴 만도 하다. 호주가 아시아축구연맹으로 이사한 뒤 오세아니아축구연맹에서 ‘토끼’였던 뉴질랜드는 단숨에 ‘호랑이’가 됐다.
(사진=정재훈 기자)
뉴질랜드는 이번 올림픽 B조 예선에서 파푸아뉴기니를 1-0, 통가를 10-0으로 꺾은 뒤 준결승에서 A조 2위인 바누아투를 3-2, 결승에서 피지를 1-0으로 꺾고 본선 티켓을 손에 넣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솔로몬제도, 피지, 파푸아뉴기니, 바누아투, 쿡제도와 ‘돌려서 맞붙기’를 해 5전 전승(19득점 3실점)으로 본선에 올랐다. 보기에 따라서는 거저 올림픽 출전권을 땄다고 여길 수도 있다.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에 나선 뉴질랜드는 중국과 1-1로 비기고 브라질에 0-5, 벨기에에 0-1로 져 조별 리그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은 달랐다. 뉴질랜드는 조별 리그 F조에서 슬로바키아, 이탈리아와 1-1로 비긴 데 이어 파라과이와도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한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이 환송 경기를 겸한 마지막 국내 평가전에 약체를 불러 놓고 샌드백을 두드리듯이 한 경기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선수 개개인을 살펴보면 그런 생각은 더 굳어진다. 와일드카드(34살)로 주장을 맡은 수비수 라이언 넬슨은 미국 프로축구 MLS의 DC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블랙번, 토트넘 등에서 뛴 베테랑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기도 한 그는 다가오는 시즌 박지성(퀸즈 파크 레인저스)과 함께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이밖에도 잉글랜드 프로축구 1, 2부 클럽에서 활약하는 선수는 즐비하다. 수비수 팀 페인은 블랙번, 수비수 토미 스미스는 입스위치, 공격수 크리스 우드는 웨스트 브롬미치 알비온, 미드필더 카메론 호위슨은 번리에서 각각 뛰고 있다. 공격수 코스타 바바로스는 그리스 리그의 명문 파나티나이코스 소속이다. 겨뤄 볼 만한 상대와 싸운 한국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 역시 10여 년 전 만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이력을 뽐낸다. 최근 잉글랜드 프로축구 2부 리그 챔피언십의 카디프로 이적한 김보경을 비롯해 무려 5명의 선수가 유럽무대를 누빈다. 다른 국외 리그 선수들을 포함하면 그 수는 11명으로 늘어난다. ‘올림픽 대표=국가 대표’이던 시절에는 대학생 선수가 올림픽 대표로 뽑혀도 화제를 모았다.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한 멕시코는 지오반니 도스 산토스(토트넘)만 국외에서 뛴다. 스위스는 유럽 지역의 특성으로 팀 클로제(뉘른베르크) 등 10명이 잉글랜드, 독일, 우크라이나, 이탈리아 등 국외 리그에서 활동한다. 가봉은 8명의 선수가 마르세이유 등 프랑스 리그에서 뛴다. 가봉은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현지 시간으로 26일 오후 2시30분 뉴캐슬에서 한국과 멕시코의 런던 올림픽 남자 축구 조별 리그 B조 첫 경기의 휘슬이 울린다. 축구는 올림픽 일정상 사전 경기를 치른다. 그 결과는 한국 선수단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열흘 뒤, 영국에서 들려 올 낭보를 기대한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골프팀 이종길 기자 leemea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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