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에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옹졸하게 욕을 하고/한번 정정당당하게/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중에서■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는 책이 나온 적이 있지만, 김수영은 소시민인 자아의 비겁을 저토록 심각하게 고발하고 있다. 분노하기는 하는데, 해야할 데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만만한 곳에서만 소리 높이는 버릇. 문제의 핵심을 비켜 서서 곁다리를 갉작거리며 할 말은 다 하노라고 자위하는 버릇. 어디 김수영만의 일이겠으며, 어디 김수영시대에만 그랬던 일이겠는가. 지금의 나, 지금의 신문들, 지금의 지식인들과 리더들, 공직자들. 모두 저 '김수영의 옹졸'에서 멀리 벗어나 있지 못한다. 왕궁으로 상징되는 거대한 문제를, 서슬퍼렇게 직핍하여 인생을 거는 담대한 분노는 내 가슴 어디에 들어있던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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