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샷" 소리와 함께 라운드가 시작됐습니다.빵빵한 비거리는 물론 페어웨이를 한 번도 놓치지 않는 오늘의 고객들은 정말 '고수들'임이 틀림없습니다. 저도 덕분에 '캐디 같지 않은 캐디'가 됐습니다. 입만 뻥긋할 뿐 그다지 할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편안한 전반을 마치고, 후반 라운드에 돌입합니다.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렇게 잘 치던 고객들이 갑자기 이상해졌습니다. 티 샷이 끝나자마자 어디론가 흩어져 페어웨이 밖으로만 다니다가 그린 근처에서야 간신히 모입니다. 한 두 명도 아니고 네 명 모두 그러니 너무나 당황스럽습니다. 여기저기서 "아이구, 아이구~" 비명도 들립니다. 당연히 스코어는 셀 수 없이 불어납니다.전, 후반에 몇 타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은 이해하지만 무려 20타에 가까운 스코어 차이가 나오니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죠. "고객님. 뭐 불편한 거 있으셨어요? 아니면 그늘집에서 뭐 잘못 드신 거예요? 우리 고객들은 다 어디가시고 다른 분들이 오셨어요?" 보통의 싱글핸디캐퍼들이라면 벌써 '무너짐 방지 체제'로 들어갔겠지만 정작 본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볼만 열심히, 그리고 아주 많이 치고 있습니다.아무리 그래도 네 분이 똑같이 이렇게 무너지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걱정하고 있는 제가 신경이 쓰였는지 한 고객께서 "언니, 나 베스트가 몇 타인줄 알아?"하고 묻습니다. "글쎄요?"라고 대답했더니 "38타야"라고 합니다. 당연히 믿을 수 없는 스코어입니다. "우리는 9홀 플레이만 해서 베스트도 9홀로 따져. 히히~" 알고 보니 네 분은 평소 회사와 근접해 있는 9홀 골프장만 자주 다녔다고 합니다.그래서 체력이 9홀에 맞춰져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라이프 베스트도 9홀에서, 첫 버디와 첫 이글도 물론 첫 9홀에서 작성했습니다. 가끔씩 18홀 플레이를 할 때면 오늘처럼 전반 9홀만 잘 치고, 후반에 무너지기 마련이랍니다. 우리 고객들을 보면서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주말 골퍼들을 돌아보게 됩니다.조금은 비싼 그린피와 빠른 진행 재촉 등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즐거운 라운드를 위해 캐디 눈치까지 보는 주말 골퍼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캐디들이 골퍼들의 스코어를 줄여주지는 못하지만 시원하게 탁 트인 바다를 보며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 버릴 수 있도록 즐거운 라운드를 위해 애쓰는 맘을 갖는 정도는 할 수 있겠죠.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골프팀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golfkim@ⓒ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