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윤동주의 '참회록' 중에서(1942.1.24)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이다지도 욕될까.//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년 일 개월을/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당시 루소나 톨스토이, 혹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고백록)을 읽었을까. 하지만 윤동주는 유럽의 철학자들처럼 깊고 멀리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얼굴을 녹슨 구리거울에 비춰보며 왕조의 유물이라고 느끼는 장면에서는, 절망적인 유민(遺民) 의식이 어른거린다. 시인은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굳이 한줄씩으로 정리한다. 이 '한줄'이란, 변화없는 단순함과 무의미를 함축하는 기분을 담는다. 거울을 닦는 것은, 자신을 살피는 참회의 은유이지만, 그 거울 속에 운석 밑으로 걷는 사람의 뒷모양이 등장함으로써 생생함을 얻는다. 유성이 떨어지는 밤, 그는 어디로 걸어갔는가. 세상 사람들에게 내보이지도 않은 이 시를 품에 안고 그는, 별들이 머리 위로 추락하는 그 밤을 홀로 감연히 걸어갔을 것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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