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이 시작되자 우르르 스태프들이 거실로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굳게 닫힌 작업실 방문 너머에서는 작사를 하는 여자 이시영과 작곡을 하는 남자 박재범의 음악이 싹트고 있다. 집중도를 높이고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두 남녀와 카메라만을 남겨뒀지만, 두 사람의 열띤 토론은 어느새 문 너머로 새어나온다. 작사를 종용하는 재범에게 “지구 온난화”를 테마로 하겠다고 선언하는 이시영과 이에 “지...구 옹나나가 뭐야?”라고 되묻는 재범의 엉뚱함은 그야말로 백중지세. 급기야 북극곰이 살 곳이 없는 현실에 대한 이시영의 비장한 설명과 “흰 곰? 오우, 폴라아 베어?”라며 진지하게 받아치는 재범의 대화 앞에서 스태프들은 하나 둘 씩 입을 가리고 숨죽여 웃음을 삼킨다. 하지만 잡담도 잠시, 둘은 금방 박수를 치며 노래 만들기에 몰입하고 둘의 작업 방식은 예측을 불허한다. 찍는 만큼 편집해야 하는 제작진의 속마음 역시 어떤 장면으로 방송을 꾸릴지 예상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잠깐 쉬는 시간에도 나란히 앉아 음악의 여운을 흥얼거리는 두 사람이 촬영 회차만큼이나 부쩍 가까워진 한 팀으로 보인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음악을 만들기 위해 모였지만 MBC MUSIC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이 펼쳐 보이는 것은 감정을 만들어내는 연금술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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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3>“음악 안에 사랑을 녹여내고 싶었다”<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의 권영찬 PD</H3> MBC의 <우리 결혼했어요>가 방송되던 시간에 편성되었다. 예상 못했던 일이었을 텐데. 권영찬 PD: 실제 제작 환경에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상파를 통해 프로그램과 채널의 홍보가 이루어지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한다. 아무래도 편성적으로 MBC MUSIC보다 MBC에서 먼저 방송을 하기 때문에 우리 채널에서의 ‘본방 사수’를 유도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 중이다. 편집된 장면들을 살려서 못 봤던 장면을 제공한다던지. 한 팀을 따라가던 방식에서 동시에 두 개의 팀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권영찬 PD: 그 부분은 MBC 편성의 영향이 있다. 방송 시간이 원래 45분이던 것이 75분으로 결정 되면서 아무래도 하나의 팀으로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두 팀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둘의 다른 음악적 색깔을 비교할 수 있어서 좀 더 재미가 보강되는 것 같기도 하다. 순발력이 필요한 일이었는데, 섭외의 여유가 있어서 가능했던 선택이다.권영찬 PD: 기본적으로 미리미리 섭외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고, 요즘은 먼저 출연하고 싶다고 연락이 오는 경우도 많다. 여배우들은 아무래도 자신이 참여한 노래가 영원히 남는다는 특별한 경험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작곡을 해야 하는 쪽에서는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겠다.권영찬 PD: 그렇지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웃음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뮤지션이라는 정체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장점에 더 주목하는 것 같다. 막상 촬영을 시작하면 실제로 OST나 다른 가수의 음반에 사용될 곡을 써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치열해지기도 한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보니 새벽까지 촬영이 있는 날에도 밤을 꼬박 새서 곡 작업을 하더라. 그만큼 힘들지만 두 사람을 만나게 하는 명분으로는 음악이 확실한 기능을 한다.권영찬 PD: 그래서 노래에 대한 평가도 최대한 리얼하게 보여주려고 한다. 출연자가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는 동시에 프로그램의 리얼리티가 확보되어야 하니까. 그런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제작진에서는 계속해서 곡이 필요한 쪽과 출연자들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다. <H3>“서먹서먹함에서 설렘까지, 딱 그 정도의 과정을 보여준다”</H3>
노래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데이트의 명분도 중요하다. 권영찬 PD: 물론 우리 프로그램이 대놓고 연애를 하고 데이트를 하는 콘셉트는 아니다. 두 사람이 친해지기 위해서 여행을 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하는 행동들이 다 음악의 영감을 얻기 위한 것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심지어 곡 작업을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분 전환을 잠시 할 수도 있는 거고. 아직은 데이트를 위한 데이트를 진행한 적은 없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황상 <우리 결혼했어요>와의 비교를 피하기는 어려울 텐데.권영찬 PD: 인기 프로그램과 나란히 언급된다는 사실은 영광이다. 하지만 기획 단계에서는 <우리 결혼했어요>를 떠올린 적이 한 번도 없다. 연예인들의 만남이기 때문에 비슷하게 생각 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 프로그램은 두 사람이 만나서 친해지고 감정이 생기는 그 순간 바이바이 한다. 앞으로 차별화를 위해 더 노력하겠지만 목적과 디테일이 다른 방송이다. 서먹서먹함에서 설렘까지, 딱 그 정도의 과정을 보여주는 거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기획 안에 음악이 있었다. 다른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영감을 받는 편인가보다.권영찬 PD: 워낙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해서 많이 참고한다. 이전에 Mnet에서 연출했던 <엠넷 스캔들>의 경우에도 영화 <노팅힐>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계속해서 음악 채널에서 ‘연애 예능’을 만들고 있는 셈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권영찬 PD: 음악과 사랑은 너무나 밀접하다. 사랑과 이별이 있어야 음악을 만들 수 있지 않나. 물론 차트나 라이브 같은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음악 안에 사랑을 녹여내고 싶었다. <엠넷 스캔들>은 음악을 하는 가수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고 싶었고, <세레나데 대작전>은 만들어진 음악이 어떻게 쓰이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취향으로 리얼리티를 너무 좋아해서 세 가지를 복합적으로 프로그램에 적용하게 되는 것 같다. 분야의 노하우 같은 것도 생겼을 것 같다. 막 만난 두 사람을 친하게 하는 법이랄지.권영찬 PD: 더 많이 고민할 부분인데, 지금까지는 주로 술을 마셨다. (웃음) 아무래도 술자리가 사람을 좀 더 편안하게 만들어 주니까. 그리고 사전 인터뷰를 하면 술 한 잔 하면서 친해지고 싶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출연자 스스로도 빨리 마음을 열어야겠다는 의지가 있으니까. 술자리 같은 경우는 더욱더 현장에서 개입할 여지가 없을 텐데.권영찬 PD: 우리는 촬영에 대해서는 구성을 디테일하게 준비하지 않는다. 그래서 박진희 씨는 13시간씩 촬영하고 10분 방송 된다고 깜짝 놀라시기도 하더라. 원래 이런 거냐고. (웃음) 어색하면 어색한대로 방송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재미니까 가능하면 리얼함을 살리려고 한다. 오늘 재범 씨와 시영 씨를 둘만 놔 둔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을 끌어내기 위함이었고, 그래야 출연자들도 진심으로 프로젝트에 몰입한다. 박진희 씨는 준호-소은 커플의 노래가 차트 4위까지 했다고 본인은 꼭 1위를 달성하겠다고 의욕이 충만하시고, 이시영 씨는 셀카에서 부스스한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는데 정말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현장을 예상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사전 인터뷰겠다.권영찬 PD: 인터뷰를 통해서 출연자의 성향과 취향을 대부분 파악한다. 그리고 두 사람을 매칭할 때도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결정한다. 성격적으로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들을 찾는 거다. 인물의 매력을 알아보는 감식안이 필요한 일이다.권영찬 PD: 내가 인물에 대해 애정을 가진 부분을 방송을 통해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아무래도 크다. 준호 씨도 그렇고, 뮤지션들이 사실은 굉장히 남자답고 음악에 진지한 모습이 많은데 그런 것들이 잘 방송에 보여지지 않으니까 안타깝기도 했다. 부드러워 보이는 존 박이 사실은 오글거리는 걸 못 참는다던지, 새로운 면모가 보여질 때 나 스스로도 재미를 느낀다. 결국 앞으로 얼마나 보여주고 싶은 매력을 가진 인물이 계속 섭외되느냐가 관건이겠다.권영찬 PD: 광고나 영화와의 공조도 생각하고 있고, 다방면으로 섭외에 힘쓰고 있다. 남자 배우가 작사를 하고 여자 뮤지션이 작곡을 하는 케이스도 시도해 보고 싶다. 아, 그리고 실현 안 되겠지만 한혜진, 나얼 커플처럼 실제 여배우와 뮤지션이 출연해 줘도 정말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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