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그림사롱 95회|한국화가 송대성…‘봄 소리-강의 기억’ 연작
춤추는 강, 91×73㎝ 장지채색, 2012
흔들림 속에 있다. 마주보고 오는 이 내사람 같아서, 마침내 유장(悠長)한 강물에 풀어지는 생의 아픈 고비들을 바라보며…. 바람 한 점, 안녕하며 스치듯 지나간다. 나는 그속에서 흔들리며 서 있다! 아침으로 발돋움하는 쉰 새벽 태양은 강어귀서 짙은 연분홍 햇살의 율동으로 여로(旅路)를 열었다. 꺽지, 돌고기, 각시붕어의 자유로운 몸짓이 일으킨 뿌연 흙탕물에 어른거리는 그 무엇 하나.공연한 질투로 입술을 깨물다 앙증맞은 손으로 사내의 뺨을 때리며 ‘당신께 바친 밤을 되돌려 줘!’라며 가슴에 묻혀 몸부림치다 빠뜨린 오렌지색 립스틱이 떠올랐다. 춘정(春情)이 가라앉은 붉은빛 띤 흰색 개벚꽃이 까칠까칠한 공기를 타고 산을 내려와 여울목에 떨어져 세상 아랑곳없이 물위에 나른히 드러누웠다. 쉼 없이 젖어드는 사연들을 끌어안으며 강물은 유유히 흘러간다.
탐진강의 여울, 73×91㎝ 장지채색, 2012
저 꽃잎처럼 다정히 흔들리고 싶어라. 잔돌 틈 사이 낡은 비늘만 고스란히 떠올라 가엾고 간신히 비운 마지막 이별 잔엔 차라리 간간한 눈물 맛이 났다. 산기슭 양지바른 구릉. 타다 남은 불길같이 미혹의 짙은 적자색 할미꽃이 가쁜 호흡을 헉헉 뱉어내듯 아래를 향해 꽃 피웠다. 들판엔 마른 바람이 푸념처럼 회오리를 일으키면 어디선가 텃새 한 쌍이 먹이를 찾아 날아들었다.마을의 큰어머니로서 지혜 들려주던 할머니온화하게 겸양의 자애를 감싸 안은 빽빽한 은빛 꽃등은 한 점 흐트러짐이 없다. 이웃의 핏줄도 내 새끼로 끌어안는 백발의 모성은 강물과 다름이 없다. 대지를 뚫고 새싹을 틔우는 가슴 뜨거운 희망의 열정을 보여주는 꽃. 한 마을의 큰 어머니로서 연륜의 지혜를 드넓게 펼치며 강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 눈 감아도 떠오르는 강물을 닮은 모습. 지금도 생생한 커다란 바위. 그 물줄기를 따라가면 저만치 고향마을 보일까. 세월은 욕망의 겉옷을 벗기고 주름진 육신의 강물위에 황혼이 떠가네. 강이 내 마음을 이끈다. 사려 깊은 혜안을 일러준 뒷동산 할미꽃!
춤추는 강, 73×91㎝ 장지채색,2012
제비꽃 피면 꽃은 뒤질새라 무리지어 솟아올랐다. 무엇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나. 코 흘리게 아이들은 할미꽃 앞에 쪼그리고 앉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몇 번이나 조심스레 만지려다 그 옆에 드러누웠다. 무엇을 품고 있기에 저리도 수줍어하나. 한 아이가 보석이 있을 것이라 신나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두 손으로 감싸 들어올렸다. 텅 비어있음. 미혹의 강렬한 남빛 꽃봉오리만 뇌리에 남은 채 아이들은 그날 유난히 허망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왔다.이코노믹 리뷰 권동철 기자 kdc@<ⓒ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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