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정선기자
▲ 런던에서 선보인 2012 봄·여름 컬렉션
▲ 런던에서 선보인 2012 가을·겨울 컬렉션
Q. 박윤수 디자이너의 이름 아래 현재 3개 라인을 가지고 있다. 어느 순간 리뉴얼을 결행하고 움직이고 있더라. A. 1989년부터 43번의 서울컬렉션(SFAA)을 했다. ‘박윤수’를 론칭하고 최근 10년을 보면 타깃은 나이가 들고 내 옷은 자꾸만 젊어지더라. 그래서 갈등을 좀 해 왔다. 그러다 2011년에 리뉴얼하면서 ‘빅 박’ ‘P+by 박윤수’를 론칭한 거다. 빠른 건 아니었던 거 같다. 이번에 런던에 다녀오면서 ‘조금 더 일찍 올 걸’ 하는 생각이 들더라. 패션은 ‘젊다’는 말로도 대신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Q. 독일 가방 브랜드 MCM과의 협업으로 ‘MCM by 빅 박’을 출시했다. 이번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진 건가. A.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MCM 측이 지난 서울컬렉션을 지켜보며 디자이너를 물색했던 것 같다. 지난 쇼를 통해 낙점되어 계약을 맺었다. 내가 가죽이란 소재를 좋아해서 매번 사용하는데 그게 또 어울렸을지 모르겠다. 이런 사례가 없었던 것 같다. 보통은 중장기적인 작업은 외국디자이너들과 하는 식이잖나. 중국을 공략하는데 한국 디자이너가 서양인보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이번 MCM과의 협업은 브랜드는 온전히 지키면서 디자인만을 하는(브랜드까지 흡수하는 것이 아닌) 선례로 남을 거라고 본다. 현재 MCM by 빅 박 컬렉션은 홍콩과 유럽, 미국, 두바이 등 MCM 전 세계 매장에서 선보이고 있다. 그 물품은 모두 한국에서 제작해 공급하고 있다. Q. 리뉴얼도 그렇고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며 시장에 적응하는 1세대 디자이너로는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A.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돌파구가 있다면 브랜드를 리뉴얼해 좀 더 국제적인 브랜드로 키우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좀 더 대중적인 브랜드 p+by 박윤수와 그보다 조금 더 가격대가 높은 빅 박을 만들고 20년을 이어온 기존 박윤수 브랜드는 점차 라인을 줄이고 있는 와중이다.▲ 홍콩 MCM 매장 전경
Q. 브랜드가 장기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린 이유는 무엇일까. A. 꾸준하다는 게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저 내가 아직도 열정이 식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나는 열정 빼면 남는 게 없는 사람이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난다. 늘 무언가 하고 있고 움직이고 생각한다. 안주하지 않으면서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했고 살아남은 1세대 디자이너가 됐다. 다국적 기업에 대응하려면 이렇게 바뀌는 수밖에 없다고 일찌감치 생각했으니까. 수완이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없는 거 같기도 한데 묘하지. Q. 국내 패션을 이끌어 온 디자이너로서 많은 선례를 남겨주면 좋겠다. A. 디자이너는 모든 걸 다 해봐야 하는 거 같다. 질 샌더(Jil Sander)만 봐도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거 같다. 그간 유니폼도 만들고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로더(Estee Lauder)와 콜레보레이션 한 것도 그런 경험에 속할 거다. 판매와 제작, 디자인의 탄탄한 내부 구조를 갖춘 것도 경쟁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Q. 그간 “디자인은 여백”이라고 말해왔다. 지금도 변함없나. A. 어린 아이들은 늘 양 손에 꽉 쥐고 있다. 거기에 하나를 더 주려고 하면 가진 하나를 내려놓곤 한다. 나는 그 버릴 수 있는 것, 어떻게 보면 다 갖지 않고 부족함을 지닌다는 것이 중요했던 거 같다. 늘 부족하게, 여백을 가져야 한다고 되뇌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2012 가을·겨울 컬렉션 화보
Q. 국내 브랜드는 디자이너가 사라지면 보전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디자이너인 두 딸이 당신을 돕기도 하는데 그들이 당신의 브랜드를 이어가게 되는 걸까. A. 지난 빅 박 컬렉션에서는 아이들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때는 나의 멘토들이었다. 내가 수용하지 않던 음악도 전적으로 아이들 말을 따라 바꿨었고. 그랬더니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아직은 아이들과 함께 할 시점은 아니다. 시장이 작고 또 그 안에 공룡이라 할 거대 기업이 있고. 그저 지금은 밀어주고 있다. 아직 20대 후반이니까. 깊이 박윤수라는 디자이너의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도 없다. 아마도 각자 생각이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디자이너로서의 성공은 40대여도 좋다고 생각한다. 후반전에 돌입해 부침 없이 끝까지 더 잘해내는 게 중요하다. Q. 4월 7일 서울컬렉션 쇼 날짜가 잡혔다. 쇼를 준비하며 바쁠 시기인데 요즘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나. A. 서울컬렉션이 목전인 요즘, 새삼 ‘내 것은 뭘까’를 생각한다. 20여 년 내 디자이너로서의 기록이 나를 말해주겠지만 색깔, 경쾌함 등등이 내 특징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끝까지 내가 찾아가야 하는 지점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늘 신인처럼 새로운 시즌을 스케치하면서 처음을 생각한다. 서울컬렉션에 함께한 진태옥, 설윤형, 지춘희 등등의 디자이너들. 나는 시작할 때 큰 사람들 옆에 있었다. ‘큰 나무 옆에 가면 죽는다는데 큰 사람 옆에 가면 사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채정선 기자 est@<ⓒ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