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버린 권혁세, 학생들과 '인증샷'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서민경제를 위한 정책을 펴겠다'는 말은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생들은 학교 앞에서 파는 5500원짜리 제육덮밥 한 그릇에도 벌벌 떠는데, 이제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을 내 주셨으면 합니다.""마그네틱 카드를 IC카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와 불편이 있었습니다. 내부적으로 소통이 잘 안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향후 해결방안은 마련하고 계신가요."대학생들의 예리한 질문에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곤혹스런 표정을 짓곤 했다. 금융회사의 사회적 책임을 비롯해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 개정안, 가계대출, IC카드 교체 등 최근 금융계 현안이 총 망라된 대학생들의 송곳 질문이 계속된 것. 흡사 국회 국정감사 현장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이 곳은 건국대학교 캠퍼스. 권 원장이 산학연계 금융교육을 위해 찾은 '캠퍼스 금융토크' 현장이다. 강당은 300여명의 대학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자리를 찾지 못한 학생들은 강당 뒤에 빼곡히 서서 수첩을 꺼내들었다. 14일 열린 캠퍼스토크는 지난해 이화여대와 전남대에 이어 세번째다.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권위적'이란 금융감독원의 이미지를 개선한다는 취지로 권 원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토론에 나섰다. 열띤 토론 공방이 끝나자 여학생들이 우르를 권 원장 주위로 몰려들어 '인증 샷'을 요구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말이 '토크'지 행사장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최근 금융업계 화두를 정확히 꿰고 있는 학생들의 질문에 권 원장은 물론 자리를 함께 한 김희건 신한카드 부사장, 송여익 하나은행 인력지원부장, 김지혜 우리투자증권 대리 등 현장금융 '배테랑'의 얼굴에 긴장감이 흘렀다.한 학생이 "당국의 서민경제 정책이 체감되지 않는다"고 지적하자 권 원장은 "금융감독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가슴이 뜨끔한 이야기"라며 한 발 물러서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재정을 유지해 나가면서도 금융회사들이 어려움에 처한 가계와 중소기업에 저금리 대출을 제공토록 할 것"이라면서 "당국과 정부에서도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공헌과 기부에 대한 관련 정책도 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입 3일만에 정책을 철회, 금감원의 자존심에 상처를 남긴 IC카드 사용중단 문제도 쟁점이었다. "금융위원장도 몰랐다고 할 정도로 제대로 홍보가 안됐다"는 지적에 권 원장은 "고객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였으나 결과적으로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고 자평했다. 이어 "금융회사에 대한 독려가 미흡했고, 결국 소비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는데 실패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정부가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을 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여전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카드수수료가 협상력이 좋은 대기업에게는 낮게, 영세 자영업자에겐 높게 적용되는 등 힘의 균형이 깨진 상태가 합리적이냐"고 반문한 뒤, "정부가 가격을 일일이 결정하는 것은 시장경제원리에 맞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균형'을 맞추자는 법의 취지는 살려서 업계에 '권고'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인생 선배의 조언도 잊지 않았다. 권 원장은 "학생들이 등록금과 생활비 문제 등으로 사금융에서 대출을 받아 큰 빚을 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러나 첫 단추부터 잘 끼워야 하듯, 고금리 대출에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경제관련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경제신문을 읽기를 권한다"면서 "향후에 취업을 하건, 창업을 하건 간에 경제를 보는 눈을 한 단계 높여 놓는 것이 유익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행사에서 처음 도입되는 '산학 멘토링' 프로그램도 반응이 좋았다. 권 원장은 2시간 가량 진행된 대화를 마친 뒤 멘티 대학생들과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멘티 대학생들은 금융업계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채용 정보에 귀를 쫑긋 세웠다. 행사가 끝난 뒤 권 원장은 "대학생들이 금융이슈를 꿰뚫고 있어 좀 걱정이 된다"는 가벼운 엄살을 피웠지만 대학생들이 대견하다는 듯 연신 흐뭇한 표정이었다. "정부나 금융당국을 바라보는 대학생들의 수준이 이렇게 높으니 우리도 수준을 더 높여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현재 시행하고 있는 모든 정책을 한 번 더 철저하게 따져봐야 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우리 금융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려면 맨파워가 중요하다"면서 "전문가는 하루아침에 나오는 게 아닌 만큼 대학 시절부터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금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창의적인 생각과 열정, 금융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통해 금융업계의 '스티브 잡스'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현정 기자 alphag@<ⓒ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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