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주 감독 “여전히 세상이 궁금하고, 불안한 내 인생이 즐겁다”

영화 <화차>에서 갑자기 사라진 약혼녀 선영(김민희)의 흔적을 추적하는 남자 문호 역을 맡은 이선균이 이 작품에 출연을 결정한 것은 2010년 10월이었다. 그런데 투자에도 캐스팅에도 진전 없이 6개월이 흘렀다. 요즘 가장 바쁜 배우 중 하나인 이선균은 무작정 기다렸다. <화차>의 개봉을 앞둔 얼마 전, 변영주 감독이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계속 기다렸던 거니?” 이선균이 특유의 심드렁한 말투로 대답했다. “나까지 빠지면 영화 안 될 것 같더라구. 감독님은 막 늙구, 영화 못 만들면 안 될 것 같구...” 이 사소한 에피소드에는 <화차>가 만들어지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변영주 감독을 응원해 온 한국영화계 수많은 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1995년, 변영주 감독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낮은 목소리>를 내놓은 지 18년이 흘렀다. 시장은 크게 달라졌고 이십대였던 젊은 감독도 마흔을 훌쩍 넘겼지만 변영주 감독은 여전히 누가 봐도 ‘영화 못 만들면 안 될 것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화차>는 오랜 시간 단단히 벼려 내놓은 만큼 뜨거운 무쇠 같은 영화지만, 영화보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토로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변영주 감독은 따스한 사람이다. 영화는 극장에서 보고, 이 사랑스러운 사람의 이야기는 여기서 들어보길 권한다.* 이 기사에는 영화 <화차>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hr/> <발레 교습소> 이후 7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화차>를 내놓았다. 이 긴 프로젝트의 시작은 뭐였나. 변영주 감독 : <발레 교습소> 끝나고 군대에 간 (윤)계상이로부터 이듬해 3월쯤 두꺼운 군사우편이 왔다. 최전방 GOP 부대 화장실에서 밤에 몰래 쓴 스무 장 넘는 편지에 자기가 영화를 찍으며 얼마나 행복했는지가 절절히 담겨 있었다. 부끄러웠다. 내가 좀 더 영화를 잘 만들었다면 이 친구는 우리가 거둔 성과에 대해서도 쓸 수 있고 더 큰 희망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래서 경주로 반성의 여행을 떠났다가 들고 간 가네시로 카즈키의 <레볼루션 NO.3>를 읽다가 철철 울었다. <발레 교습소>에서 우리가 하고 싶었던 걸 이 사람은 문학적으로 해냈구나 싶었다. 장르의 힘을 빌어 당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의 파워에 새삼 놀랐고, 경주 시내 서점에 가서 무작정 긁어 온 일본 장르 소설 중에 <화차>가 있었다. 미야베 미유키가 좋았던 건, 시대의 공기를 정말 절묘하게 읽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제작사 마술피리에서 <화차>의 판권을 샀다는 소식에 오기민 대표를 찾아갔다. “미야베 미유키는 내 전공이지” 하면서. (웃음) <H3>“미학적 목표는 25억 예산의 영화로 보이는 것”</H3>
그런데 7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가장 큰 이유는 뭔가. 변영주 감독 : 그 사이 2년은 다른 일을 했으니 정확히는 5년인데,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일본 사회의 분위기 그 자체가 주인공인 원작을 지금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바꾸어나가는 각색에 일단 3년이 걸렸다. 1고부터 9고까지가 다 굉장히 다르게 나왔고, 재작년 10월 이선균에게 18고를 건네준 뒤 만나 오후 4시부터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신 뒤 널려진 소주병 사이에서 도원결의를 맺었다. (웃음) 그런데 그 다음 해 4월까지 투자가 안 되고 배우들도 컨택이 안 됐다. 보니까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시나리오가 좀 어둡긴 하지만 재밌고 이선균도 있는데 감독이 변영주? 정말 변영주가 아직도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변영주가 이런 장르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심이 투자를 주저하게 만든다는 게 보였다. 극적인 타결이 이루어진 것은 어떻게 해서였나. 변영주 감독 : 필라멘트 픽쳐스에서 16억 원으로 만들 수 있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신혜은 프로듀서와 한 이틀 고민하다가 우리 페이를 깎고, 배우들에게 부탁해 출연료도 좀 깎고, 박곡지 편집실과 블루캡(믹싱실) 등에도 한 번만 도와달라고 해서 현장 일반 스태프들을 제외한 헤드 스태프들의 페이를 깎아서 시작했다. 5, 6월에 급하게 프리 프로덕션을 진행했는데 스태프들이 정말 고생했다. 예산이 적다고 관객들이 예산 적은 눈으로 보지는 않으니까, 우리 예산에 맞으면서도 야심 있는 그림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의 미학적 목표는 25억 예산의 영화로 보이는 거였다. (웃음) ‘A급 짝퉁’ 같은 건가? (웃음) 변영주 감독 : 우리는 구찌처럼 보이고자 했다. (웃음) 다행히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배우들의 희생이 굉장히 컸다. 카메라 두 대로 찍어야 할 신을 한 대로 찍어서 고생하기도 했고, 슈팅카와 장비차를 이틀 빌릴 돈이 없어서 급하게 감정을 잡아야 할 때도 있었는데 아무 말 없이 즐겁게 작업해줬다. 후반의 중요한 시퀀스인 용산역 장면을 딱 나흘 동안,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찍었다. 네다섯 시 되면 마음이 급하고, 밥 먹을 시간도 없으니까 주먹밥 찔러 넣으며 찍게 되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나를 향해 ‘자, 이제 또 뭘 찍어줄까?’ 이런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 졸라 멋있다, 이 새끼들... (웃음) 그래서 나더러 3년 동안 시나리오 쓰느라 힘들었겠다고 하지만 배우들과 스태프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20고까지 썼는데, 어느 순간 이 이야기를 붙들고 있는 게 지겨워지지는 않았나. 변영주 감독 : 진짜 재밌었다. 안 가보면 모르니까 계속 다른 이야기로 끝까지 가 봤다. 원작에 아주 가까운 버전도 있었고, 이 여자를 잡으면 자기도 알코올중독에서 해방될 거라 믿는 형사가 주인공인 버전, 섬세하고 나약한 의사 약혼자가 주인공인 멜로 버전도 있었다. 그런 것들을 다 떠올려보며 ‘이렇게 풀면 안 된다’는 함정들을 찾아갔던 것 같다. 결국 영화를 찍으면서도 어떤 돌발 상황에 부딪혀 뭔가 바꾸어야 할 때 대부분 가 본 길이기 때문에 잘못된 길을 가지 않을 수 있었던 바탕이 됐다. 원작 소설이 워낙 탄탄하게 쌓아올려진 성 같은 작품이다 보니 각색 과정에서 원작의 힘에 눌리지 않기 위한 수많은 선택이 필요했을 것 같다. 변영주 감독 : 문호와 사촌형인 형사 종근(조성하)이 왜 이 여자를 찾는 데 계속 개입하고 있는가를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요즘에는 지문이나 이런 정보 때문에 정체를 속이고 결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나. 가짜 주민등록증으로 행세는 할 수 있지만 동사무소에 가는 순간 들키게 될 수밖에 없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할까 하다가 그냥 영화 보는 내내 그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자고 했다. ‘왜 그녀를 찾는가’에 대한 서브 플롯을 만들었다가 편집할 때 잘라 버리면 죽도 밥도 안 되니까, 배우들에게도 당신들이 연기할 때 절실해지면 사람들은 넘어가줄 거라고 했다. 자꾸 뭘 설명하면 할수록 의심을 사게 되니까, 그 대신 감성을 전달하면서 전반부를 진행하기로 했다. 결국 원작이 가진 이야기의 힘을 믿고 그냥 전진한 거다. 원작에서 여주인공의 약혼자는 은행원인데, 영화에서는 동물병원 의사인 문호의 직업이나 공간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이렇게 바꾼 이유가 궁금하다. 변영주 감독 : 자유업이면 좋겠다, 그래야 왔다 갔다 하며 직접 찾으러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그리고 종근이 뭔가 단서를 찾을 때 이 사람도 실수하면 큰 일 나는 긴박한 일을 하고 있으면 좋겠다 싶어 의사로 설정했다가, 그렇게 되면 선영이 신분상승을 노린 느낌이 들 것 같아서 바꿨다. 문제는 내가 <발레 교습소>의 수진(김민정)이처럼 정말 동물을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신혜은 프로듀서 : 싫어하는 게 아니라 겁내는 거라고 솔직하게 말하자.) 동물병원 촬영 신이 많았는데 그렇게 무서워하니 쉽지 않았겠다. (웃음) 변영주 감독 : 그래서 사실 더 긴장이 됐다. 내가 좋아하기보단 무서워하니까 오히려 더 윤리적으로 원칙을 지켜 대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임순례 감독님께 부탁해 카라(동물보호 시민단체)에서 보호하고 있는 유기견 중 실제로 치료가 필요한 애들을 데려와 찍었다. 진짜 수술이 필요했던 애를 수술했고, 스케일링 해야 하는 애를 미리 데려와 마취해서 죽은 것처럼 보이는 신을 찍은 다음 스케일링하러 보냈다. 현장에서는 정말 힘들었다. 개와 고양이가 막 모니터 앞을 돌아다니는데 우리를 도와주러 온 거니까 싫은 티를 낼 수가 없어서 어색하게 “야...귀엽...다.” (웃음) 선영(김민희)이 휴게소에서 서둘러 집에 돌아와 예쁘게 입었던 상견례 옷차림 그대로 온 집안을 걸레질하고 설거지하며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고 몸부림치는 신이 인상적이었다. 원작에서는 그냥 ‘짐을 들고 나갔다’ 정도로 표현되는 부분인데. 변영주 감독 : 시나리오에도 없었던 장면인데 민희가 캐스팅되면서 욕심이 생겼다. 민희가 출연한 작품은 거의 다시 안 봤지만 화보를 굉장히 많이 봤는데 이 친구의 얼굴이 중요한 느낌을 줬다. 얘라면 하겠다 싶어 콘티를 짜면서 그 신을 만들어냈더니 민희가 먼저 제안했다. 좀 딱 붙는 옷을 입혀 주면 그걸 걷어 올리고 청소하는 모습에서 훨씬 더 처연한 느낌이 들 것 같다고. <H3>“여전히 아침이면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서 깬다“</H3>
명백한 비극으로 끝맺는 영화와 달리 원작 소설의 엔딩은 긴장감이 있지만 구체적인 결과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변영주 감독 : 문학에서는 그게 말이 되지만 영화는 원작대로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너무 기만일 것 같았다. 많은 고민을 했고 다양한 버전이 나왔지만 결국 그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되, 그 바탕에 죄의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로 시작했고, 여전히 <낮은 목소리>의 감독으로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후 만든 극영화들은 주제도 소재도 색깔도 전혀 다른데, 어떤 계기들이 있었나. 변영주 감독 : <낮은 목소리> 3부작을 마쳤을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영화는 못 봤지만 정말 수고하셨고 훌륭하십니다”였다. 지금은 수술을 받았지만 당시 눈에도 문제가 있어서 직접 촬영을 하기가 힘든 상태였고, 한동안은 할머니들만큼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극영화로 옮겨올 때 “보지 않고서는 칭찬도 할 수 없고 욕도 하기 힘든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농담을 한 것처럼 정치적이지 않은, 정치적으로 지지받지 않을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 때 전경린 작가의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읽었는데 페미닌한 필체가 너무 좋아서 <밀애>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작품에서 내가 정말 주부의 디테일과 캐릭터를 살리지 못했다는 게 트라우마가 되면서 <발레 교습소>를 만들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두 편은 아주 다르지만 나에게는 연결고리가 있는 작품이었고, <화차>로 오면서 결국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를 하게 됐다. 끝까지 몰렸구나, 이것도 못하면 할 게 없을 텐데? (웃음) 미스터리나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 이유가 특별히 있나. 변영주 감독 : 이야기의 힘이 굉장히 강하다. 그런데 그것이 당대를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디테일한 공기들로 당대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에 좋다. 장르문학이 갖고 있는 놀라운 파워라고 생각한다. 산술적인 미궁을 푸는 것은 장식일 뿐, 당대의 공기를 담아내지 못하는 추리소설은 필연적으로 재미가 없어지는 것 같다. 창작자로서의 나도 마찬가지다. <화차>를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때도 이것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이 지역, 이 시간대의 사람들과 공유해야 하는 영화로 가는 게 명백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감독은 현장에서 절대적인 존재처럼 보이지만 시장 안에서 상업적 성공을 크게 거두지 못했을 경우 힘들어진다.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변영주 감독 : ‘아, 실패했네’가 아니라 왜 관객들이 안 봤을까, 왜 이 장면에서 재미가 없었을까, 현장에서 나는 뭘 놓쳤을까를 끊임없이 복기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또다시 실패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통해 스스로 해냈다고 믿는 것들에 대한 자존감을 잃지 않기, 나에게 또 기회가 오지 않을지라도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를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마흔 여섯이 됐는데도 여전히 삶이 불안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여전히 트렁크 하나에 내 인생이 다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그런 게 다 나에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면 그 다음 길이 있는 것 같다. 작품과 작품 사이에 몇 년의 공백이 있을 때, 영화를 만들고 있지 않는 기간 동안 감독은 어떻게 사나. 변영주 감독 : 먹고 살아야 하니까 아르바이트를 한다. 시간강사를 뛴다든가 방송을 하고, 그 와중에 놀면 진짜 시간이 빨리 간다. (웃음) 사실 우리에게 드라마를 보고 소설을 읽고 음악을 듣는 건 일이기 때문에 항상 그렇게 보려고 애쓰면서 버틴다. 물론 12월 31일이 되면 ‘올해도 못 찍었네’, 1월 1일이 되면 ‘올해는 찍을 수 있나?’ 하다가 끝내 못 만드나 싶어 운 적도 있다. (김)태용이랑 (이)해영이랑 만나 술 먹고 있는데 충무로에서 일하는 젊은 친구가 걔네 둘한테만 인사하고 가면 ‘난 잊혀지나’ 싶을 때도 있었고. 아, 얼마 전 MBC 에브리원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에 나온 에피소드처럼 나를 임순례 감독으로 착각하는 친구들도 진짜 많다. 요즘은 그런 상황에서 “사실 저, <우생순>은 대충 만든 거예요” 해 버리지만. (웃음) 어쨌든 자기연민에 휩싸이거나 초조해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알면서도 마음을 다잡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변영주 감독 : 나는 여전히 아침이면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서 깨곤 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드라마, 영화, 소설들이 나를 버티게 해 주는 힘이다. 늘 재미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화차>를 준비하는 오랜 시간 스트레스를 풀어준 와우(World of Warcraft) 달라란 서버의 길드원들에게 감사드린다. (웃음) 어느 레벨까지 갔나. 변영주 감독 : 최고 렙까지 갔고 야전사령관을 지냈다. 사실 와우가 재밌었던 것도 퀘스트를 하나 풀 때마다 얻게 되는 거대 판타지의 서사가 굉장히 훌륭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한테 썰리셨던 호드 전사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어린 친구들이었을 텐데, 언니가 그 땐 정말 힘들었다. (웃음) 아, 지금은 와우를 끊었다. 더 이상 아제로스의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H3>“사실 영화가 제일 중요하거나 영화만이 중요한 사람은 아니다”</H3>
원하는 방향대로 자유롭게 살아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이십대쯤엔 ‘이렇게 살다 집 한 칸 없이 굶어죽는 거 아냐?’ 같은 고민을 했었는지 궁금하다. 변영주 감독 : 이십대 초반의 나는 쓰레기였다. 혁명가가 될 줄 알았지만 그게 불가능하고, 사실 나약하고 겁이 많은 애라는 걸 알게 된 이후 스스로를 안 믿게 됐다. 그렇다고 평범하게 공부해서 취직하는 학생으로 돌아가기엔 우리 엄마 시력보다 낮은 졸업 평점 1.98이 이미 거대한 벽처럼 세상과 나를 분리시켰고. (웃음) 그래서 이십대의 나는 ‘나중에 이렇게 되면 어쩌지’가 아니라 ‘나 망했네?’에 가까웠다. 영화를 선택한 것도 잘 될 것 같아서가 아니라 어차피 망한 거, 하고 싶은 일 하다가 망하자는 마음이었다. 물론 내가 이십대나 삼십대에 생각했던 마흔이 이런 마흔은 아니었다. 그 때는 사십대가 되면 재미없고 뻔하고 세상에 궁금한 게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몇 년 전 마흔 살을 지나며 여전히 세상이 너무 궁금하고 내 인생이 불안해서 즐거웠다. 그리고 영화를 못 만들고 힘든 시절이 다시 온다 할지라도 <화차>를 만들며 현장에서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마음은 나에게 거대한 힘이 될 거고, 그걸 또다시 느끼고 싶어서라도 다음을 준비하게 될 것 같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고 지금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 같나. 변영주 감독 : 매번 달라지고, 그래서 언제나 지금의 나밖에 설명이 불가능한데, 나는 사실 세상에서 영화가 제일 중요하거나 영화만이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믿는 것, 내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세상을 향해 그걸 건설하며 사는 사람인 게 제일 중요하다. 바꾸어 말하면 나에겐 내 다음 영화만큼이나 쌍용 자동차 해고자 문제가 중요하다. 지난 해 굉장히 부끄러웠다. 촬영 들어가면 감독은 굉장히 대접받는다. 내가 한 끼라도 굶으면 다들 걱정해주고 샌드위치도 사다주고 숙소도 독방으로 준다. 그런데 송경동 시인에게 “누나, 이제 (부산 한진중공업 투쟁 현장에) 내려가요”라는 전화가 올 때 너무나 미안했다. 그래서 촬영 끝나고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희망버스가 가기로 한 게 너무 기뻤던 건 나도 이제 같이 내려갈 수 있다는 거였다. <화차> VIP 시사회 때 송경동 시인이 수술을 조금 미루고 와서 영화를 봐 준 게 너무나 고마웠고, 가장 기대되는 건 부산 시사회 때 김진숙과 그의 친구들이 함께 와 주기로 한 거다. 그렇게 내가 소중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지지하면서 어느 날 내가 거울을 봤을 때 변하지 않은 상태로 하고 싶은 영화를 신나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영화가 관객들에게 정말 티끌만한 어떤 느낌이라도 제공해줄 수 있다면 그게 최고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향해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고 살 수 있는 데는 그 바탕이 되는 토양이 필요하지 않나. 변영주 감독 : 지금도 옆에 있는 신혜은 프로듀서, 그동안 나하고 항상 영화를 같이 만들어 온 저 불쌍한 아이. (웃음) 저 친구, 또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내 친구들이 나에겐 가장 중요한 토양이다. 분명한 건 나에게 분노와 미움이 힘이 된 적은 없다는 사실이다. 힘이 되는 건 언제나 지지와 사랑이다.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인간형이나 만들고 싶어 하는 세상에 대해 영화에서도 좀 더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없나. 변영주 감독 : 반대다. 그런 건 그냥 내가 ‘될’ 거다. 내가 아마 절대로 하지 않을 건 코미디 영화다. 이미 혼자 충분히 하거든. 거울보고 10분만 혼자 떠들어도 일주일이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 나다. (웃음)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한 프로젝트를 드디어 손에서 놓게 됐다. 다음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생각해놓은 게 있나. 변영주 감독 : 어느 정도의 이미지라면 있다. 피 칠갑을 하며 전진하지만 결국 자기 얼굴에 침 뱉는 사람, 실패한 청춘, 뜨겁게 타올랐으나 아무도 그걸 멈춰주지 않아서 벼랑 끝까지 가서 질주하다 떨어지는 사람. 그런 것들에 계속 끌린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10 아시아 글. 최지은 five@10 아시아 사진. 이진혁 eleven@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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