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는 채끝 스테이크, 디저트는 이야기꽃 한다발

신년모임하기 좋은 장소② 청담동 ‘본뽀스또’

[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완벽함’보다 ‘완벽에 가까움’에 더 끌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완벽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본인 작품에 항상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백이 있기에 작품이 오히려 주목받는다고나 할까. 스스로 ‘빈틈없다’고 느끼는 작품은 보는 사람을 숨막히게 한다. 99%의 아슬아슬한 충만, 그 위태로움을 이어가는 균형. 이탈리안 레스토랑 본뽀스또가 남겨둔 ‘1%’의 여지를 지인들과의 담소로 메워보면 어떨까. 서울 청담동 90-25번지. 차가운 잿빛 건물이 우뚝 서있다. 현관은 서 있는 곳에서 반 층 정도 내려가 차분하게 위치해 있다. 누구든 양팔벌려 맞이한다기 보다 찾아오는 이에게 수줍게 자리를 내어줄 것 같은 모습이다. 오후 2시. 한창 해가 비칠 때 찾아갔던지라 문을 열자 갑자기 어두워지는 실내가 펼쳐졌다.

안심가르파치오[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입구 왼쪽에는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이 다녀갔음을 알리는 사진과 사인 등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300개에 달하는 와인이 진열돼 있다. 본뽀스또의 실내는 한마디로 의아하다. 뜬금없는 곳에 중세시대에나 보일 법한 굵직한 기둥이 솟아있는가 하면, 벽이 있다 싶으면 덥수룩한 커튼이 무겁게 걸려있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는 모두 제각각의 모양새를 뽐낸다. 무대를 모티브로 했는지 식사 공간은 마치 무대 위에 테이블을 듬성듬성 놓아둔 것 같다. 툴루즈 로트렉의 ‘물랭루즈에서, 춤’이란 작품이 생각난다. 그림 속의 인물들이 나타나 테이블을 치우고 춤을 춘다고 해도 전혀 어색할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1999년 오픈한 이곳의 고객층은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하며 주로 여성이다. 실제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낮은 음성으로 수다를 늘어놓고 있었고, 한편에서는 50대 부인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때가 때이니만큼 신년 모임도 자주 열린다. 새빨간 초가 층계마다 놓여있는 긴 계단을 따라가면 프라이빗룸 4개가 마련돼 있다. 룸은 이탈리아 도시 이름을 따 Siena, Mantova, Como, Verona로 지었다. 방 구조는 저마다 다르며 수용인원은 4명에서 24명까지 다양하다. 100여명의 대규모 연회도 가능하다. 아무렇게나 테이블을 턱턱 놓아놓았기에 이를 재배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때문에 웨딩을 치르는 고객도 왕왕 있다. 신년모임을 할 공간은 충분한 셈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먹어야 할까. 추천하고 싶은 요리는 세 가지다. 우선 ‘그릴에서 구운 채끝 스테이크.’ 스테이크는 의성한우1++등급만을 사용한다. 의성한우는 탄력 있는 육질과 진한 육즙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전남 신안군 갯벌에서 채취한 함초소금으로 밑간을 하고 레드와인 소스로 맛을 냈다. 가니쉬로는 버섯, 선드라이드 토마토, 통감자가 나온다. 모든 재료는 불에 잠깐 그슬린 정도다. 특히 감자는 거의 익지도 않았다. 이마저도 상쇄할 만큼 훌륭한 육질이 인상 깊다.

구운 해산물 모둠요리[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다음으로는 ‘그릴에서 구운 해산물 모둠요리’를 추천한다. 살짝 구운 킹프라운, 랍스타, 통오징어, 전복, 키조개관자, 광어와 신선한 채소에 아메리칸 소스를 가미했다. 광어는 신선도에 따라 농어로 대체되기도 한다. 생선요리 하나를 시키는 것보다 모둠으로 시키면 나눠먹기에 좋다. 메인메뉴를 먹기 전에는 ‘안심 카르파치오’로 시동을 걸어보자. 청정 한우를 허브로 하루 동안 마리네이드 했다. 그 후 참숯으로 겉면을 살짝 익혀 트러플 오일 드레싱과 루꼴라, 레지아노 치즈로 맛을 더했다. 듬뿍 갈아 얹힌 치즈가 다소 거치적거릴 수도 있겠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라지만 씹는 맛은 거의 없다.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고 돌아 끝내 상큼한 기운을 남긴다. 식욕을 돋우기에는 충분하다. 구이요리에는 모두 유명산 친환경 참숯을 사용한다. 그 향내가 남다르다. 본뽀스또(Buon Posto)는 ‘좋은 장소’란 뜻으로 패션디자이너 ‘강희숙’씨의 작품이다. 흔히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 결과물을 내놓을 때 ‘출산했다’고 표현한다. 디자이너로만 30년 간 살아온 그녀가 외식업에 발 디딜 때 그 산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된다. 이곳의 요리에는 각각 고유의 맛이 살아 숨쉰다. 접시위에 올라온 갖가지 재료들은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 겸손하게 자리를 내어준다. 참 솔직한 맛이다 싶다.

한우 채끝 스테이크[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사실 이탈리안 레스토랑하면 1980-90년대에나 알아줬지 지금은 너무 많아서 탈이다. 차별점이라고 하면 무심한 듯 멋스러운 인테리어다. 패션 디자이너가 본업이다 보니 아무래도 레스토랑에는 소홀하지 않겠는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그 무심함이 오히려 돋보인다. 때 지난 크리스마스 장식이 여기저기 눈에 띄고 방 구조도 제멋대로다. 식탁보는 다소 촌스럽기까지 하다. 벽 여기저기에 묻은 얼룩, 어떻게 불을 붙였기에 녹아서 제 멋대로 뻗쳐있는 초, 그리고 떨어진 건지 걸지 않은 건지 바닥에 놓인 큰 그림. 이 모든 게 자칫 압도적일 뻔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이곳을 찾은 고객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돌린다. 신년의 이야기꽃이 다소곳이 뿌리내릴 수 있게 말이다.추천메뉴 그릴에서 구운 한우 채끝 스테이크 4만6000원, 그릴에서 구운 해산물 모둠요리 4만2000원, 최상급 한우 안심가르파치오 2만원.위치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90-25. TABLE 2025건물에 위치. 문의 02)544-4081~2(청담동 본점)이코노믹 리뷰 박지현 jhpark@<ⓒ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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