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 서안나 '늦게 도착하는 사람-상사화 중에서'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꽃은 과거와 미래의 나의 사랑을 증명한다/ 내가 지상에서 사라질 때/ 당신은 꽃이란 이름으로 당신에게 도착한다// 없는 나는,/ 있는 당신을 향해 손을 내민다/ 당신에게 내미는 나는 이미 지워진 손/ 그러니까 나는 많이 낡았고/ 뿌리와 줄기의 초록은 숨을 참아왔던 거다/ 당신은 긴 목을 힘껏 뽑아 올려/ 제 얼굴을 찢어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서안나 '늦게 도착하는 사람-상사화 중에서'
■ 저녁답에 만난 꽃이 있다. 늦은 해에 얼굴이 얼비쳐 붉어진 그를 대구 지나 성주 한개마을에서 나는 보았다. 장독대 앞에 까치걸음으로 몇 발자국, 어둑해지는 담장 바깥으로 꼿발꼿발 그리운 마음 쳐든 것을 보았다. 제 풀에 푸르러 제 마음 못이겨 사라진 다음에도 살아지는 삶이 있는 것이다. 옛날 사랑은 좋아하는 것이 그냥 말없이 옷벗는 것이었다. 바삐 옷벗어 사랑하고 나서야 이름을 묻던 까닭, 제 남자 얼굴 본 적이 없는 과부들 모인, 붉은 마당에서 치맛자락 훌렁훌렁 걷은 서러운 다리들을 보았다. 눈 먼 사랑이란 자기같은 사람을 말하는 거야. 한 생애 내내 붉게 쓸고 또 쓸어낸 자리. 낯선 사람 발자국 소리에 달려와 짖던 늙은 개 울음 가득한 마당을 본 적이 있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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