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2011│이와이 슌지 “나는 한 번도 러브스토리를 만든 적이 없다”
<div class="blockquote">만약 당신이 제 16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에서 <뱀파이어>를 보고 이와이 슌지의 대답과 설명을 기다린 독자라면 먼저 사과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인터뷰를 통해서 <뱀파이어>에 관련된 어떤 구체적인 의문도 풀 수 없을 테니까. “미안하지만 오늘은 <뱀파이어>를 제외한 다른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대신 내년에 <뱀파이어>를 다시 한국 관객들에게 보여줄 기회가 생긴다면 그 땐 <뱀파이어>에 관해서만 이야기 할게요”라고 입을 연 이와이 슌지. 사실 지금 이 남자의 머리 속은, 지난 10월 1일 소개된 TV 다큐멘터리 < Friends after 3.11 >과 환경에 대한 고민뿐이기 때문이다. 2011년 3월 11일, 한 순간 불어 닥친 대재앙 그리고 이어진 원폭에 대한 다양한 일본인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야 말로 “사실 올해 BIFF에 들고 오고 싶었던 작”이었다고 한다. 대신 그와의 대화는 단순히 한 작품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그의 가장 현재적인 관심과 고민을 담았다.
< Friends after 3.11 >을 만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던 3월 11일의 일본 대지진 이후 당신 개인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나. 이와이 슌지: 내가 센다이 출신이다. 이번 쓰나미가 밀어닥쳤던 바로 그 곳. 다행히도 가족이나 친구가 죽거나 희생을 입은 건 아니지만, 내가 살던 동네에 그런 재앙이 덮쳤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쇼크였다. 그 이후 원폭에 대한 관심이 크게 다가왔다. 영화 <릴리슈슈의 모든 것>을 찍기 전에 <집 지키는 개가 정원을 지킨다>라는 소설을 썼다. 근 미래, 원폭 후 다음 세대가 방사능 폐기물로 인해 겪게 되는 고통을 담은 소설이었는데 이런 이야기가 이렇게 빠른 미래에 다가올지는 몰랐다. 당시만 해도 우리 이후에 살아갈 세대에 대한 소설이었고,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을 했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반핵운동에 참가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3월 11일 이후, 이미 원자력 개발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는 것에 대한 큰 죄의식을 느끼게 된 계기였다.<H3>“지금 당신이 쓰고 있는 노트북에서 엄청난 방사능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나”</H3>
사실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은 이와이 슌지 감독이 직접 운영 중인 ‘이와이 슌지 영화제’ (iwaiff.com)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확인 할 수 있긴 했다. 이와이 슌지: 아, 정말인가? 그 사이트에 한국인 회원이 3명뿐인데 그 중에 하나인가보다, 땡큐. (웃음) 올해 1월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사이트인데 이번 3.11이 터지면서 자연스럽게 원폭에 대한 이야기와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인터뷰도 올리게 되었다. 또한 이제는 원폭 뿐 아니라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산화탄소가 지구 온난화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걸 믿는가? 내가 알기로 공룡이 살던 시대에는 지금의 다섯 배가 넘는 이산화탄소가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이렇게 잘못된 정보를 믿고 있는 사람이 99%라면 나는 그것을 믿지 않는 1%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자동차라든지 하는 식의 광고가 많은데 어쩌면 지금 시대엔 친환경이라는 말이 생활이나 자각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슬로건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우리가 현재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맞나, 물어 보고 싶었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단계적으로 만들어가는 중이다. 일단 인터넷용 영상을 먼저 선보였고 지난 1일에 방영된 TV버전이 있고 내년에는 극장용으로 만들어 선보일 예정이다. 점점 관심이 사회적으로, 무거운 쪽으로 흘러가는 느낌이다. 이와이 슌지: 절대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되는 굉장히 무거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본과 세계가 어떻게 나아가고, 앞으로 인류가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인데 어떻게 가벼울 수 있겠나. 지금 당신이 쓰고 있는 노트북이나 핸드폰에서 엄청난 방사능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나? 물론 모르는 건 아니지만 더 이상 이런 것이 없으면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쓰게 되는 부분이 있다. 이와이 슌지: 과연 그걸 그렇게 간단히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노트북이나 핸드폰에 쓰이는 주요 원재료 중에 광물에서 뽑아내는 ‘레어 메탈’(rare metal)이라는 것이 있는데 말레이시아에 그걸 뽑아내는 공장이 있다. 내가 아는 다큐멘터리 작가의 고향이 바로 레어 메탈의 원산지다. 일본 기업은 말레이시아에 공장을 세워 자신들이 필요한 에너지를 뽑아오고 남은 폐기물들은 그 지역에 그대로 남겨놓고 온다. 그것이 실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 곳 사람들에게 건강에 피해를 주는 사례 역시 많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누구도 이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무지한 상태로 있다. 하지만 내가 모른다고 해서 누군가 당신도 공범자가 아닌가, 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몰랐다는 것이 죄를 없애주지는 않으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너는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안 쓸 건가? 라고 물어보면 쉽게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원자력 이외에도 여전히 화력, 수력, 풍력 등 에너지를 얻어 낼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그걸 안 쓴다고 인류가 멸망하는 건 아닐 거다. 기껏해야 30년 전의 불편함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로 그런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은 마음은 없나.이와이 슌지: 물론 기획을 할 수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극영화는 사회적인 문제를 고발하는 도구로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단 배우가 나와서 연기를 하는 영화니까. 솔직히 나는 어떤 것을 호소하고, 문제를 고발하기 위해 영화를 찍고 있진 않다. 특히 이번 다큐멘터리의 경우도 내가 무언가를 발언하고 고발하고 호소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라 오히려 누군가로 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에 만든 영화다. 이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호소와 고발을 듣게 되는 작품이다. 당신 역시 기자로서 어떤 주제나 인물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독자들에게 그것에 대해 전하는 역할이지 않나.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는 내 의견을 피력하기 보다는 그런 청자의 역할로서 충실히 만들었다. ‘이와이 슌지 영화제’ 사이트에 보면 3.11에 대한 이야기도 많지만 계륜미 같은 대만 여배우나 동시대 아티스트들을 직접 인터뷰 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더라. 이런 인터뷰 작업이 본인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는가.이와이 슌지: 사실 이 사이트는 처음에 그 인터뷰들 때문에 만들어 진거다. 인터뷰는 영화 만드는 일에 비하면 참 편한 일인 것 같다. (웃음) 작품을 만들다보면 감독들은 늘 아웃풋만 하게 되는데 인터뷰를 통해서는 인 풋이 생긴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배울 수 있고 소재를 얻을 수도 있어서 굉장히 즐기는 일 중 하나다. 지난 2004년, <언두>부터 <하나와 앨리스>까지 당신과 한 몸처럼 움직였던 촬영감독 시노다 노보루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스스로 쓰고, 연출하고, 편집하는 것 뿐 아니라 촬영도 직접 하고 있다. 이렇게 영화의 모든 과정을 콘트롤하는 이유는 뭘까. 이와이 슌지: 사실 학생시절 영화를 만들 때면 스태프들이 다들 자원봉사여서 그들이 현장에 나타나지 안아도 불평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누가 빠지면 내가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촬영도 하고, 조명도 치고, 때로는 연기까지 하면서. 그러다가 첫 프로덕션을 차렸을 때는 아무도 안 도와줘서 모든 걸 혼자서 다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걸 되게 즐겼던 것 같다. 물론 나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존경하고 존중한다. 하지만 감독이 다른 파트의 업무를 더 자세하고 깊게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단순히 그냥 예쁘고 아름답게 찍어주세요, 연기 잘해주세요, 라고 요구하는 건 좀 바보 같다. 이런 경험이 영화를 만드는데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뱀파이어>의 경우 처음엔 직접 찍었다. 그런데 좀 버거웠다. 카메라의 포커스를 맞추느라 배우의 연기를 못 보게 되더라. (웃음) 결국 카메라 오퍼레이터를 구했다. 하지만 여전히 직접 찍고 조명을 쓰는 것을 즐긴다. <H3>“이제는 내 영화의 사운드 트랙은 내가 직접 만들고 있다”</H3>
어린 시절 “기억은 1년만 지나면 사라진다는 기억상실 공포증에 시달려서 모든 걸 기억하려는 습성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래서인지 당신의 영화를 보면 어떤 시절의 상황이나 공기 혹은 분위기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비범한 기억력이 있는 것 같다.이와이 슌지: 아! 듣고 보니 그렇다. 아마도 그런 기억들을 형태로 남기고 싶은 욕구 때문에, 그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어서 영화를 계속 찍는 것 같다. 이제는 어린 시절 같은 공포심은 없다. (웃음) 오히려 몇 십 년 동안 쌓아놓고 버리지 않는 기억 때문에 머리가 너무 무겁다. 이제는 좀 버려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뱀파이어> 전에 만들었던 다큐멘터리 <이치가와 곤 이야기>를 보면 움직이는 영상을 제외하고 오직 자막과 사진만을 이용하고 있다. 사실 이와이 슌지 라고 하면 영상 세계에 대한 찬사가 끊이질 않는데 이런 방법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이와이 슌지: 사실 영상은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영상이 좋기 때문에 영화가 좋은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음악이든 소설이든 나의 본질적인 부분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놓고 거기에 대한 짧은 글을 덧붙이는 형식은 10여 년 전 부터 소설을 쓰거나 시나리오를 쓸 때 해왔던 작업 방식이다. 그래서 이런 방법으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적용했던 것이 <이치가와 곤 이야기>였다. 그 해 <무지개의 여신>을 동시에 제작하고 있었는데 그건 몇 억 엔이 들어간 상업영화였고 이 다큐멘터리는 몇 천만 엔이 들어간 작품이었다. 그 해가 나에게는 터닝 포인트였고 상징적인 해였다. 아, 이렇게도 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뱀파이어>를 비롯한 최근작들을 보면 음악까지 혼자 하고 있다. 이와이 슌지: 대학교 때 작곡을 좀 하기는 했는데 그 때는 영 별로였다. (웃음) 개인적으로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의 사운드트랙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 영화를 찍고 난 후 나 역시 이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컴퓨터와 키보드를 사서 사무실에 악기를 설치하고 그 해 겨울은 크리스마스까지 쏟아 부어 음악 만들기에 몰두해서 보냈던 적이 있다. 이제는 내 영화의 사운드 트랙은 내가 직접 만들고 있다. 올해 AFA의 마스터클래스에서 “당신의 영화는 사랑과 성장에 집중하는 것 같다”는 한 학생의 질문에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나는 한 번도 러브스토리를 만든 적이 없다”고 대답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와이 슌지: 그 대답에 대해 부연 설명하자면 내 영화중에 어떤 것도 연애 혹은 그 과정에 대해 이야기 하려 했던 건 아니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결국 내가 했던 모든 영화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사랑과 성에 대한 이야기를 빼면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10 아시아 글, 사진. 부산=백은하 기자 one@<ⓒ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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