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악취 민원 6000건, 수도권쓰레기매립지를 가다

지난 23일 오전 수도권매립지에서 바라본 청라국제도시. 기둥처럼 생긴 매립가스 포집공 뒤로 보이는 빌딩들이 최근 입주 진행 중인 청라국제도시다. 사진=김봉수기자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23일 오전 인천 서구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홍보관 내 강당. 시민들과 함께 악취 현장 답사에 나선 송영길 인천시장의 인사말이 끝난 후 인천시 보건환경연구원장의 악취 조사 결과 발표가 이어질 무렵 객석에 있던 주민들의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수도권 매립지에서 불과 5km 안팎에 위치한 검암동ㆍ연희동 등 기존 시가지와 지난해 입주가 시작된 청라국제도시에서 온 주민들이었다. 애를 업고 나온 엄마까지 포함된 30여 명의 주민들은 "당신들이 여기서 한 번 살아봐라. 악취로 도저히 못 살겠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호통을 쳤다. "악취의 주성분인 황화수소는 독극물"이라는 주장하는 주민들까지 있었다. 조춘구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이 나서서 설득에 나섰지만 오히려 주민들의 면박에 얼굴만 붉히고 말았다. 그는 "이번 악취는 장마철 수해 쓰레기가 일시적으로 많이 반입돼 묻히면서 가스 발생이 심해졌고, 매립가스 포집관로가 노후화돼 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일시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수해쓰레기가 묻힌 곳에 복토를 다시 하고 비닐로 덮는 등 가스 분출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고, 매립가스 포집관로도 교체 중이어서 악취가 줄어들 것이라는 해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는 곧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검암동 주민이라고 소개한 한 여성이 단상에 뛰어 올라가 "방금 조 사장이 한 말은 틀렸다"며 "이번 악취가 일시적이라면 4~5년 째 검암동 일대에서 살면서 맡아 온 냄새는 도대체 뭐냐"고 반박했다. 다른 주민들도 나서서 "사장님은 서울 사시죠? 여기에 와서 한 번 살아보지도 않는 사람은 얘기를 할 자격이 없다"고 고함을 질렀다. 불을 끄려다 오히려 지른 격이 된 조 사장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고, 말까지 더듬는 등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같은 상황은 현장 답사 내내 이어졌다.

현재 쓰레기가 매립중인 수도권매립지 2단계 A구역 전경

설명회 후 송 시장과 조 사장은 버스 한 대에 동승해 주민들과 함께 수해쓰레기가 집중 매립된 2단계 구역 A 지구로 향했다. 냄새가 덜 했던 수도권매립지공사 청사에 비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일순 머리가 아플 정도의 악취가 코를 자극했다. 거대한 언덕 위로 올라가자 포집 관로가 60m 마다 하나씩 꽂혀 있어 마치 '쓰레기의 무덤'을 연상케 했다. 트럭들이 줄줄이 오가며 쓰레기를 실어 날랐고, 굴삭기 불도저 등이 연신 쓰레기를 묻고 위에 복토를 하는 작업에 열중이었다. 이 자리에서도 주민들의 하소연은 계속됐다. 한 주민은 "올 여름 들어서 냄새가 심해져 새벽 12시에 잠에서 깨 구토를 한 적도 있다. 8월 달엔 보름 이상 악취가 계속됐다"며 "악취로 기절해 병원에 실려 간 사람도 있다"고 호소했다.다른 한 주민도 "영종도에 자주 오가는 데, 다리를 건널 무렵 냄새가 심하다"며 "더운 여름철에 냄새 때문에 창문도 못 열고 사는 주민들의 고통을 생각해보라"며 울부짖었다.청라국제도시의 입주ㆍ개발 저조의 원인으로 쓰레기 매립지의 악취를 거론하며 시행사인 LH와 인천시를 탓하는 이도 있었다. 지난해 말 청라지구에 입주했다는 한 주민은 "지금도 입주하는 사람이 드문데, 집 구경을 온 사람들이 악취 때문에 도망가기 때문"이라며 "이런 거대한 악취원 옆에 아무 생각없이 10만 거주 신도시를 세우겠다고 한 LH와 인천시의 담당 직원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수도권매립지공사의 뒤늦은 대응을 탓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연희동 주민자치위원장이라는 주민은 "장마철 수해 쓰레기가 잔뜩 들어왔다면 처음에 매립할 때 단단히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악취 민원이 발생하니까 이제서야 복토를 다시하고 비닐을 씌운다고 나섰다"며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 40대 여성은 버스에서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멀쩡한 일산 집을 팔고 청라로 이사와 악취에 고통을 겪게됐는지 모르겠다"며 씁쓸해 했다.

수도권매립지 바로 옆에 위치한 경인운하 인천터미널. 사진=김봉수기자

이날 현장에선 또 쓰레기매립지에서 500m도 안 떨어진 곳을 지나는 경인운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관광객들이 경인운하에서 배를 타고 지날 경우 쓰레기 매립지를 지자는 약 5km 안팎의 구간에선 악취 때문에 배 밖에 나오지 못할 텐데 무슨 관광을 하겠냐는 것이다. 인근 오류동 등 관련 법에 따라 매립지 2km 안쪽의 주민들에 대해선 보상이 주어지는데, 청라국제도시 등 제외된 곳에 사는 주민들에 대한 보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또 2016년이 기한인 매립지 사용 연한을 2043년까지 늘리려는 수도권매립지공사의 계획에 대한 지탄도 잇따랐다.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6000여 건의 악취 민원이 발생한 수도권매립지에서 2시간 남짓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동행하며 주민들의 하소연을 지켜본 한 전문가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뚜렷한 대책도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며 "소각장을 만들어 가연성 쓰레기를 모두 태우고 묻으면 되는데, 어디에다 소각장을 만들 수 있겠냐"며 한탄했다. 김봉수 기자 bski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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