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영토를 넓히자]프랑스 과학교육 '라맹알라빠뜨'

프랑스의 체험형 과학교육 '라맹알라빠뜨'로부터 배운다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프랑스의 체험형 과학교육 프로그램인 '라맹알라빠뜨(La main a la pate)는 프랑스어로 '손으로 반죽을' 이라는 뜻이다. 즉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만져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듯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체험함으로써 과학의 개념을 알아가는 교육 프로그램을 말한다. 지난 6~8일,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과학창의축전'을 앞두고 40명의 생활과학교실 교사들이 '라맹알라빠뜨'교수법을 배우기 위해서 대구에 모였다. ◆과제만 제시, 실험재료도 스스로 선택해야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빗면에서 출발해 가장 멀리 굴러가는 차 만들기'. 목표는 '튼튼하게, 일직선 방향으로 최대한 멀리 굴러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교사생활을 하며 '라맹알라빠뜨'교육프로그램 연수를 맡고 있는 올리비에 갸낙·에릭 플러뤼 강사들은 어떤 순서로 일을 진행해야 하는 지까지만 알려주고는 입을 다물었다. 수업의 첫 단계인 '상상하고 토론하는 단계'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굴러가는 물체에 대한 지식을 동원해 자동차를 어떻게 만들지 조원들과 상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재료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날 조당 5명으로 구성해 총 8조가 실험에 참여했다.

7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라맹알라빠뜨'교수법 연수에 참가한 교사들이 토론하고 있다.

라맹알라빠뜨 프로그램은 실험 전에 미리 조별로 학생들에게 실험도구를 나눠주지 않는다.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실험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애초에 실험도구 분배가 불가능할뿐더러 실험재료를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충분히 자신들이 만들고자 하는 자동차의 모양을 상상하고, 같은 조 친구들과 토론한 다음 필요한 재료의 목록을 만든다. 그 다음 교실 앞에 마련된 재료들 중에서 필요한 만큼만 가져와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날 연수에서는 강사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각 조마다 재료상자 앞으로 달려와 못, 나사, 너트, 병 뚜껑, 나무 모형 등을 닥치는 대로 잔뜩 챙겨갔다. 결국 강사들이 제지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올리비에씨는 "재료들을 구하러 오기 전에 실험재료 리스트를 먼저 적으라고 얘기했다"면서 "실험재료들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디어를 명확하게 다듬어야 하고, 그러려면 각자 서로 아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별로 토의를 한 다음, 마지막에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 내고 거기에 필요한 재료를 가져가라는 것이다. 곧 교사들은 처음에 허겁지겁 챙겨갔던 여러 재료들을 다시 돌려놓고, 조별토론을 시작했다. ◆실험기회는 총 2번,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도록 조별로 완성한 자동차는 총 2번의 실험을 해볼 수 있다. 첫 번째 시도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다시 보완한 다음 2번째 최종 실험을 하도록 한 것이다.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탐구과정의 핵심이다.

7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라맹알라빠뜨' 교수법 연수에 참가한 교사들이 빗면에서 굴러가는 자동차를 만들어 실험하고 있다.

모든 조의 첫 번째 실험이 끝나자, 강사들은 조별로 첫 번째 실험을 통해 관찰한 것과 발견한 문제에 대한 진단을 쓰도록 지시했다. 여덟 조 모두 각자 다른 자동차를 만들었지만 신기하게도 모든 조에서 자동차가 일직선으로 나가지 않고 방향이 휘는 문제점을 관찰할 수 있었다. 다 같이 문제점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두 바퀴축의 위치가 평행하면서 동시에 차체와 직각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과 '축이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고정해야 방향이 틀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제점을 보완한 채 두 번째 실험에 나선 각 조들은 모두 다른 해결책을 내놨다. 축의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 작은 너트들을 활용해 차체·바퀴·축을 고정한 조도 있었고, 축을 고정시키는 고리나사를 대각선 방향으로 박아 축이 움직이는 폭을 최소화한 조도 있었다. 또 차가 움직이면서 너트가 풀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 너트들을 아예 접착제로 고정시켜버린 조도 있었다. 한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다음 두 번째 실험에서는 각 조마다 이동한 거리를 측정했다. 1등을 차지한 4조의 자동차는 빗면에서 굴려서 5.03미터까지 이동했다. 가장 적게 이동한 5조의 자동차는 2.09미터에서 멈췄다. 이동방향이 휘어지는 문제점은 대부분의 조에서 첫 번째 실험이후 보완해 최종 실험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7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라맹알라빠뜨' 교수법 연수에 참가한 교사들이 빗면에서 굴러가는 자동차를 만들어 실험하고 있다.

◆자율적인 수업 분위기, 이를 위한 교사의 준비는 2배 에릭씨는 "조별로 선택한 재료나 만드는 방법에 따라 이동거리에 차이가 났지만, 모든 조에서 첫 번째 실험을 거쳐 발견한 문제점들을 잘 해결해냈다"며 "정답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세운 가설을 직접 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에서 공동의 지식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또 "자동차가 멀리 나갔을 때 우리가 환호하고 기뻐했던 것처럼, 아이들 역시 자신들의 활동에 푹 빠져서 열심히 참여하게 될 것"이라며 "탐구과정을 통해서 협동하면서 동시에 경쟁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리비에씨는 "탐구과정이란 자유롭되, 틀 안에서 자유로운 것"이라고 정의하며 "실제 수업시간은 연수프로그램보다 더욱 정교하게 짜야 하고, 틀을 강제하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이 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섬세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연수에 참여한 유정숙(46)씨는 "평소 수업시간에 이론과 지식을 전달하려고 하는데 이 수업에서는 아이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게 인상적"이었다며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가게끔 유도하는 게 기존의 수업과의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김지명(26)씨는 "아이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되 조율해주는 교사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면서 "아이들이 난관에 봉착하면 힌트를 주고,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 이를 중재하는 역할도 필요해 교사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에 대해 에릭씨는 "교사들이 보이지 않게 교실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는 "교사들이 드러나지 않는 물밑에서 수업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각각의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에 적절한 답을 주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며 "지식이 선생님으로부터 나와서 학생들에게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자기 스스로 지식을 발견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선생님이 모든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라맹알라빠뜨 교수법 강사 인터뷰

에릴 플뤄리 강사

▲라맹알라빠뜨는 어떻게 시작됐나?-라맹알라빠뜨는 199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조르주 샤르파크(George Charpark) 박사에 의해 처음 실시됐다. 초창기에는 300여개의 교실에서 작은 실험을 하는 형태로 진행되다가, 2000년 5000여 교실에 확산되기 이르렀고, 2002년 프랑스 교육부의 과학교육 개혁정책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공교육영역에 정식으로 도입됐다. 체험을 통해 호기심, 창의성, 비판적 자세를 키우도록 하는 이 프로그램은 현재 전 세계 34개국에서 도입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왜 과학시간에 '글쓰기'를 강조하나? -'라맹알라빠뜨'프로그램에서 '언어와 과학'의 연관관계는 중요하다. 글쓰기는 사고를 구조화하는 과정이자 머릿속의 생각을 외부로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다. 글쓰기와 말하기는 다르다. 우리가 말할 때는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올 때가 많다. 그런데 글로 쓰려면 특별한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려고 할 때 막히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글쓰기가 깊이 있는 사고과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시간에 글쓰기 활동은 필수적이다. 자신의 호기심,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자신이 세운 가설, 탐구 과정과 결과에 이르기까지 수업시간의 모든 활동들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정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올리비에 가냑 강사

▲수업을 탐구과정 중심으로 설계한 이유는?-탐구과정 수업방식은 아이들의 흥미와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지렛대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은 선생님이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을 전달받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제에 직접 몰입하게 된다. 탐구과정의 시작단계에서 중요한 건 '놀라움, 호기심, 질문하기' 3가지다. 그리고 탐구과정이 단순히 놀라움과 관심을 유발하는 단계에서 머물지 않기 때문에 더 깊은 단계로 나아간다. 학생들이 자신의 호기심을 바탕으로 던진 질문에 대해 직접 가설을 세우고, 무엇인가 만들어보고 실험하는 활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철저히 지원하는 역할이다. 이상미 기자 ysm125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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