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경진
사진. 이진혁
신지호 “이젠 모든 배우가 사촌 같은 느낌이다”
최근엔 연주 외에도 연기, 노래까지 해야 하는 뮤지컬 <모비딕>에 출연 중이다. 공연도 어느새 반을 지났는데, 연주만 하던 지난 시간과는 어떤 다른 점이 있었나.신지호: 사실 체력인 부분이 가장 힘든 것 같다. 피아노 연주만 해도 땀이 너무 많이 나는데, 거기에 (목소리와 동그란 눈이 점점 커지며) 연기, 안무, 노래까지. 너무 힘들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원래 그렇지만 우리는 거기에 연주까지 해야 됐으니까. (이)일근이 형이랑 나는 원캐스트라 1주일에 거의 8번 이상의 공연을 한다. 그동안 개인 콘서트를 해도 3일 이상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일단 시작하고 나니까 익숙해지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하루 2회 공연은 너무 힘들다. 거기다 이스마엘은 마지막에 울면서 끝나니까.KoN: 사실 원래 굉장히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는데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공연에 맞춰서 기상시간도, 먹는 것도 알아서 잘 조절해야 되니까. 거기다 초반 1, 2주차에는 콜타임도 빠르다 보니 거의 일어나자마자 나와야 하는 상태였다. 거의 고등학생 때나 했던 생활을 다시 한 거다. <모비딕>은 올 7월 본공연을 하기까지 1년 이상의 긴 제작과정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드물게 다수의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작품을 발전시켜왔는데, 말이 좋아 발전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1년의 시간을 버틴 격이기도 하다. 굉장한 애증의 대상일 것 같다. 신지호: 진짜 미워 죽겠으면서도 사랑하는 게 애증이니까. (웃음) 정말 그랬던 것 같다. KoN: 준비하는 동안 너무 너무 힘들고 속상하고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싶다가도 무대에 올라가거나 연습 도중 합이 잘 맞을 때는 굉장히 행복했다. 애증이라는 것이 사실 감정의 극과 극을 왔다갔다하는 건데 정말 널뛰기를 많이 했다. 애가 강할 때는 너무 좋다고 난리 치고, 그러다 증이 많아지면 미치겠어, 안 해 막 이러고! 지금 공연장이 100석이 조금 넘는데 이젠 그것도 좀 아쉽다. 계속 꽉 차니까 200석도 채울 수 있을 것 같고. 하하하신지호: 연강홀 정도는 돼야지. (웃음)KoN: 물론 아쉬운 부분에 대한 지적도 많지만, 다행스럽게도 여기까지 오면서 들은 평의 99%가 발전했다는 이야기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보람이 있다. 제작기간 동안 다수의 배우가 거쳐 가기도 했다. 아이돌 기획사에서 연습생들이 계속 나가는 걸 지켜보는 장수 연습생과도 비슷한 느낌인데,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는 그 기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나.KoN: (신)지호랑 나는 이 작품의 각본이 완성되기 전 기획단계에서부터 같이 시작했다. 우리 둘은 대체가 안 되는 상황이라 계속 갈 수밖에 없긴 했다. 그런데 <모비딕>은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라서 연주가 가능한 뮤지션을 뽑아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그 친구들은 메인 잡이 뮤지션이고 연기로 외도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다. 힘든 준비과정 속에서 마음잡는 게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나 지호는 예전부터 연기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모비딕>이 아예 동떨어진 작품은 아니었다. 이런 기회를 통해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보자 해서 적극적으로 임했던 거다. 그런데 1년간 쉽지 않구나, 라는 걸 많이 느꼈다. (웃음)신지호: 하지만 그 기간을 거치면서 다들 약간 사촌 같은 느낌이 생겼다. 1년 동안 계속 연습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워크숍도 몇 개월의 텀이 있었고. 본인들도 뮤지션으로서의 삶이 있었을 텐데 그 부분은 어떻게 조절했나.KoN: 버퍼링이 많이 걸렸다. 올 2월에 두산아트랩 워크숍 공연을 하고 3월에 예술의 전당에서 협연이 있었다. 그건 순수하게 바이올리니스트로의 협연이었고, 거기서의 모든 액션은 사운드를 위한 액션이다. 그런데 한 달간 <모비딕> 연습을 하고 갔더니 액션이 너무 커진 거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섬세하게 퀄리티에 신경을 써야 되는데 활도 떨리고 노이즈도 나서 협연 준비하면서 1주일을 완전 헤맸다. 협연 날에 가까워지면서 연주자 모드로 전환이 됐는데, 끝나고 나니까 또 송콘서트 한다고 해서 <모비딕>으로 가고. 넋 놓고 있으면 <모비딕>에서 클래식 연주하고 그렇게 되는 상황이었었다. (웃음) <모비딕>을 처음 연습하던 날 어땠는지 궁금하다. (웃음)KoN: 크흐흐흐흐흐흐흐. 신지호: 제일 처음? 에-휴. 되게 막막했다. 사실 연기나 노래는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너무 주눅이 들었다. 피아노야 원래 치던 거니까 그래도 괜찮겠지 했는데 음악도 정말 너무 어려웠다. 다들 이 작품을 볼 때 연주는 당연히 잘할 거라고 예상하고 본다. 그래서 더 부담이 많이 갔고, 연주마저도 나에겐 도전이었다. 너무 막막했고, 슬펐고, 자신감이 너무 떨어졌었다. 내가 굳이 뮤지컬에 도전한다고 해서 이렇게 힘들어해야 하나, 자존감도 굉장히 낮아졌었다.KoN: 초반에는 정말 뮤지션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다들 생소했다. 그때는 연기하던 (황)건이도 없었을 때고, 조용신 연출님도 번역이나 평론만 하시다가 연출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디렉션을 주시기보다는 다 보시고 평 한마디 하는 그런 상태였다. 모두에게 도전이었던 셈이다. 작곡을 한 정예경 음악감독이 학교 후배라서 곡을 절대 쉽게 안 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정말 너무 어려웠다. 그런데 예경이가 “오빤 할 수 있잖아” 하니까 또 혹해서 “어, 알았어!” 이러고. 크하하하하.신지호: 그래, 진짜 어려웠어. 처음에 음악을 들었을 때는 너무 내 스타일이라서 충격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음악은 너무 좋은데 이걸 어떻게 해! 라고 했었다. 노래도 그래! 노래 음역대도 너무 넓다. 굉장히 저음에서 시작해서 갑자기 고음으로 훅 치고 나가고.KoN: 고음이 힘들어서 키를 조절했더니 시작이 완전 저음 저 바닥이고! 음악이 굉장히 아름다운데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그런데 관객 입장에서는 물 흐르듯 흐르다 보니까 어려운 연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신지호: 이젠 자면서도 칠 수 있다. 하하하KoN: 연기나 노래도 신경 쓰고 있지만, 그것들이 연주와 어떻게 잘 연결이 되느냐도 굉장히 중요하다. KoN이란 이름으로 연주하는 모습이 나오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의 밸런스도, 배우들과의 호흡도 잘 맞았을 때 하나가 나오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그리고 이젠 모두가 다른 파트까지 다 외우고 있다. 플라스크 역은 더블로 가고 있는데, 어떤 배우가 들어오느냐에 따라 악기가 아예 달라진다. 그래서 소리도, 느낌도 다른데 퀴퀘그랑 플라스크가 같이 해야 되는 부분에서 갑자기 플라스크가 놓치면 그냥 그 부분을 내가 먼저 치고 나간다. 내가 놓치면 또 플라스크가 메워주고.<H3>“<모비딕>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느끼지 못할 감정이 있다”</H3>KoN “[모비딕]은 우리의 1년간의 젊음을 바친 작품”
매 공연 시작 전 지호 씨가 연주와 함께 사전공지를 한다. 매번 다른 곡들로 편성하는 것 같은데, 그때 연주한 감정이 그날의 이스마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궁금하다.신지호: 공연장에 들어갔을 때 그 공간에서의 어떤 느낌이 온다. 그 느낌에 맞춰서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곡을 연주한다. 한번은 솔로앨범에 있는 를 편곡해서 연주한 적이 있는데 너무 강렬한 것을 치고 나니 그 여운이 나한테 계속 남아 있어서 연기하는 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는 ‘Overture’처럼 <모비딕>의 넘버들을 편곡해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좀 더 편안하게 이스마엘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이러다 막공에서는 ‘왕벌의 비행’ 같은 거 막 하는 거 아닐까 모르겠다. 하하하 이 작품에서의 퀴퀘그는 편견도 없고 큰 그릇을 가진 순수한 인물이라 극 중 가장 멋있는 캐릭터인 것 같다. 특히 이스마엘과 친해지면서 담배를 나눠 피는데, “담배를 나눠주는 것은 머릿속을 나누는 것”이라는 대사가 굉장히 멋졌다.KoN: 연출님이 퀴퀘그는 정서의 중심이라고 하셨는데, 처음엔 아예 이해를 못 했다. 그 담배 대사도 얘가 왜 이런 얘기를 하지? 싶었다. 영화 <백경>에서의 퀴퀘그는 아예 대사가 없었고, 그 정서를 참고할만한 텍스트도 전혀 없었다. 작년 워크숍 때만 해도 많았던 대사가 점점 줄면서 남아 있는 대사 안에서 퀴퀘그를 보여줘야만 했다. 또 퀴퀘그가 비문명인이라서 어순도 굉장히 다르고 단어, 단어로 끊어서 얘기하는 편이었다. 난 발음도 나쁘지 않고 말도 술술 잘하는 편인데, 발음 좋다고 지적당하고 그랬었다. 어눌하게 하면 바보 같다고 하고. (웃음) 그 중심을 잡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신지호: 제일 멋있는 캐릭터라니까. 퀴퀘그가 원작에서는 야만인에 대머리고 그렇지만 여기선 멋지고 신비롭게 나오잖아. 대사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짧으니 결국 연주나 액션으로 퀴퀘그를 보여줘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KoN: 액션으로 이스마엘의 가디언 같은 느낌을 줘야 했는데, 평소에는 연주할 때 말고 몸을 쓸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그 특유의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해 서 있는 자세까지 액팅코치를 받았다. “퀴퀘그는 서 있는 것부터 남달라야 돼”라고 하시는데 내가 하는 걸 보시고 “음, 안 멋있구나” 이러고. 카하하하하. 작살 쏘는 것도 날렵해야 되는데 어설프다는 지적도 많이 받았다. 퀴퀘그는 전사의 이미지가 강한데 찍어놓은 영상을 보면 팔다리가 길어서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달리 (직접 팔을 저으며) 허우적 허우적 거린다. 나한텐 정말 커다란 모험이지. 몸집이 크고 포스 있는 퀴퀘그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표현한 퀴퀘그도 괜찮다고 해주시니 보람이 있다. 반면에 이스마엘은 사건의 관찰자라서 마지막 표류신을 제외하고는 눈에 띌만한 성격을 보여주기 어려운 캐릭터인데.신지호: 어릴 때부터 연기를 꼭 해보고 싶었는데 해보니 역시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이스마엘이 신지호에게도 자꾸 반영되다 보니 좀 힘들다. 말한 대로 그 표류신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진짜 내가 표류된 기분이다. 친구들은 다 죽고 나 혼자 망망대해에 떠있다. (코가 빨개지며) 그걸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다. “나의 추억을 바다에 묻는다”라는 대사를 할 때 목이 메고 가슴이 너무 아파서 걱정이 된다. 요즘에는 맨 마지막 노래를 할 때까지 눈물이 나서 노래를 못한 적도 있다. 그 감정을 조절하는 게 프로인데 난 아직 그 단계가 아니니까 너무 힘들다. 현실에서 직접 겪기 어려운 감정들을 연기를 통해 간접경험을 하는 셈이다. 그래서 연기를 처음 하는 배우 입장에서도 신기하겠지만, 관객들 역시 그 미숙한 연기 속에서 어떤 진짜를 발견하게 된다. KoN: 아까 말한 그 표류신에서 이스마엘이 퀴퀘그의 관을 찾을 때 나는 지호 뒤에 서 있기 때문에 공연할 때는 계속 지호 얼굴을 보질 못한다. 그런데 그 어깨를 들썩거리며 우는 뒷모습이 너무 슬프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죽거나 생사를 초월한 존재가 되는데, 관조하는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든다. <모비딕>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느끼지 못할 감정이지.신지호: 막공 때 다 울 것 같다. 대성통곡할 것 같아. 어엉.KoN: 공연 한 번 끝나면 맨날 지호 눈이 부어 있다. 그거 보면 나도 마음이 아프고. (웃음) 다른 배우들도 어느 순간 정말 슬픈 감정이 보인다. 다른 뮤지컬처럼 짧게 3개월 바짝 만나 일하는 것보다는 1년 넘게 같이 하고, 배우들도 처음 도전하는 이들이 다수였기 때문에 굉장히 순수한 집단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겐 프로의 느낌이 덜했고 그런 유대감이 더 강하게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것 같다. <모비딕>이 끝나면 지호 씨는 바로 연극 <국화꽃 향기>에서 음악감독으로 참여하게 된다. 현재 어느 정도 진행됐나.신지호: 공연이 당장 9월 1일 시작이고, 배우들은 지금 리딩 중인데 <모비딕> 때문에 참여를 잘 못했다. 20곡 작곡해야 되는데 아직 멀었다. 아아... 아아아아... 다시 스트레스가... 집에 가면 자야 되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잠은 안 오고, 곡도 안 써지고... (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 진짜 어떻게 하지? 그래도 다행인 건 <국화꽃 향기>가 있어서 오히려 슬픈 게 덜할 것 같다. 그게 없었으면 <모비딕> 끝나고 난 진짜 우울증 걸렸을 것 같다. <H3>“내 감정을 음악을 통해 공유한다는 것이 너무 좋다”</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