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진기자
방화대교 코스를 라이딩하는 자전거 동호회 회원이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br />
“언덕길을 오를 때 힘들고 비가 내리는 대로 젖어버리며 페달을 밟지 않으면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리막길의 즐거움, 맑은 날의 상쾌함, 자기 힘으로 달릴 수 있는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사랑한다.”자전거를 타면서 이렇게 감동해 본 적 있는가? 130여개에 달하는 유명 자전거가 총출동하고 자전거 관련 상식과 정보가 풍부해 사전을 방불케 한다는 일본 만화책 <내 마음 속의 자전거>, 작가 미야오 가쿠는 자전거에 대해 그렇게 감상한다. 아오바 자전거 숍을 찾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책의 줄거리다. 드라마, 영화 어디에서나 등장하고 삶의 거의 모든 것을 자전거로 해결하는 일본 사람들. 자전거 대국인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한국 전역에 자전거가 속속 침공하고 있다.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보게 될 모습일 듯하다. “나에게 자전거는 000이다” “자전거와 함께 하기 어려운 궂은 장마철과 폭설이 내리는 겨울에는 사는 낙이 없습니다.” 자전거 팬이라는 김종화(28)씨의 일성이다. 이처럼 은륜(銀輪)에 살고 은륜에 죽는 ‘자전거 폐인’이 전국에 허다하다. 이들에게 자전거란 무엇이고 어떤 매력이 있을까. 자전거에 흠뻑 빠진 사연을 들어봤다. 우선 고등학생 이정렬(17)군에게 물었다. 이군에게 자전거는 ‘스타크래프트’(온라인 PC게임)였다. “평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던 게 스타크래프트예요. 자전거도 마찬가지예요. 라이딩 스피드와 묘기로 은근히 친구들과의 경쟁심을 즐기고 있노라면 하루가 금방 가더라고요. 그만큼 중독성이 강한 것이 자전거입니다.” 좋은 점이 또 하나 있는데 게임 할 때와 달리 공부하라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많이 줄었다고. 부산일요라이딩 동호회 회원 차칠원(41)씨. 13년 경력의 자전거족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가 절대 변심하지 않고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러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고 싶은 곳을 같이 가고, 보고 싶은 것도 함께 보러 가요. 스트레스가 확 풀리죠. 자전거는 제게 ‘절친’(친한 친구)이예요. 시간을 보낼수록 친밀해지며 즐겁습니다.”‘인생의 전도사’라고 표현한 이도 있다. 자전거 동호회 카페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자출사) 회원인 이현재(53)씨는 “저만 보면 ‘대단하다’며 본보기로 삼는 주변 사람들이 많은데 마치 전도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직장에서 ‘열혈 자출사’로 불린다. 출퇴근뿐 아니라 근무 시간에도 일명 ‘쫄바지’로 통하는 자전거 전용 의상과 헬멧, 고글을 착용하고 자전거를 달려 거래처에 간단다. 처음에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는 반응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벤치마킹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한다. 실제 비나 눈이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왕복 40km를 자전거로 출퇴근, 연비 7㎞/ℓ의 자가용 이용 대비 한 달에 교통비(기름값) 20만원 정도를 절약하고 있다. 거래처 방문 등 업무 과정까지 치면 고유가 시대에 총 30만~40만원은 아낄 수 있다고. ‘자출’부터 시작해 정년퇴직 후에도 왕성하게 라이딩하는 박원용(62)씨는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했다. “마라톤 마니아였던 제게 운동은 곧 생활이에요. 한 마라톤대회에서 경품으로 받은 자전거 덕분에 지금은 자전거 마니아로 변신했죠.”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자전거의 묘미는 마라톤보다 크게 무리가 없는 운동이기 때문에 노년에도 좋다는 거니까. 이밖에도 재미난 답변이 많다. “자전거는 트레이너다.” -최민기(39)씨, 뱃살을 빼주고 건강을 지켜주니까. “자전거는 충전제다.” -홍은주(26)씨, 상쾌한 맞바람이 지친 몸에 에너지를 돌게 하니까. “자전거는 멋이다.” -양지윤(34)씨.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발명품이니까.이들의 한결같은 ‘자전거 예찬’이 선뜻 와 닿지 않는다고? 여기를 보시라. 1890년대부터 태동한 우리나라 자전거 역사는 올해 121년을 맞았다. 전국적으로 자전거 이용 인구가 대폭 늘어나면서 국내 자전거 인구는 약 500만명으로 추산되며 이 중 동호회 회원 수는 320만명을 넘고 있다. 장담한다. 자전거에 한 번 빠지면 다른 것이 눈에 안 보인다. 대신 ‘자전거앓이’가 시작된다.서울시는 한강 본류와 지류를 따라 잘 정비된 자전거길을 완성했다. 한강변을 따라 라이딩하는 자전거족(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두 다리 인간을 닮은 성장산업 질주요즘 여기저기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자, 자전거에 대한 담론이 쏟아져 나온다. 지난해 여름 TV 오락 프로그램 ‘1박2일’에 에코레일(자전거열차) 자전거 여행이 소개된 이후 그 인기가 부쩍 늘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저탄소 녹색성장의 일환으로 자전거도로를 대폭 확장하고 자전거 활용을 적극 권장하는 정부 정책이 위상을 높인다는 소리도 들린다. 자전거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무공해 친환경 교통수단이다. 자동차 중심의 문화가 대기오염, 고에너지, 교통 혼잡을 유발함으로써 사회경제적 비용 손실을 발생시킨다고 볼 때 자전거는 훌륭한 대안이 된다. 선진국들이 다양한 정책과 문화, 생활,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통해 자전거 생활화 및 관련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행정안전부는 2019년까지 1조5000억원을 투입해 총 3120㎞에 달하는 국가 자전거도로 사업을 추진한다. 지식경제부는 2009년부터 ‘국산자전거기술개발사업’을 진행, 지난해 3월 첫 과제로 카본 복합 소재를 사용한 7Kg 초경량 접이식 자전거 개발에 성공했다. 대덕특구에 자전거 연구개발 클러스터를 조성해 자전거 관련 산업을 집중 육성할 방침이기도 하다. 특허청의 경우 자전거 핵심 구성요소에 해당하는 변속기 분야의 ‘특허기술획득전략사업’을 펼친다. 지자체들도 공용자전거를 도입하고 나섰다. 공용자전거는 교통카드, 신용카드, 휴대전화 등을 통해 요금을 지불하고 일정 시간 동안 자전거를 빌려 타는 시스템. 서울시의 공공자전거, 경기도 고양시의 ‘피프틴’, 경남 창원시의 ‘누비자’, 대전광역시의 ‘타슈’ 등이 대표적이다. 기본 대여료가 보통 40분~1일 1000원·1년에 2만~3만원의 저렴한 수준이라서 최근 고유가로 인해 출퇴근, 등하교, 레저 등의 목적으로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자전거를 일상적 교통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고급형 자전거의 수요가 늘고 산업도 커질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전거 산업 활성화를 위해 자전거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어쨌든 자전거의 보급 확산은 생활 여건 개선에 큰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연 6000억 황금시장 치열한 쟁탈전국내 자전거 시장 규모는 연간 200만대로 추산된다. 1대 평균 판매 가격을 30만원으로 잡았을 때 6000억원 시장이 창출되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2000년 100만대 수준에서 2007년 230만대 이상으로 늘어나며 연평균 12.6%의 높은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웰빙 열풍에 의한 레저 활동 증가가 기폭제가 됐다. 2012년에는 2008년까지 16.6%에 불과했던 자전거 보급률이 30%가량, 연간 시장 규모도 280만대 가까이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현재 매출 및 점유율 부문 1위인 삼천리자전거와, 코렉스자전거를 자회사로 둔 2위 알톤스포츠가 자전거 업계의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나머지는 삼천리자전거 계열사인 참좋은레져, 자전거 제조업체 디엠을 인수한 에이모션 등이 두각을 나타내는 정도. 삼천리자전거는 대중적인 브랜드 ‘레스포’와 ‘넥스트’ ‘하운드’를 보유, 주로 보급형 생활자전거에 주력한다. 반면 참좋은레져는 자체 브랜드 ‘첼로’ ‘블랙캣’ ‘아팔란치아’ 등을 고급 자전거 브랜드로 키우고 있다. 또 알톤스포츠와 에이모션은 각각 ‘알톤’과 ‘아메리칸 이글’을 통한 제품 개발과 홍보에 중점을 둔다. 하지만 이 같은 토종 브랜드의 약진에도 실세는 90% 이상 수입산 브랜드가 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력, 디자인이 앞선 해외 브랜드에 대한 고객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이 일부를 제외하곤 독자 브랜드 생산보다 수입 브랜드 마케팅에 치중하는 경향”이라고 지적했다. 외국계 브랜드로는 ‘자이언트’(대만), ‘스페셜라이즈드’(미국) ‘트렉’(미국) ‘캐논데일’(미국) ‘록키마운틴’(캐나다), ‘스톡’(독일), ‘스캇’(스위스), ‘마린’(미국), ‘다혼’(타이완), ‘루이가르노’(캐나다), ‘콜나고’(이탈리아), 에디먹스(벨기에) 등이 있다. 자전거 신드롬은 업계 곳곳에서 확인된다. 자동차 분야가 그 중 하나다. BMW, 페라리, 아우디 등 해외 차들이 자전거라는 인기 종목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강화하고 있다. 자전거 업체들도 외국산 차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홍보를 극대화할 전략으로 자동차 브랜드와 손을 잡기도 한다. 삼천리자전거가 제작을 맡은 현대자동차의 ‘쏘나타 미니벨로’와 ‘투싼ix 산악자전거’, 알톤스포츠가 브랜드 자전거 개발 계약을 맺어 출시한 시보레, 사브, 베네통, 캐딜락 자전거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