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직후 기업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 제고와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업 경영에 내실화되지 못하고 껍데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내용을 살펴보면 지난해 100대 기업의 사외이사 466명 가운데 90%에 해당하는 420명이 이사회에 올라온 모든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 보류, 기권 등 찬성이 아닌 의견을 한 번이라도 낸 사외이사는 10%인 46명에 지나지 않았다. 사외이사 열명 중 아홉명은 이사회에서 찬성만 한 셈이다. 특히 임원 연봉 인상, 이사 보수한도 승인, 계열사 유상증자 참여 등과 같이 소액주주의 이익과 충돌할 수 있는 안건에 대해서도 사외이사들은 거의 대부분 대주주 편에 서서 거리낌 없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사회의 거수기'라는 별명이 그들에게 전혀 어색하지 않음을 말해주는 실태다. 지난해 100대 기업이 이사회에 올린 총 2685개의 안건 가운데 부결된 것은 단 4건뿐이다. 이 역시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음을 증명해주는 사실이다. 기업들이 이사회에 올린 안건들이 그렇게 거의 다 통과돼야 할 정도로 훌륭하기만 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사회가 대주주나 최고경영자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자동 승인기계'로 존재하는 셈이다. 이런데도 사외이사의 보수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많아야 1년에 10여차례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하고 받는 보수가 삼성전자 6000만원, LG전자 8300만원, 현대모비스 9400만원 등이다. 이 점이 수많은 샐러리맨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사회적 위화감을 증폭시키는 원인도 되고 있다. 사외이사 제도가 겉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선임의 정실주의에 있다. 사외이사는 사외이사 후보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주주총회가 선임하게 돼 있지만 그 과정에서 오너, 대주주, 최고경영자, 기존 이사가 사실상 결정권을 행사한다. 그러다 보니 오너의 고향 친구, 대주주의 학교 동문, 사장의 친인척 등이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것이다. 정년퇴직에 가까워진 사람들이 '어디 사외이사 자리 없나' 하는 농반진반을 동문 조직에 흘려보는 진풍경도 이래서 형성된 것이다. 사외이사 제도의 개선과 재계ㆍ경영계의 의식 전환이 요구된다.<ⓒ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