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일감 몰아주기 '꼼수'… 상속·증여세 카드로 맞대응

재정부 '상반기 구체화, 가을 국회에 제출'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현대차그룹은 수 년째 물류기업 현대글로비스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 2001년 문을 연 글로비스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 등이 출자해 세운 회사다. 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을 등에 업고 상장한 뒤 수 천억원 규모의 이익을 냈지만 정 부회장은 증여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지난해 자산규모 30대 그룹 가운데 총수 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20개 비상장사의 매출은 7조4000억원. 이 가운데 계열사를 통해 발생한 매출은 3조4000억원으로 내부거래 비율이 46%에 이른다. 이렇게 비상장사를 세워 일감을 몰아주고 상속을 위한 종잣돈을 만드는 일, 일명 '일감 몰아주기'는 이미 재벌가에서 일반화된 편법 증여 수단이다. 기업 가치가 올라 얻는 이익은 대주주인 기업 총수 자녀들에게 거액의 배당금으로 돌아가지만, 현행법으론 세금을 물리기 어렵다. 지난달 31일 정부가 내놓은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조세정의 실천방안'에는 이처럼 교묘하게 세금을 피해 편법 상속에 나선 기업들의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과세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까. 기획재정부는 "법인세보다는 상속·증여세를 근거로 세금을 물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정부 고위관계자는 5일 "일감 몰아주기로 기업의 가치가 오르고, 증시 상장 후 주가가 상승한다면 이익은 주주에게 돌아간다"면서 "그 이익이 어디서 나왔는지 따져보면 결과적으로 일감을 몰아준 쪽에서 해당 기업으로 부의 이전이 이뤄진 셈"이라고 했다. 그는 따라서 "상속·증여세에 근거를 두고 과세하는 게 보다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다만 "과세 기준과 방식에 대한 고민은 남아있다"고 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이번에는 공정사회를 위한 정부의 세정 방향을 밝힌 데에 의미가 있다"면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경제적 이익을 어떻게 계산할 것인지, 어디까지를 일감 몰아주기로 봐야할 것인지, 그를 통해 얼마나 큰 부가 편법 상속·증여됐는지를 따지는 문제는 좀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아울러 "여러 사례를 연구하고 있다"면서 "상반기 중 과세 근거를 구체화하고, 하반기 중 세제개편안에 담아 가을 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법상 관련 규정이 있어 이중 규제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에도 그는 "부당 지원 행위에 따른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와 별개로 부의 편법 이전이 이뤄진 사실에 대해 세금을 매겨야 하는 게 아니냐 하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한철수 사무처장 역시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와 세정당국의 세금 부과는 이중 규제가 아니라는 관련 판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7년 수정된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보면, 일감 몰아주기는 명백한 부당 지원 행위다. 지난 3월에는 그룹 총수 등이 유망한 사업 기회를 부당하게 빼앗아 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해 내년 상반기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한편 정부의 계획에 대해 법무법인 우신의 오영중 변호사는 "일감 몰아주기는 시민단체들이 오랫동안 문제를 제기해왔던 부분"이라면서 "실제 과세가 이뤄진다면 기업 문화를 바꾸는 획기적인 기회가 되겠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 변호사는 "특히 일감 몰아주기 가운데 어느 부분이 편법 증여에 해당하는지, 얼마나 과세를 할 것인지 등 세법 기술상의 문제로 정부와 기업이 첨예하게 맞설 가능성이 있다"면서 "정부가 정말 의지를 가지고 법률을 손질해 과세에 나설 것인지, 분위기만 띄워놓고 국회로 공을 넘길 것인지 관심있게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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