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추적]'인터넷 강국'에 드리운 '게임중독' 그늘

'만삭부인 살해사건' 피의자인 백모(오른쪽)씨가 지난 1일 현장검증을 위해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한 오피스텔을 찾은 모습.<br />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 자랑스런 이 수식어의 이면에는 인터넷 게임중독에 빠진 수백만명이 자리하고 있다. 가정파괴의 원흉이자 우리사회의 해악으로 자리매김한 게임중독 문제가 올 초 발생한 '만삭부인 살해사건'을 계기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지난 1월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한 오피스텔 욕조에서 박모(29ㆍ여)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박씨는 당시 임신 9개월의 만삭이었다. 초동수사에 나선 경찰이 파악한 사인은 목졸림에 의한 타살, 용의자는 서울 S종합병원 의사(레지던트)이자 남편인 백모(31)씨였다. 백씨는 "시신에 손자국이나 손톱자국도 없지 않냐"며 결백을 주장했다. 백씨가 범행을 부인했지만 서울서부지검 형사3부(이영주 부장검사)는 지난 24일 그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숨진 박씨의 목 내부에서 발견한 출혈과 피부손상 등 전형적인 목눌림의 흔적이 근거였다. 백씨와 박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는 사건 하루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8일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1월13일 전문의 자격 1차 시험을 치른 백씨는 시험을 망쳤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아 인터넷 롤플레잉(RPG)게임에 몰두했다. 밤 늦게까지 게임에 정신이 팔려있던 백씨는 다음날 새벽 3시께부터 박씨와 말다툼을 시작했다. 또 게임에 빠졌느냐는 박씨의 잔소리가 백씨의 화를 키운 것이다. 다툼은 심각한 부부싸움으로 번졌고 스트레스와 불안한 심리 탓에 절제력을 잃은 백씨는 화를 못 이겨 박씨 목을 짓눌렀다. 박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백씨는 박씨 시신을 욕조에 방치했다.  시험을 망쳤다는 불안감이 스트레스를 키웠다지만, 백씨의 더 큰 문제는 '인터넷 게임중독'에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중독 증세를 보였던 백씨는 범행 약 한 달 전부터 다가오는 시험에 따른 압박감에 게임에 더욱 몰두했다고 한다. 게임 중독에 따른 신경쇠약과 극심한 스트레스, 여기에서 비롯된 가족과의 대화 단절이 백씨 범행의 커다란 이유였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게임중독이 가정파괴의 단초였던 셈이다. 이 부장검사는 "같은 게임중독자가 아닌 한, 대부분의 여성은 남성, 특히 남편이 게임에 빠져드는 걸 이해하지 못 할 것"이라며 "장래가 달린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도 게임에 몰입하고, 시험을 망쳤다는 사실을 잊으려 또 게임에 빠져드는 모습을 박씨는 이해 못 했을 것이고 이런 상황이 화를 부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검찰 의뢰로 백씨의 당시 심리상태를 분석한 하지현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백씨는 당시 시험에 따른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태였다"면서 "그에겐 게임이 일종의 현실도피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백씨 사례에서 보듯, 인터넷 게임중독 문제는 개인을 넘어 가정으로, 가정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행정안전부(장관 맹형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 가운데 약 7%인 51만여명이 게임중독 환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만 9~39세 인터넷 사용자를 놓고 따지면 무려 191만여명이 인터넷 게임중독 환자다. 집계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까지 모두 합치면 게임중독자 수는 적어도 200만명을 훌쩍 넘길 것이란 게 정부의 설명이다. 게임중독에 따른 사회적 손실비용은 적게는 8000억원, 많게는 2조원가량으로 분석됐다.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정부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교육과학기술부 등 8개 정부부처는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근거로, 이달 초 게임중독 문제 해결을 위한 포괄적 방안을 공동으로 마련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들 부처는 8개 시ㆍ도에 흩어져 있는 전문 상담기관을 16개 시ㆍ도로 확충하는 한편,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 대해 방문상담을 제공하는 등 인터넷 중독 예방교육 확대 방안을 담은 우선추진 과제를 내놓았다. 여가부는 이와 별개로 청소년들의 심야 온라인 게임을 제한하는 '셧다운제'를 추진하고 있으며, 게임 서비스 제공자로부터 매출액의 일부를 징수해 '인터넷 중독 예방기금'을 마련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심하고 있다.김효진 기자 hjn2529@<ⓒ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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