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석, 넌 누구냐

태양계 46년 비밀이 고스란히

[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운석은 태양계의 비밀을 담고 있는 '압축파일'이다. 태양 주위를 도는 소행성에서 떨어져나온 돌덩어리인 운석에는 태양계가 처음 형성된 46억년 전 고체 물질이 형성됐던 과정이 고스란히 보존돼있다. 극지연구소 극지지구시스템연구부 운석연구팀은 올해 1월 8일부터 1월 17일까지 이탈리아와 공동 연구팀을 꾸려 남극 운석 탐사에 나선 결과 117개의 운석을 수집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번 탐사는 극지연구소 이종익 책임연구원과 유한규 전문산악인, 이탈리아의 루이지 폴코 시에나대학 교수와 장카를로 그라찌오시 산악가이드 등 총 4명이 참가, 남극 북빅토리아랜드 프론티어마운틴에서 실시됐다. 우리나라 운석 연구의 기반을 다진 이번 탐사의 안팎을 들여다본다.

운석을 수집하는 장면. 오염 방지를 위해 절대 손을 대지 않는다.

◆운이 따라줘야 찾을 수 있는 '운석'운석은 지구 곳곳을 가리지 않고 떨어진다. 그런데도 과학자들은 왜 운석을 찾으러 남극까지 가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운석을 찾아내기 가장 쉬운 장소이기 때문이다. 남극 설원이나 빙하 위에 떨어진 운석들은 일단 눈에 잘 띄인다. 또한 빙하가 서서히 낮은 지역으로 이동하다가 산자락에 막히면 바람에 의해 깎여 나가면서 그 속에 박힌 운석들이 노출된다. 이런 산자락은 한꺼번에 많은 운석을 발견할 수 있는 '노다지'다. 이번 연구도 고산지대인 남극 북빅토리아랜드 프론티어마운틴에서 이뤄졌다. 탐사에 참여했던 극지연구소 이종익 책임연구원은 "운석 탐사에는 '재수'가 따라줘야 한다"며 "이렇게까지 많이 찾을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프론티어마운틴은 공동탐사단을 꾸린 이탈리아측이 이미 10년 전 운석을 수백개 찾아낸 곳이다. "이탈리아 쪽에서는 거기 있는 운석을 거의 다 찾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가 보니 산맥 밑 청빙(눈이 쌓이지 않아 노출된 빙하)이 훨씬 많이 깎여 나갔더라고요. 인공위성으로 청빙지대 어디가 적합한지 미리 사진을 다 찍고 분석을 마친 뒤 찾아가도 현지 상황에 따라 빈 손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게 운석 탐사인데, 이번에는 운이 좋았습니다." 게다가 이번 탐사는 청빙지대 15군데를 직접 살피며 향후 운석연구를 진행할 더 많은 조사지역을 확보하는 성과도 올렸다. 2014년 테라노바만에 제2남극기지인 장보고기지가 들어서면 이를 기반으로 더욱 활발한 연구가 이뤄질 전망이다. ◆우주의 비밀이 운석 속에남극 빙하에서는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대에서 지구로 떨어지는 운석이 많이 발견된다. 이 운석들 속에는 지구 탄생의 비밀이 숨어 있다. 운석의 대부분은 태양계가 형성된 46억년 전에 만들어졌다. 46억년 전 우주에서 고체물질이 만들어진 상태가 고스란히 보존돼있다는 얘기다. 반면 '살아있는 행성'인 지구에는 지질 활동이 끊임없이 일어나 그만큼 오래된 암석이 없다. 가장 오래된 암석의 나이가 40억년에 불과하다. 이 책임연구원은 "운석을 이용하면 지구에 없는 마지막 역사를 알 수 있다"며 "지구는 불과 만들어진지 1~2억년만에 현재 크기만큼 성장했는데 그 과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알려면 운석을 연구하는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태양계에서 행성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도 풀어낼 수 있다. 과학자들은 운석마다 다른 산소동위원소 O_16, O_17, O_18 비율이 태양계 초기 형성 과정의 단서라고 추정한다. 화성에서 물의 증거를 찾아낸 것도 운석 연구의 결과물이다. 운석 연구자 상당수는 우주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때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추진했던 달기지 구축의 경우 달의 어느 지점에 내릴지, 어디에서 연구를 진행할지 등을 대부분 운석 연구자들이 결정한다는 설명이다.◆운석연구, 갈 길 멀다한국은 미국과 일본, 중국, 이탈리아에 이은 세계 5번째 운석 보유국가다. 그러나 운석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2006년 극지연구소에서 3차례 남극대륙을 탐사해 29개 운석을 찾아냈고 이번이 4번째 탐사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1973년부터 운석 탐사를 시작했고 보유 운석 개수도 각각 1만개가 넘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채 5년이 안 되는 단기간에 세계 5대 운석 보유국이 될 수 있었을까? 실제로 남극에 진출해 있는 30여개의 국가 중 운석연구를 하는 국가가 우리나라를 포함해 5개국밖에 되지 않는다. 이 책임연구원은 "운석 연구는 예산이 많이 들고 힘들어서 도전하기 쉽지 않은 영역"이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해발 2000미터가 넘는 고지대를 찾아가야 하며, 남극의 눈보라를 뚫고 헬리콥터와 경비행기로 이동해야 한다. "한 번 움직이는 데 수천만원의 예산이 소요됩니다. 게다가 남극에서 진행되는 과학 연구 중 가장 위험하다고 다들 인정하는 분야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계속하는 이유는 일종의 책임감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순수과학으로서 운석 연구의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0여년간 남극연구에 매진해왔던 이 책임연구원은 5년 전 운석연구로 돌아섰다. 차세대 연구진들에게 의미있는 성과를 전해 주고 싶어서다. "제가 10년 뒤 은퇴를 하더라도 다음 세대에 가치있게 남겨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운석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운석연구 기반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운석 탐사를 시작한 5년동안 차세대 연구진도 자리잡아 이제 한두건씩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앞으로 연구인력과 분석장비를 보강해 태양계 초기 물질 진화와 행성 발달 과정을 집중적으로 연구할 겁니다." 이 책임연구원은 "운석 연구를 긴 호흡으로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김수진 기자 sjki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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