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포럼] 빼앗아간 문화재..빌려주겠다니

1866년 병인양요는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 커다란 문화적 상흔을 남겼다. 당시 프랑스와 이에 맞서야 했던 조선의 입장이 무엇이었든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조선의 역사, 그 영혼과 같은 문화를 기록한 도서들이 정당하게 반환의 절차를 밟고 있는지 냉철하게 따져보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단순한 역사 기록물이 아닌, 우리의 정신과 혼이 담긴 각종 의례와 정신을 기록으로 담고 있는 도서들이 비로소 제 집으로 돌아와 그 후손들에게 역사의 숨결을 이어준다는 큰 의미에서 고찰해야 한다.  외규장각 도서들은 그간 약탈의 대상이 됐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왔다. 1993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한국에 돌려준 휘경원원소도감의궤 이후 꾸준하게 외규장각 도서 반환 이슈가 양국 문화교류의 주요 의제로 논의돼 온 것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약탈된 문화재를 다시 찾는 일을 어떠한 시각으로 받아들여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의 자기 정체성과 주체성과 직결돼 있는 만큼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20세기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나라들이 신생독립국의 자격을 부여받으며 주권국가로 거듭났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통상 등의 이유로 여전히 서구 의존적 성향에 좌우되며 분열과 내분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대상 국가들을 식민통치하거나 군사적으로 지배력을 확장하거나 유지하는 강대국들의 이념적 입장은 명확하다. '역사가 없는 민족에게 주권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으로서의 자격이 검증되지 않은 민족과 주체에게 독립국의 자격을 부여하기는 했지만, 그 운용에 있어서는 여전히 의존성을 떨쳐버릴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오랜 기간 통용돼 왔던 식민지배 논리다. 이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도 변동 요인과 대상을 달리할 뿐 상호관계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이 도서 반환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보다 주체적인 인식을 가져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근대화 과정부터 최근까지 우리가 겪어왔던 역사적 시련의 아픔에 늘 '역사 기록의 훼손'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는 사실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은 건물부속물이나, 기념탑 등이 지니는 상징성을 뛰어넘는다. 단순한 기념비와 물건을 되돌려받는다기 보다는 역사의 생생한 기록으로서 민족의 영혼이 담긴 소중한 문화 자산을 되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가 여전히 소유권을 보유한 채 5년 단위로 대여를 갱신하는 식으로 이뤄지는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 형식이 미덥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규장각 도서 디지털화 작업 등의 논의도 있었다고 하나 기록의 내용과 디테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파우스트가 젊음을 대신해 자신의 영혼을 판 행위는 파우스트 자신에게는 생명의 연장이 아니라 파멸을 의미했다. 영혼이 없는 존재는 주체적 삶의 주인이 되기 어렵다. '역사 없는 민족'이 2차 대전 이후 겪었던 문제들은 정말 역사적 기록물이 없었거나, 문자가 없었다는 점에서 논의될 사안은 아니다. 역사적 주체로서 구성원들이 대외적으로 자신들의 인식을 드러내어 표현할 수 있는 소통의 통로가 막혀 있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민족의 영혼을 담아내고 기록한 외규장각 도서들이 3월 국내에 돌아오게 된다는 점은 분명히 긍정적이다. 하지만 대여 형식의 논리를 포함해 왜 역사적 기록물이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중요한 가치가 있는지 냉정하게 고찰해 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우성주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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