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나의 캐디편지] '겨울철 라운드'의 즐거움

영하의 기온,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페어웨이.겨울철 골프장은 언제나 한산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스카이72골프장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래도 옷을 겹겹이 껴입고 중무장한 차림으로 오시는 고객님들과 새록새록 즐거움이 많습니다. 일단 티 샷부터 즐겁습니다. 페어웨이잔디가 벤트그라스인지라 얼어붙은 날씨에서는 비거리가 30야드에서 많게는 50야드까지 늘어나기 때문이지요. 드라이브 샷을 날리자마자 웨지를 꺼내드는 고객님의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혹 방향이 잘못되어 쌓인 눈 속에서 볼을 찾을 때면 번호까지 똑같은 볼을 하나 더 찾아 볼이 '알을 낳는' 마술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눈이 오면 골프장에서 컬러볼을 드리는데 아마도 앞선 다른 팀에서 잃어버린 볼이겠죠. 그린 앞 넓은 워터해저드가 무섭지 않은 계절이기도 합니다. 꽁꽁 얼어붙은 해저드가 머리 올리러 오신 분들에게 생애 첫 버디 찬스를 만들어 주기도 하구요, 파3홀에서는 홀인원 문턱까지 데려다 주기도 합니다. 눈 쌓인 벙커 역시 두렵지 않습니다. 페어웨이 적당한 곳에 놓고 치면 그만입니다. 벙커 샷도 가뿐한 웨지 샷으로 바뀌는 거지요.해저드 주위에 예쁘게 앉아있는 볼들도 금방 눈에 띕니다. 옷을 너무 많이 입어 돌아가지 않는 몸으로 스윙하시는 고객님들의 마음을 꼭 아는 것처럼 볼을 숨기지 않는 해저드, 순순히 볼을 페어웨이로 굴려 보내주는 산의 나무들, 코스의 제 빛깔을 잃어버린 황량한 겨울이지만 시즌 내내 스코어를 망가뜨리던 코스의 장해물들의 마음이 넉넉해진 것 같습니다. 연신 눈물과 콧물을 닦는 매운 라운드에 볼도 정확하게 맞추기 힘든 것이 겨울철 라운드입니다. 하지만 호호 불며 마시는 따스한 정종에 한순간 몸을 녹이고, 어린 아이들처럼 다시 눈밭을 뛰어다니는 고객님들과의 5시간은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골프의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이 시간들을 멋진 추억으로 남겨둡니다. 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골프팀 손은정 기자 ejso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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