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김인권의 웃음에는 묘한 페이소스가 있다. 개구장이 같은 천진난만 뒤에 종종 고달픈 삶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의 존재를 전국민에게 알린 영화 '해운대'가 그렇고 최근 개봉한 영화 '방가? 방가!'가 그렇다. 쓰나미로 어머니를 잃고 오열하던 '해운대'의 동네 양아치 동춘이 김인권에게 적역이었던 것처럼, 매번 취직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시다 '방가'라는 이름의 부탄인으로 위장해 의자공장에 취직하는 태식은 김인권이 아니었다면 관객에게 웃음과 비애를 동시에 주기 힘들었을 것이다. 영화 개봉 직후 아시아경제신문 스포츠투데이와 만난 김인권은 주연 데뷔작 '방가? 방가!'에 출연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원래 제목이 '아세아브라더스'였던 것처럼 나는 영화 속 외국인들 받쳐주는 조연으로 기능할 뿐"이라고 스스로를 낮췄다.'방가? 방가!'는 김인권이 촬영 2주 전에 시나리오를 받고 출연을 결정한 작품이다. 캐스팅 문제로 주연 자리만 빼놓고 모든 것이 결정돼 있던 상태에서 부랴부랴 캐릭터 분석을 마치고 촬영에 들어갔다. "내게 잘 맞는 시나리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의 규모도 부담이 없었죠. 영화 한 편을 끌고 갈 수 있는 기회가 내게도 오는구나 싶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작이라 단막극을 찍는 것처럼 부담 없이 하려고 했어요. 배급사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진흥위원회 지원금과 스태프·배우들의 열정만으로 완성해서 개봉하는 것만으로도 기뻐요."'방가? 방가!'은 착한 영화다. 동남아인을 차별하고 희화화하는 것이 아니라 동남아인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편견을 풍자한다. 극중 방가(또는 태식)가 동남아인을 상대로 한국어 욕을 강의하는 장면은 폭소와 함께 씁쓸함을 남긴다.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인종차별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인권은 이 장면을 연기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한다.
"그 장면은 (김)정태 형이 연기하는 용철이 이주노동자들에게 '찬찬찬' 가사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장면과 비교가 되죠. 정태 형은 대부분 애드리브로 연기했는데, 저는 감독님과 사소한 것 하나까지 의논해서 정해진 대사 그대로 했습니다. 연기하면서는 한국인들이 이주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욕을 많이 하는가 생각이 나서 울컥했죠."영화 연출을 꿈꾸다 연기를 시작하게 된 김인권은 영화 '송어'로 데뷔한 이래 '박하사탕' '아나키스트' '조폭마누라' '말죽거리 잔혹사' 등에서 개성 넘치는 연기를 주목을 받았고, 제대 후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와 영화 '숙명' 그리고 '해운대'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만 서른둘의 김인권은 벌써 12년차 배우에다 두 아이의 아빠이고 일곱 달 후면 셋째 아이를 보게 된다. 오랜 기간 연기를 하며 좋은 날들을 경험하기도 했고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다. 한때는 튀는 연기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방가? 방가!'에서는 주연임에도 극중 동남아 노동자들인 '아세아 브라더스'를 띄우기 위해 조연 아닌 조연을 자처했다.김인권은 앞으로도 욕심 부리지 않고 주어진 역할에만 전념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주연배우로는 아직 검증이 안 됐다"는 것이 그가 자신에게 내린 판단이다. 대학 졸업작품 '쉬브스키'로 연출자의 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정식 데뷔 권유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현재 이민기 강예원과 촬영 중인 '퀵'에 이어 장동건과 강제규 감독이 만나 화제를 모은 '마이 웨이'를 준비 중이다. 김인권은 이렇게 뚜벅뚜벅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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