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의 전쟁' 승자는? 천성일 vs 고은님 vs 김태희 '작가 3파전'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가히 용호상박이다. 2010년 하반기 최고작을 놓고 새로운 드라마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낸다.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하다. 각각 선언한 선전포고 뒤로 날카로운 칼을 숨겨놓았다. 그 정체는 펜과 종이. 모두 드라마를 이끄는 원동력인 대본에 총력을 쏟아 붓는다. 사투의 결말을 좌지우지할 작가들 간의 전쟁. 안방극장의 트렌드를 뒤흔들 펜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까.'펜의 전쟁'에서 가장 주목받는 건 9월 29일 방송예정인 KBS2 수목극 '제빵왕 김탁구' 후속작 '도망자'다. KBS2 ‘추노’에서 곽정환 PD와 환상의 콤비를 보인 천성일 작가가 대본을 맡았다. 그는 이미 한 차례 안방극장을 달군 기세 덕에 방송 전부터 많은 시청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천성일 작가의 필력은 충무로와 방송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모두 으뜸으로 손꼽힌다. ‘원스어폰어타임’, ‘7급 공무원’ 등으로 영화계서 단번에 주목받는 시나리오 작가로 떠올랐다. 특히 ‘7급 공무원’은 전국 관객 400만 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드라마 작가로 처음 변신해 맡은 ‘추노’ 역시 방영 2회 만에 25%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명품드라마 반열에까지 올라서며 그는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흥행 마술사’로 떠오른 비법은 흥미로운 소재 선택과 탄탄한 내용전개다. ‘추노’에서 천성일 작가는 노비를 쫓는 '추노꾼'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탄탄한 구성으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내용은 현란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졌다. 조연들의 감정 선마저 놓치지 않는 세밀함으로 그는 작품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사실 ‘추노’의 흥행은 그 역시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그는 이전 인터뷰에서 “드라마를 많이 공부하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써 내렸다”며 “겁 없이 덤빈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미 검증된 시나리오의 힘은 드라마 대본에서 그대로 묻어났다. 오히려 ‘추노’ 방영 뒤 그는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뽑아내는 능력이 돋보이는 작가라고 평가받았다.이는 새로운 도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 다룰 작품은 로맨틱 코믹 탐정액션물. 이미 ‘7급 공무원’을 통해 한 차례 선보인 바 있는 장르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은 방송 전부터 스토리 전개에 믿음을 보이고 있다. 한 방송관계자는 “‘7급 공무원’에서 보인 로맨틱 코미디와 ‘추노’에서 보인 탐정액션물이 더 해져 최상의 결과물이 나올 것 같다”며 “반죽만 잘 돼도 ‘추노’를 뛰어넘는 명품드라마 실현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물론 변수도 있다. 천성일 작가는 펜의 전쟁에서 많은 부담을 가질 수 있다. 9월 1일 방영을 앞둔 MBC 수목드라마 ‘장난스런 키스’에 명품 작가가 가세한 까닭이다. 그 주인공은 고은님 작가. 천성일 작가와 마찬가지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모두 필력을 인정받은 명필가다. 작가로서의 출발은 더 앞서기까지 한다. 2000년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 각본으로 백상예술대상 영화 시나리오 상을 수상했다. TV 드라마에서는 ‘환생-NEXT’와 ‘혼’ 등을 통해 인기작가로 거듭났다. 돌풍 예고는 화려한 경력 때문만은 아니다. 고은님 작가는 일본에서만 발행부수 2700만부를 기록한 히트 만화 ‘장난스런 키스’를 국내 버전으로 재해석한다. ‘꽃보다 남자’와 더불어 아시아 순정 만화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 만화. 탄탄한 뼈대는 고은님 작가의 극 전개에 대한 부담을 크게 덜어줄 수 있다. 한 방송관계자는 “극 흐름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에 고은님 작가 특유의 섬세한 터치가 더욱 빛날 것”이라며 “MBC ‘샴푸의 요정’,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궁', '돌아온 일지매' 등을 연출했던 황인뢰 감독과의 만남으로 이는 더욱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물론 긍정적인 시선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대만에서 연간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국민드라마로 떠올랐던 ‘장난스런 키스’의 흥행이 오히려 고은님 작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다. 다른 방송 관계자는 “지난해 KBS2 ‘꽃보다 남자’의 흥행몰이 등이 고은님 작가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원작의 풍성한 에피소드에 한국의 정서를 담아내는 작업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정된 스토리구조를 기반으로 삼은 이상 차별화를 위해 무리한 모험을 강행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로맨틱 코미디를 그려낼 KBS2 ‘성균관스캔들’에도 이는 그대로 적용된다. 30일 첫 방송한 ‘성균관스캔들’은 조선시대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청춘 사극 드라마다. 정은궐의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신인 김태희 작가가 TV드라마로 재구성한다.
김태희 작가는 제작발표회에서 “등장인물 개개인이 다양한 매력으로 극적 긴장감을 전달할 것”이라며 “동시에 신구 캐릭터의 조화를 통해 시대적 상황과 청춘로맨스의 재미를 잘 버무려 맛있는 작품으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상황은 다른 두 편에 비해 다소 열악한 편이다. TV드라마 데뷔작인데다 캐스팅된 믹키유천, 박민영, 송중기, 유아인 등 배우들의 연기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까닭이다. 한 연예관계자는 “아이돌 가수 출신 가운데 호평을 받은 전례는 비, 김동완, 윤은혜 정도에 불과하다”며 “캐릭터에 많은 감정을 담을 경우 자칫 과부하로 극 전체가 소화불량에 시달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TV드라마에 처음 도전하는 김태희 작가가 배우를 감안해 대본을 써야 하는 부담에 시달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작 김태희 작가는 이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믹키유천이 왜 그렇게 많은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스타인지 알게 됐다”며 “대단한 열정과 성실함의 소유자”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에 다른 연예관계자는 “‘꽃보다 남자’가 흥행몰이를 할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연기력이 아닌 캐릭터 그 자체였다”며 “기존 작품을 재구성하는 ‘장난스런 키스’와 ‘성균관 스캔들’ 모두 캐릭터 구축에 많은 신경을 기울여야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점쳤다.이종길 기자 leemean@<ⓒ아시아경제 & 스투닷컴(stoo.com)이 만드는 온오프라인 연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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