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배짱' 장사에 소비자 '분통'

가격은 대놓고 올리고 편의는 은근슬쩍 없애고[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임혜선 기자] # 국내 정유사에 근무하는 A 차장은 휴가 시즌마다 아내와 생이별한다. 아내가 홀로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나기 때문. 하지만 독수공방보다 힘든 건 뒷바라지다. 매년 치솟는 항공비용 탓에 이제는 한 달 월급을 다 털어도 모자랄 판이 됐다. 100만원대 항공권 가격이 불과 몇 년 새 400만원을 넘어섰다며 한숨을 내쉴 뿐이다.# 가정주부 B 씨는 올 여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는 자매를 나란히 해외 단기 연수를 보내기로 했다. 아이들이 미국에서 머무는 시간은 어림잡아 두 달 반. 팍팍한 살림살이에 할인 항공권을 찾던 그는 예전에 자주 이용하던 3개월짜리 단기 항공권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알고 실망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불필요한 1년짜리 비싼 항공권을 살 수밖에 없었다. 매년 '고공비행'하는 항공료와 항공사 편의 위주의 항공권 요금 체계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저비용 항공사와의 경쟁으로 가격이 안정된 중국과 동남아 노선과 달리 미주, 유럽 등을 중심으로 한 항공료 인상 추이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성수기마다 항공료를 인상하고 소비자가 아닌 항공사의 이윤을 중심으로 한 항공권 요금 책정 등 일방적인 관행을 벗어나야 할 때라는 목소리도 나왔다.◆치솟는 항공료 체감 가격 "감당 안 돼"=매년 이맘때가 되면 아시아 지역 내 항공사들은 대한항공의 선제적 행보에 큰 관심을 쏟는다. 국적 항공사는 물론 외항사도 마찬가지다. 성수기는 항공사들이 항공료를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대한항공이 늘 분위기를 리드하기 때문이다. '성수기에는 항공권 가격이 비싸다'는 인식은 이미 오래 전 소비자들에게 각인됐다.하지만 1~2년 새 분위기가 180도 반전됐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은 항공사들이 저가의 항공권을 들고 마케팅을 펼쳤던 것과 달리 올 들어 항공료는 원상복귀를 넘어 고공비행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항공료에 대한 소비자들의 체감 온도는 높아진 셈이다.올 여름 시드니로 휴가를 떠나는 한 직장인은 "몇 년 만에 큰 마음 먹고 해외여행을 계획 중인데 항공료가 만만치 않다"며 "티켓 가격과 유류 할증료를 번갈아 올리는 것은 물가 상승분을 두 번 반영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유류할증료는 국토해양부에서 정해진 기준에 따라 자동으로 연동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10년째 여행업에 종사한 C 사장은 "법인 수요가 대부분인 1등석보다는 개인 비용을 들여야 하는 이코노미석 가격 추이를 보면 단기간에 항공료가 얼만큼 올랐는지 가늠할 수 있다"며 "여행 업계에서는 항공료가 과도하다는 데 공감한다"고 했다. 대한항공의 경우 인천발 뉴욕행 왕복 이코노미석 항공권 공시 운임을 다음 달부터 5% 추가 인상해 476만9000원으로 책정했다.◆국적 항공 3~6개월 단기 항공권 '은근슬쩍' 없애=최근 1년 새 대항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적 항공사 두 곳은 3~6개월짜리 단기 항공권 제도를 폐지했다. 해외로 떠나려면 45일 초단기 혹은 1년 장기 항공권만을 구입할 수 있게 된 것. 그동안 복잡했던 항공권 요금 체계를 간소화할 필요성이 있었다며 가격 차이는 크지 않다는 게 항공사 측 설명이다.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은 정반대다. 우선 일방적인 조치로 인해 다양한 선택권을 누릴 수 없게 됐다는 것. 여기에 기간에 따라 가격 차이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주장이다.예를 들어 45일짜리 항공권으로 미국을 떠날 경우 예약과 동시 발권, 여정 변경 불가 등 추가적인 옵션이 붙는 대신 1년짜리에 비해 가격은 더 싸다. 3~6개월 항공권이 사라지면서 이들의 수요가 자연스레 1년 만기 항공권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C 사장은 "기러기 가족이나 단기 연수를 떠나는 수요자에게 적합한 항공권을 권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하나투어 관계자는 "항공권 요금 체계가 워낙 복잡하다보니 항공사에서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모두투어 관계자는 "3~6개월 항공권이 존재한 지난해와 올해 가격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며 "항공권을 환불할 때 수수료는 지난해와 같아 1개월 항공권은 25%, 1년은 10%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전했다.대한항공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항공권 유효 기간을 1년으로 통일하면서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혜택을 늘리는 등 오히려 고객 편의를 증진했다"고 반박했다.김혜원 기자 kimhye@임혜선 기자 lhsro@<ⓒ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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