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100년-미래경영3.0]창업주DNA서 찾는다<2>현대그룹 아산 정주영⑤자원보고 넘어 유럽까지 물류철도 연결 목표고향 향한 그리움·미개척 北 시장 선점 의지기업통해 국가에 기여 애국 경영철학 실천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소떼와 함께 방북했다. 고인의 소떼 방북은 20세기 최고의 사건으로 세계 역사 속에 기록됐다.
[아시아경제 손현진 기자]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생전 강력히 추진했던 사업들의 궤적을 좇다보면 한국 경제의 발전사와 맞닿는다.197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공사를 따냈고 1980년대 독일 바덴바덴에서는 '88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또 1990년대에는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평생 숙원이었던 '대북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정 회장이 대북 사업을 위한 바람을 실현하기 시작한 것은 독일 바덴바덴에서 서울 올림픽 유치 위원장으로 활동할 때부터다. 당시 독일에서 북한 대표를 만난 정 회장은 "생전에 한번 고향에 가보고 싶다"며 방북 의사를 넌지시 건넸고, 북한 대표가 "꼭 그러실 날이 있을 것이다"고 답한 것이 결국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이후 정 회장은 1987년과 1988년 두 번에 걸쳐 북한의 초청을 받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 정 회장의 방북 허가를 받은 건 1989년 세 번째 초청을 받았을 때다. 그는 아들 정몽헌, 김운규 등 핵심 측근들과 함께 44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을 밟게 된다. 그가 또 다시 군사분계선을 넘은 것은 그로부터 9년 후인 1998년 6월이다. 그 유명한 '소떼몰이 방북'이다. 정 회장은 소떼 500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넘으며 한국은 물론 외신들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역사적 장관을 지켜보던 프랑스 문화비평가 기 소르망은 "20세기 마지막 전위 예술"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미국과 중국 간 핑퐁외교가 세계 최초의 스포츠 외교였다면 정 회장의 소떼몰이 방북은 세계 최초의 민간 황소 외교"라고 대서 특필하는 등 세계 유력 일간지들은 정 회장의 방북 소식을 주요 기사로 타전했다.전 세계의 관심을 받은 정 회장의 소떼몰이 방북은 일회성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충남 서산 삼화목장에서 키우던 소떼는 정 회장이 오래 전부터 대북사업을 준비해오고 있었다는 방증이었기 때문이다. "북한과 자본주의식 상거래는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그가 찾은 답이 '소'였던 셈이다. 갑자기 소를 왜 키우느냐는 주변의 질문에 그는 "살생의 사업은 없다"며 말을 아꼈을 뿐이었다.그가 대북사업을 마지막 과제로 삼은 것은 어렸을 적 소 한 마리를 팔아 무작정 상경한 이후 늘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기 때문이었다. 또 경영인으로서는 그 누구도 도전하지 않았던 북한을 먼저 선점한다면 향후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본능적인 직관'에 따른 결정이기도 했다. 여기에 '기업은 항상 국가를 위해야 한다'는 경영 철학이 포개지면서 20세기 한국사에 큰 획을 긋는 업적을 남기게 된 것이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이 1998년 10월 30일 북한 김정일 총비서(현 국방위원장)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 회장은 당시 김 총비서와의 면담에서 금강산 관광 사업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사실 그의 최종 목표는 북한이 아니었다. 북한을 경유해 자원의 보고인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무역물류 철도 수송로를 여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해로로 당시 27일 걸리던 운송시간은 철도 수송로가 열리면 10일 안팎으로 단축될 것으로 기대됐다.한편 첫 소떼몰이 방북 이후 4개월 뒤 정 회장은 소 501마리와 함께 한 차례 더 방북했으며, 4차 방북 때 금강산 관광 사업을 금강산 종합개발 사업으로 확대하는 등 북한과의, 협력을 점차 확대해갔다. 이어 같은 해 11월 18일 금강산 관광선 '금강호'가 첫 출항을 하 며 대한민국 역사에 또 한 번 큰 획을 그었다.정 회장도 이듬해 사장단 신년 하례회에서 "금강산 관광 사업을 실현시켜 우리 국민에게 통일에 대한 희망과 함께 남북이 처한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것은 우리 '현대'만이 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업적"이라며 강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수많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남북 통일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회환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정 회장은 8차례 방북을 통해 평양 체육관 건립과 남북농구경기 개최 합의, 서해안 공단개발 사업 합의, 평양 아산 정주영 종합체육관 착공 등 잇단 성과를 도출해냈다. 정 회장이 생전에 "남북통일이 되면 우리는 아시아의 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두고두고 남북화해를 강조했다. 남북 관계 개선에 크게 기여한 정 회장은 2001년 세상을 떠난 후 만해평화상과 DMZ평화상을 수상했다.손현진 기자 everwhit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산업부 손현진 기자 everwhit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