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학회’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그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죽음에 대해 함께 연구하는 모임입니다. 죽음이란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모든 이의 숙제이기에,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이 모여 결성한 것이 죽음학회라고 합니다. 철학, 신학, 불교학, 의학, 장례학 등 죽음과 관련된 분야의 학자들이 주회원이고,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가 학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는 ‘왜-인간의 죽음, 의식, 그리고 미래’라는 창작집을 낸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던지는 질문을 창작집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살아가면 그만큼 준비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죽음에도 품위가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대면하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외면하기 십상입니다. 병원마다 문상객을 위한 영안실은 화려한데도 제대로 된 임종실은 갖추지 못한 현실을 이같은 이유에서 찾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얼마 전 최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맞이하는 죽음, 당하는 죽음’이 주제였습니다. 맞이하는 죽음은 얼마전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지요.인위적인 생명연장 장치에 의존하지 않고 존엄사를 선택하고, 안구 기증까지 하는 그야말로 살아온 모습 그대로 많은 사람에게 죽음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모범적이고, 헌신하는 죽음이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자신의 죽음을 끝내 외면하다가 사후에 많은 문젯거리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준비되지 않은 당하는 죽음의 예라 할 수 있겠지요. 죽음에 대한 다양한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이같은 측면에서 보면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최 교수는 강의를 통해 죽음에 대한 의식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의 국민소득은 2만달러에 가까운데 죽음에 대한 의식은 2천달러 수준에 머물러있다는 얘기였습니다.최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나니 6년 전 세상을 떠난 시어머니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시어머님은 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 6개월을 저희 집에서 모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별연습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식탁에 마주앉아 지나온 시절을 회상하며 들려 줬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머님의 아파트에 가서 고춧가루, 다진 마늘 등 냉동실에 보관된 것을 빼놓지 않고 가져오라고 했습니다.“어머니 그때그때 드시지 뭘 이렇게 많이 얼려놓으셨어요?”어머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천년만년 살 줄 알았지!!”냉동실 정리를 시작으로 어머님의 죽음 준비는 시작됐었습니다. 가장 보기 좋은 사진을 골라 영정사진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남에게 나누어줄 물건도 골라주었습니다.그리고 돌아가시기 며칠 전 예금통장 번호까지 알려줬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지기 전에 가서 확인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수첩까지 정리하며 연락할 분들의 명단을 건네 줬습니다.돌이켜보면 어머님은 준비된 죽음을 맞이한 셈입니다. 최 교수님이 얘기한 2만달러 수준의 죽음의식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요즈음 상조회사의 광고가 부쩍 늘어났습니다. TV를 시청하다보면 심심찮게 상조회사 광고를 접할 수 있습니다. 터부시되던 ‘죽음’ 이 안방에까지 침투한 것입니다.그들이 안방에까지 다가온 이유는 물론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사회 때문입니다. 이 시장을 잡으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계산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상조회사 광고 바람은 죽음에 대한 준비를 시켜주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 광고를 접할 때마다 죽음을 실감하기 때문입니다.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이들 광고가 만들어 준 셈입니다.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더욱 속도를 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결혼식처럼 꼼꼼히 미리 준비해 두는 장례의 개념으로 빠르게 변해갈 것입니다.시장의 규모가 커지면 당연히 산업이 될 것입니다. 서비스도 다양해지고, 사람들의 의식 또한 그 서비스를 따라 변해갈 것입니다.불황의 터널에서 하루하루 꾸려나가는데 정신이 팔려 있는 지금, 바쁘지만 준비된 죽음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보는 주말되시기 바랍니다.리봄 디자이너 조연미<ⓒ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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