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석기자
영화 '실종'
- 영화 '세상 밖으로' '초록물고기' 그리고 이번 '실종'까지 자신의 이미지를 배반하는 역할에 애착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 내겐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의 이미지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그걸 흔들고 싶었다. 탈피하고픈 생각이 분명 있었다. 지나와서 생각해보면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한때 광고모델로서 가치 유지를 위해 이미지 관리를 했던 부분도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배우는 다양한 인물을 표현하며 관객들과 같이 느끼는 것이 존재 이유라 생각했던 게 더 컸다. 제안이 들어오면 거부하지 않고 했을 뿐이다. - '그것이 알고싶다'를 진행했던 것, 정치를 했던 것을 후회한 적은 있나? ▲ 그 질문에 대한 대답보다는 소회를 말하고 싶다. 먼저 '그것이 알고싶다'는 나중에 (정)진영이가 자문을 구할 때 "네 경력에 도움이 될 거다"라고 말해줄 정도로 내게 고마운 프로그램이었다. 정치 참여는 시민으로서 자원봉사를 한 것이어서 지금도 뿌듯하다.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민이 참여해야 한다. 난 단지 직업이 배우인 한 명의 시민으로서 자원봉사로 참여했을 뿐이다. 직업을 정치가나 행정가로 바꾸고 싶은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없다. 정부나 정치인으로부터 전혀 혜택을 받지 않겠다고 여러 번 반복해서 말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렇게 5년이 지났고 난 약속을 지켰다. 배우가 훨씬 행복한데 직업을 왜 바꾸겠나. 분명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배우들의 정치 참여를 자연스럽게 보는 날이 올 것이다. - 정치 참여를 안 하고 '그것이 알고싶다'를 계속했다면 CF 수입도 꽤 많지 않았을까. ▲ 그렇겠지. 2002년 그만둘 때도 사실은 방송을 더 하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광주 경선에서 이겼을 때 너무 좋아서 연단에 올라가 함께 만세를 불렀던 적이 있는데 그게 보도가 되자 방송국에서 정치를 할 것인지 방송을 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정치를 안 하고 방송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경선 끝나고 노사모 축하잔치에 갔던 게 다시 화근이 됐다. 난 일부러 멀리 떨어져 서 있었는데 그쪽에서 보고 나를 불러 올려 인사말을 요청한 것이다. 그게 보도가 됐으니 난 약속을 어긴 셈이 됐고 결국 방송에서 물러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 배우로서 자신과 맞지 않는 옷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인가. ▲ '경마장 가는 길'이나 '그들도 우리처럼' 같은 작품은 하나하나가 힘들었다. 더 힘들었던 건 '101번째 프로포즈'였다. 배우는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픈 욕심이 있는데 체질적으로 안 맞는 건 하지 말아야 한다. 그걸 깨닫게 해준 작품이다. 사실 그때 주위에선 말렸는데 한번 해보겠다고 나섰다가 실패한 것이다. - 반대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은 어떤 것인가. ▲ '그것이 알고싶다'가 잘 맞는 것 같고 '경마장 가는 길' 같은 작품도 연기가 간단치는 않지만 잘 접근이 된다. '수'와 '실종'을 거치면서 느낀 건 악역도 쉽게 접근이 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 요즘 어떤 것이 삶의 낙인가 ▲ 러시아에 가면 40년간 16세 캐릭터를 연기해온 예순 살 배우의 연극이 관광코스라고 하더라. 요즘 연극 '칠수와 만수' 재공연을 생각하고 있다. 극중 나이가 26세인데 오리지널 멤버인 나와 강신일이 다시 함께 무대에 서는 거다. 강신일에겐 2년에 한 번씩 한 달간 10번만 하자고 했다. 그럼 우리가 80세가 다 될 것이다. 무대에서 몸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해보고 싶다. 강신일의 건강이 회복되면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 하면서 재미있게 산다. 좋은 책도 읽고, 등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