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그래도 희망을 쏜다]<7> 20대 온라인 게임과 현실의 경계에 서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20대 후반 K의 하루는 국내 한 온라인 게임 업체가 서비스하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에 접속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컴퓨터를 켜면 메일을 확인하고 취업정보 사이트를 돌며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온라인 게임의 실행 아이콘을 더블 클릭하는 자신을 막을 수 없다.
어제 밤 꿈속에서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적의 성을 향해 진격하던 자신의 당당한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게임 속 그의 레벨은 40. 남들은 높다하지만 스스로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은 단계다. 그는 이렇게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레벨을 향해 오늘도 클릭을 계속하는 불굴의 의지가 엄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힘이 되리라 믿어볼 뿐이다.
더구나 그는 '자동사냥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고 이 정도 레벨을 성취한 자신이 자랑스럽다. 현실에서도 부단한 노력만으로 높은 단계에 진입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해보지만 이내 게임 속에 빠져들고 만다. 각종 고가의 아이템으로 중무장한 그는 오늘도 영웅다운 풍모로 전장을 누빌 것이다.
이 화려한 아이템을 얻기 위한 노력을 어찌 말로 설명할까. 그는 부모님께 받아쓰는 용돈의 대부분을 게임 아이템에 투자하고 있다. 그런들 어쩌리. 폼 나는 그의 캐릭터는 호기롭게 전진을 계속한다.
◇20대 중 절반이 하루 6시간 온라인=위의 내용은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한 20대 남성의 아침을 가상으로 꾸며본 것이다. 한국게임산업진흥원이 발간한 '2008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07년 국내 게임 시장은 5조 1436억원 규모이며 2008년에는 6조 391억원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온라인 게임은 2006년에 비해 26% 성장해 2007년 2조 2403억원 규모였으며 2010년에는 3조 9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전체 게임 시장 규모의 43.5%에 달하는 것이며 수출의 경우 온라인 게임이 전체 게임 수출의 95.5%를 차지하고 있다.
또 게임백서 조사 결과 9세 이상 49세 미만의 일반인 1700명을 대상으로 '하루 여가시간'에 대해 조사한 결과 6시간 이상이라는 응답이 20대 초반은 67.3%, 20대 후반은 60.8%로 나타났다. 20대 10명 중 6명은 하루 6시간 이상의 여가 시간이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여가 시간에 즐겨하는 활동'을 물은 결과 20대 초반은 30.8%, 20대 후반은 30.0%가 게임이라고 응답했다. 또 게임 이용자들에게 '주로 이용하는 게임'을 물은 결과 20대 초반의 60.5%, 20대 후반의 68.9%가 온라인 게임을 즐긴다고 답했다.
전체 온라인 게임 이용자 중 20대의 비율은 27.3%에 달했다. 20대가 온라인 게임에 들이는 돈은 20대 초반은 월평균 1만7357원, 20대 후반은 1만 7428원으로 나타났으며 아이템 구입비로는 각각 1만 5418원, 1만2천865원을 쓰고 있었다.
물론 20대 대부분이 온라인 게임에 심취한 것도 아니며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도 아니다. 온라인 게임은 여가를 즐기는 오락이며, 스포츠이고 동시에 3조원 규모의 산업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온라인 게임의 여러 요소들은 현실의 부당함에 대한 대리만족의 효과를 주기도 한다.
온라인의 삶은 이제 실제 생활 속으로도 깊숙이 침투해 아이디는 제2의 정체성이 됐다. 온라인 게임 속의 다툼이 실제 싸움으로 번지는 '현피'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제 다시 K의 하루를 따라가 보자.
◇현실에서의 '공성전'은 쉽지 않아= K가 집을 나선 것은 점심시간이 지나서였다. 집에서 점심을 해결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K는 늘 점심시간이 지난 한산한 식당을 찾아 식사를 해결하곤 한다. 그가 들고 있는 것은 오래된 노트북 가방과 낡은 우산. 지갑에는 점심값과 교통비 정도가 남아있다.
K는 방패와 칼을 들고 한판 싸움에 나서는 게임 속 캐릭터처럼 양손에 가방과 우산을 들었지만 영 기분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현실에서 그의 레벨이 너무 낮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공성전'이 있는 날이다. K는 입사 면접시험이 예정된 여의도로 향했다.
면접 순서를 기다리며 K는 다른 지원자들의 레벨을 가늠해봤다. 대부분 자신보다 고수처럼 보였다. 저마다 당당한 표정으로 가슴 속에 비장의 아이템을 감추고 있는 것으로 짐작됐다. K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초라한 '나무 방패'와 '녹슨 칼'을 생각하니 그나마 가지고 있던 초보자의 패기마저 없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런 K의 사정은 고려치 않고 드디어 공성전이 시작됐다.
성을 지키는 면접관의 공격을 날카로웠다. 대학 졸업 후 1년의 공백기에 무엇을 했느냐는 공격에 K는 차마 온라인 게임에서 상위 레벨을 성취했노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가장 잘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몬스터 사냥이라고 당당히 대답하지 못했다. 또 최근에 가장 시간을 들여 하고 있는 일을 묻는 질문에도 온라인 게임이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K는 오히려 되묻고 싶었다. 면접관의 레벨은 어떻게 되는지,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당장 온라인 게임에 접속해 한판 승부를 벌이는 것은 어떤지. 하지만 그것은 K의 바람에 불과했다. 결국 공성전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이미 다 망가진 초라한 아이템을 챙겨 여의도를 떠나면서도 K는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직 온라인 게임 속 한 차례의 공성전이 또 남아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는 현실처럼 처참하게 물러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K가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이미 둥지를 틀고 있는 온라인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실과 온라인의 경계가 모호한 삶을 사는 K가 바라는 것은 어서 이 고단한 현실에서 '로그오프'하는 것 뿐이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박현준 기자 hjunpar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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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과학부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정치경제부 박현준 기자 hjunpark@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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