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전국 1400만여 가구가 시청하는 케이블TV 업계는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른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와 프로그램공급사업자(PP)간 전송 계약 및 채널 협상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PP들은 SO와의 전송 재계약에 실패하거나 좋은 채널을 부여받지 못하면 매출에 큰 타격을 입기 때문에 사활을 걸고 협상에 임한다. 수도권 SO 관계자는 "계약이 취소되거나 좋은 채널을 배정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SO를 찾아와 연일 시위를 벌이는 PP도 있다"며 '살벌한' 분위기를 전했다.
SO와 PP간 협상이 올해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IPTV(인터넷TV) 때문이다. IPTV 상용화를 계기로 일부 PP들의 IPTV 진출이 이어지면서 SO들의 반격도 만만찮게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 보도채널 YTN은 SO의 압박을 못 이겨 IPTV에 진출하려는 계획을 포기한 바 있다.
최근에는 증권ㆍ경제방송 '토마토TV'를 운영하는 '이토마토'가 충청지역 7개 시ㆍ군에서 방송을 송출하는 '한국케이블TV 충청방송' SO로부터 계약 파기를 당해 'IPTV 진출에 대한 보복'이 아니냐는 논란을 낳고 있다.
이토마토는 서울 경기 지역의 주요 SO들과도 재계약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면서 회사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토마토는 방송통신위원회에 도움을 청했지만 채널 결정권은 SO의 고유영역이어서 방통위로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KT의 IPTV 서비스 '메가TV'에 OCN, 수퍼액션 등을 공급하는 MPP(복수방송채널사업자) 온미디어도 혹시나 SO로부터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온미디어 고위 관계자는 "SO들과의 협상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랄 뿐"이라며 극도로 말을 아꼈다.
반면, SO들은 자신들이 '가해자'로 몰리는 것에 대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도권의 한 SO 관계자는 "아날로그 방송 대역의 한계 때문에 IPTV와 차별화된 채널을 송출하려는 것은 당연한 조치"라며 "이를 두고 '보복' 운운하는 것 자체가 IPTV에 편향된 시각"이라고 항변했다.
현재 국내에는 200여개의 PP들이 활동하고 있는 반면, SO들이 송출할 수 있는 채널은 90여개에 불과해 '취사선택'은 불가피하다. 또 다른 SO 관계자도 "그동안 정부가 일방적으로 IPTV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줬다"며 "SO들도 생존을 위해 '온리(only)' 케이블 정책을 유지하는 PP들에게 더 좋은 채널을 부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IPTV에 진출한 PP들이 케이블TV에 있을 때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주요 PP가 아니면 IPTV 사업자들이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정부는 '콘텐츠 강국'을 강조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PP들은 여전히 약자로서 휘둘림을 당하고 있다. 성장 가능성이 불확실한 IPTV로 진출할 것인지, 구(舊) 매체로 전락할 수 있는 케이블TV에 남을 것인지 '힘 없는' PP들의 고민이 깊어만 가고 있다.
이정일 기자 jaylee@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정보과학부 이정일 기자 jayle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