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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컬처] 영화 '탑건'으로 보는 국제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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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컬처] 영화 '탑건'으로 보는 국제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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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우리 문화가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요즘은 식상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한때 문화계의 슬로건처럼 자주 보던 표현이다. 얼마 전 영화 '탑건 : 매버릭'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소위 ‘정치적 올바름’의 시대에 멸종된 줄 알았던 미국적인 미국영화를 만났다. 가장 미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적어도 이 영화는 그렇게 믿고 만들어진 것 같다.


1980년대의 미국 대중문화는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과 영화 양쪽 모두에서 화려하고 과시적인 분위기로 가득했다. 마이클잭슨과 마돈나는 압도적인 노래와 무대로 팝시장을 이끌었고 치렁치렁 긴 머리에 딱 붙는 가죽옷을 입은 로커들은 헤비메탈로 전 세계 청춘들의 심장을 거머쥐었다. 할리우드 영화도 그런 식이었다. 막강한 자본력과 독보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액션영화들이 세계 영화시장을 휩쓸었다. 영화 ‘탑건’과 톰 크루즈는 그 시절 할리우드 영화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샘플이다. 그리고 무려 36년이 지난 올해, 속편이 나왔다.


영화의 단점을 해결하는 두 가지 전략이 있다. 단점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방법이 있고 단점은 놔두고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탑건 : 매버릭'는 노골적으로 두 번째 전략을 택한다. 뻔히 예상되는 스토리, 1편과 겹치는 플롯과 캐릭터, 비현실적인 설정 등등 단점만 이야기해도 이 칼럼이 끝나겠지만 이 영화는 장점으로 단점을 덮어버린다. 액션 영화의 장인 故토니 스콜(리들리 스콧의 친동생이다)의 1편에 뒤지지 않는 항공액션, 중장년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젊은 영화 팬들도 섭섭하지 않게 해주는 균형감도 좋다. 무엇보다 영화 속에서 만년 현역 파일럿 캐릭터인 매버릭과 현실에서 환갑이 넘어서도 액션 영화의 주연으로 살아가는 톰 크루즈라는 배우가 동일한 인물처럼 느껴지는 감동이 묵직하다. 영화 '레슬러'에서 미키루크를, '시'에서 윤정희를 보며 느낀 숙연함과 결이 같다. 톰 크루즈가 영화역사상 최고의 배우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최고의 액션배우임은 분명해 보인다. 매버릭이 최고의 탑건인 것처럼.


영화를 통해 국제정세도 가늠해볼 수 있다. 탑건 1편이 나왔던 80년대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였다. 이제 냉전은 끝나고 소련 대신 중국이 미국의 상대로 급부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에서도 세계의 중심이 중국이라는 시각을 담은 영화를 여러 편 선보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유랑지구'가 있다. 태양이 수명을 다해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중국이 나서서 아예 지구를 태양계 밖으로 이동시킨다는 허무맹랑한 스토리. 영화 속에서 중국은 다른 나라들과는 실컷 손을 잡는데 미국만 없다. 설정만 보면 황당하지만 각본, 연출, 연기, 촬영기술이 기대를 뛰어넘는 영화였다. 기대가 너무 낮아서인지도 모르겠다.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감상을 권한다.


영화 '탑건 : 매버릭'에서 적진이 어디인지는 끝까지 단서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이런 대사가 되풀이해서 나온다. 톰 크루즈가 이끄는 팀이 상대해야 할 적군이 최신예 전투기와 미사일 체계를 갖고 있다는 설정에서 ‘중요한 건 파일럿이지 전투기가 아니다’라는 말이 영화의 주제처럼 반복된다. 막강한 자본력과 과학굴기를 앞세워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중국에게 ‘너희는 절대 우리를 못 따라와’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이재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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