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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여자정신근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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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여자정신근로령 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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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마지막 두 해. 1944년 가을과 1945년 봄에는 혼사(婚事)가 잦았다고 한다. 사연이 있다. '조선징병령'이 1943년 8월 1일자로 시행돼 한반도의 청년들은 1944년 하반기부터 입대하기 시작했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전장에 아들을 내보내야 했기에, 여러 문중에서는 대를 이을 후손이나마 남기기 위해 혼사를 서둘렀다. 딸을 둔 부모들도 다급했다. 1944년 오늘 일본 칙령 제519호로 공포된 '여자정신근로령' 때문이었다. 말로는 공장에서 일을 한다지만 한 번 끌려가면 어떤 꼴을 당할지 장담 못할 일이었기에 딸을 속히 결혼시켜 동원 대상에서 빼내려 하였다.


여자정신근로령은 '국민직업능력신고령'이 지정한 직업 능력을 가진 만 12부터 40살까지의 배우자 없는 여성에게 정신근로령서를 발급하여 작업장에 배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령이었다. 여기에 불응하는 자는 취직령서(就職令書)에 의해 강제로 취업하게 하고, 그래도 불응하면 국가총동원법 제32조에 따라 처벌했다. 여자정신대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업체 또는 업주는 사전에 일본 지방장관에게 신청하게 되어 있었고, 지방장관은 이 신청에 따라 말단 지방행정 기관장, 또는 단체나 학교의 장에게 대원 선발을 명할 수 있었다.(전우용)


'정신대'란 일제가 제국주의 전쟁에 필요한 인력 동원 정책에서 나온 것으로, 당시 일본인은 누구나 일본 국가에 말 그대로 '몸을 바친다'는 뜻의 제도상의 용어이다. 특히, 식민지 조선 여성에게는 '여자근로정신령'을 제정함으로써 이전부터 자행된 당시 여성들의 강제 동원을 합법화시켰다. 어쨌든 여자근로정신대는 여학교나 마을 등을 중심으로 일단 지원자를 차출, 일본 등지로 끌려간 여성들을 일컫는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그리 낯설지 않은 '처녀 공출'이란 말도 정신대가 일반적으로 이뤄졌음을 반증한다. (신영숙)


조선여자근로정신대는 노동력의 동원이라는 점에서 성적 착취가 이루어진 일본군 위안부와는 다르다. 그러나 근로정신대라고 모집해 놓고 위안부로 끌려가거나 성 착취를 당하는 경우가 잦았다. 따라서 일제에 대한 여성착취라는 개념에서 한 분류로 인식돼 종전 후 위안부와 혼용하여 정신대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했다. 성 착취를 당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근로정신대로 강제노역을 마치고 온 여성들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경력자로 오해받을까봐 근로정신대원이었다는 사실을 발설하지 못하고 살아온 경우도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위안부 문제는 한일관계의 개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외교적 현안 중에 하나다. 위안부 문제가 한일 관계를 뒤흔드는 쟁점으로 발전한 계기는 한국 사회가 민주화를 이룬 뒤 4년 만인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밝히는 역사적인 증언을 하면서다. (길윤형) 일본에서는 1993년 8월 4일 '고노 담화'라고 일컬어지는 위안부 관계 조사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내각관방장관 담화에서 위안부 모집에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하였으며 강제연행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일본의 극우 세력은 위안부들은 매춘부들이며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고노 담화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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