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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ounter] 계간 파란 2019년 여름호 '프런티어'
최종수정 2019.08.23 08:50기사입력 2019.08.23 08:50
[Encounter] 계간 파란 2019년 여름호 '프런티어'


종합문예지 '계간 파란'이 조금 늦게 여름호를 냈다.특별히 '이슈' 기획에 눈길이 모인다. 근래 첫 시집을 발간한 김광섭, 이범근, 이병국, 정우신, 정창준 등 젊은 시인 다섯 명의 좌담이다. 이들은 '시'를 말하고 있다. 어떤 검열에 대해 논의할 때도, 문학장과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 권력과 한편으론 인정욕망에 관해 토로할 때도, 시가 유통되는 방식과 독자와의 소통에 대해 타진할 때도. 한국시가 여전히 미지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면 젊은 시인들이 보여준 "끝까지"라는 무한 동력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주제에 주목해 시인 장석원이 쓴 에세이를 갈무리한다.<편집자주>






[Encounter] 계간 파란 2019년 여름호 '프런티어'

사로잡힌다. 부사 두 개를 박아 넣는다. 단박에, 기꺼이. 나는 저 부사 둘을 사용하여 (무엇을) 결정하고 실천할 것이다. 예술은 어디에서나 찾아온다. 우리의 감각과 인식을 열어젖히는 새로움에 눈을 뜬다. 있었으나 알지 못했던 것, 없었는데 나타난 것, 별개로 존재했으나 결합하여 돌연변이가 된 것. 만나면 '단박에' 나를 포박하는 것, 나를 할박(割剝)하는 것. '기꺼이' 나를 지우고 다른 존재로 변양하게 하는 것. 감각을 넘어서는 인식의 아름다운 쾌락이 여기에 있다. 무한한 행복이 나를 기다린다. 들어가서 먹히자. 완전히 용해되자. 지금의 '나'를 지우자. 그 너머에서 '나'는 다른 존재가 될 것이다. 새로운 잡종이 될 것이다. 다른 예술이 될 것이다. 모든 예술의 시작이고, 언제나 모든 예술의 종지(終止)인 시는 그 모든 것들의 가능성이다. 시가 나아갈 길을 두 음악가에게서 발견한다.


이희문의 강연을 5월 1일에 들었다. 그가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에, 그를 알게 되었다. 우연하게 유튜브에서. 'NPR Music Tiny Desk Concert.' 크로스 드레싱과 글램 록과 한국 전통 민요가 하나가 되었다는 짧은 소개. 머리가 비워지고 그 안에 불이 켜진 것. 강렬한 감전이었다. 지인들에게 소개했다. 후배에게 메신저로, 제자들에게 강의 시간 감상용 교재로, 들려주고 보여 줬다. 음악 때문에 다른 세계로 빨려들었다. 100% 충전되었다. 에너지 상승, 고열 발현, 여기상태(勵起狀態) 도래. 밴드 '씽씽'이었다. 아저씨 팬의 두근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강연장에서 씽씽밴드의 리드 보컬리스트였던 이희문을 만났다. 사진 찰칵, 동영상 촬영, 육성 공연에 흠뻑. '자진난봉가'처럼, 나는, '넘어간다 넘어간다' 넘어가고 말았다. 그가 말했다. 국악에는 판소리만 있는 게 아니에요. 멜론은 '국악' 하나에 다양한 음악을 때려 넣었어요. 경기민요는 있는지도 몰라요. 아쉽죠. 판소리는 소설이고 민요는 시예요.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가. 알고 있다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 김소월 시의 특징에 민요를 접착시켰지만, 그 결합의 의미를, 현대시와 민요의 관계를, 김소월이 성취한 이질적인 현대성을 성찰해 왔는가. 전통에서 현대성을 발굴해 본 적 있던가. 광맥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이너마이트이다. 터뜨려라, 상식을, 깨부숴라, 감각을.


밴드 씽씽의 음악은 결합된 다중체이다. 상상하지 못했다, 민요와 락을 혼혈할 생각. 불온하다, 민요와 다른 음악을 섞어서 새로운 잡종을 만들 생각. 천재적이다.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것이다. 도전이 필요하다. 살피면 늦는다. 안 되는 것 없다, 일단 해 보자, 이런 '똘끼'가 중요하다. 김수영과 김소월을 뒤섞은 잡종 현대시를 아무도 꿈꾸지 않았다. 민요와 산문시를 하나로 만든 돌연변이는 왜 없는가. 씽씽의 음악은 민요에 락을 반주로 입힌 형태라고 하는 것이 적당할 수도 있다. 장르 이름, 스타일 규정은 중요하지 않다. 없던 것이 탄생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혁신적인 새로움이 이룩되었다. 민요가 우리에게 돌아왔다. 가치 부여는 나중에 연구실의 '당신들'이 하는 것. 평가는 역사가 실시하는 것. 나의 감정은 그랬다. 민요의 선율과 가사가, 흐느끼는 기타와 떠나가는 님의 발소리 같은 베이스가 가슴을 찢었다. 솔직히, 당혹스러웠고 고통스러웠다. 직장으로 가다가, 내부순환도로의 교통 체증에 갇혔고, 도착할 때까지 노랫가락을 반복해서 듣다가, 눈물이 흘렀다. 그냥 그래야 했다. 음악이 나를 먹었다. 노래가 나를 열었다. 그리고 나는 시를 잃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음악은 사람을 멈추게 하고, 변화하게 한다. 그 음악은 열광으로 몰아간다. 끌려가도 좋고, 매달린 채 대롱거려도 좋다. 올가미만 남아도 괜찮다. 말라 부스러져 먼지가 된다 해도,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 과정이 대가를 요구한다면, 기꺼이, 이전의 언어를 버릴 것이다. 나를 지워 버릴 것이다.

씽씽의 음악은 우리에게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오로지 '음악(예술/시)'이 주어이자 목적어이다. 그들의 음악이 빚어내는 문형. 음악이라는 주어와 목적어. 서술어를 상정하지 않는 음악. 이것도 음악(시)이고, 저것도 음악(시)이다. 모든 것 속에 음악(예술)이 있다. 음악(예술)에는 그 어떤 벽도 존재하지 않는다. 음악(시)은 벽과 경계를 모른다. 음악(시)은 자유이고, 음악(예술)은 무한이다. 예술은 언제나, 새로움 그것이 되어야 한다. 모더니티와 전통의 회통을 목격한다. 근원적인 것 속에서 근본적인 혁신의 에너지를 채굴한다. 국악의 개조가 아니고, 락의 변신이 아니다. 씽씽은 새로운 괴물이다. 단독자이다. 해체하여 지금 존재하지 않지만, 예술의 새로움이 어떻게 창조되는가를 증명해 주는, 사라지지 않는 현재가 되어, 씽씽은 우리 가슴속에서 맥동하고 있다.


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찾아야 할 새로움, 그것, 고갈되었다 오판하고 포기하지 않았던가. 세대별로 비슷비슷한 시들이 넘친다. 신인들에게서 도플갱어를 목격했다고, 젊은 시인들에게 도전 의식이 없다는 말, 역시, 흘러넘친다. 틀렸다. 문단을 지워 버리고 시 바깥을 본다. 다른 곳에서 출현하고 있는 시를 바로 본다. 시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에서, 우리가 외면했던 것에서 탄생한다. 용서와 사랑을 전도시켜 내가 추악한 과거를 망각하고 있는 동안, 우리가 타락하는 동안, 새로운 예술은 시를 압도하면서, 빛나는 성취를 이룩해 냈다. 씽씽과 우한량이 시가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시가 돌아오고 있다.

시는 불온해져야 한다. 다시 새로움을 모색해야 한다. 시는 전통을 탐구하고 혁신해야 한다. 그것 속에 새로운 현대성이 있을 것이다. 오로지 새로움뿐이다. 그것이 시의 숙명이다. 아무것도 보지 말고, 아무것도 듣지 말고 나아가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움을 위해 불타오르자. 시여, 스스로를 부정하라. 돌아보지 말고, 후회하지 말고, 현재를 뚫고 나가는, 돌아오지 않는 '아즈샤라'가 되어라.


시인ㆍ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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