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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맥]실종된 패러다임…난무하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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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단기 처방전에 갇힌 경제
상상·도전·혁신으로 체질개선

[산업의 맥]실종된 패러다임…난무하는 정책 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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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현장에 '처방전'은 넘쳐나는데 '건강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1만달러를 목전에 두고 있다. 구글의 시가총액이 우리나라 GDP의 두 배를 넘나드는 세상이다. 매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수만 페이지의 '정책' 처방전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체질을 바꾸는 '패러다임 '개선은 요원하다.


당장 아픈 곳에 반창고를 붙이는 단기적 분절된 정책이 반복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산업경제를 지배해온 하드파워 시대의 '우등생'이라는 과거의 영광에 갇혀 소프트파워가 주도하는 세상을 뒤쫓기에 급급한 형편이다.


'도구'가 아닌 '체계'가 문명을 갈랐다. 역사적으로 인류의 비약적인 발전은 단순한 기술 발명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이 통째로 진화할 때 일어났다. 메이지유신의 성공은 단순히 서양의 총과 배를 먼저 수입했기 때문이 아니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사무라이 계급을 스스로 해체하고, 서구식 교육과 사법 체계를 도입하는 '사회적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선택했기에 가능했다.


북유럽의 성장을 이끈 '살트셰바덴 협약도 마찬가지다. 1930년대 스웨덴은 극심한 노사 갈등으로 국가적 파산 위기에 직면했으나, 노사정이 5년, 10년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대타협에 합의했다. 이는 단순한 노동 정책이 아니라 '협력과 신뢰'라는 새로운 사회적 관행을 정착시킨 패러다임의 승리였다.


광복 후 유일한 패러다임 전환으로 근대화의 물길을 연 새마을 운동의 본질은 지붕을 개량하는 토목 사업이 아니었다. '근면·자조·협동'이라는 소프트파워로의 대전환이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성공의 기억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정치는 5년 단임제라는 시야에 갇혀 '임기 내 성과'가 나오기만 기다리는 단기 정책에만 매몰돼있다. 교육은 여전히 질문하는 인재보다 정답을 빨리 찍어내는 '추격자형 인재'를 양산한다. 금융은 위험감수가 아니라 위험회피에 급급하다. 사고와 관행, 습관을 바꾸지 않은 채 정책만 쏟아내는 것은 엔진 오일만 갈면서 차가 날아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공지능(AI) 정책' 몇 줄이 아니라, 상상-도전-혁신으로 물 흐르듯 이어지는 패러다임, 즉 전방위적 시스템 진화다.

?

정권마다 산업의 맥이 끊기고 정책의 방향이 뒤집히는 행정으로는 글로벌 트렌드를 리드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될 수 없다. 정권의 명운을 건 정책이 아니라, 정파를 초월한 패러다임의 설정이 우선이다. DJ정부의 창업정책, MB정부의 녹색성장,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 이번 정부의 국가창업시대가 대나무처럼 층층이 분절돼 있다.


독일이 '어젠다 2010'을 통해 고통스러운 노동 개혁을 완수하고 유럽의 환자에서 다시 의사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적 방향성을 유지했던 정치적 결단과 국민적 인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

?대한민국 산업의 맥을 다시 뛰게 하려면 실패를 자산으로 여기는 문화, 담보가 아닌 가치에 투자하는 금융, 규제가 아닌 지원을 고민하는 행정, 그리고 이 모든 것을 5년이 아니라 한 세대 이상 지속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우리는 이미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본 저력이 있는 민족이다. 이제 AI세대를 관통할 뉴 패러다임은 상상을 혁신으로 만드는 도전의 힘, 소프트파워가 강한 나라여야 한다. 중진국의 문턱에서 근면·자조·협동으로 산업경제를 건너온 우리, 이제 상상·도전·혁신을 바탕으로 혁신경제 패러다임을 재설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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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록(KAIST겸임교수,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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