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에 투자하지 않는다."
미국 벤처캐피탈(VC) 업계에 통용되던 불문율이 깨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붐 속에 투자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업계 질서를 재정립하는 분위기다.
블룸버그통신은 16일(현지시간)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알티미터캐피털이 앤스로픽에 2억달러 이상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세쿼이아캐피탈도 앤스로픽의 최신 투자 라운드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알티미터와 세쿼이아 모두 오픈AI에 투자한 바 있다. 세쿼이아는 2021년 오픈AI에 처음 투자한 이후 여러 차례 투자 라운드에 참여했다.
이 같은 흐름은 소수의 최상위 AI 개발사들이 벤처 투자 지형을 재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역사적으로 한 곳을 정해 장기적으로 지원하면서, 이해충돌로 비칠 가능성을 차단하는 전략을 유지했다. 하지만 AI가 기술 투자자들 사이에 과열 경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이러한 기존의 관행은 점점 힘을 잃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변화는 VC를 넘어 빅테크와 대형 자산운용사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아마존,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양사에 투자하는 것을 논의했다. 또 미국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스톤은 오픈AI에 이어 앤스로픽에 대한 지분을 10억달러 규모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오픈AI 투자자이자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파트너인 아부다비의 MGX도 앤스로픽에 수억 달러를 투자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오픈AI에 투자한 코슬라벤처스의 파트너 에단 최는 "오픈AI와 앤스로픽은 우리 생애에서 다시 보기 어려운 세대적 기업(generational companies)"이라며 "그 같은 상황에서 일부 VC들은 이해충돌에 대한 기준을 낮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블룸버그는 경쟁사에 동시에 투자한 VC가 AI 스타트업에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쟁사에 투자한 후원자들이 내부 기밀을 공유하거나, 한 투자처를 다른 투자처보다 우선시할 경우 해당 기업의 이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AI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관련 투자는 더 활발해지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동일한 산업 분야를 공략하는 여러 소규모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픈AI의 주요 투자자인 코슬라벤처스는 코그니션(Cognition), 리플릿(Replit), 러버블(Lovable), 이머전트(Emergent) 등 여러 코딩 관련 AI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비노드 코슬라 코슬라벤처스 창업자는 블룸버그에 이메일로 "우리는 이들 기업이 모두 매우 다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 밖에 세쿼이아 캐피털은 하비(Harvey)를 비롯해 크로스비(Crosby)와 샌드스톤(Sandstone) 등 법률 AI 기업에 투자했다. 앤드리슨 호로위츠도 AI 의료 기록 작성 스타트업인 어브리지에 자금을 투입했다. 이는 앞서 경쟁사인 앰비언스 헬스케어에 투자한 지 몇 년 후에 이뤄진 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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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많은 투자자에게는 여러 AI 기업에 동시에 투자하는 것이 창업자들의 반발 위험을 감수할 만한 선택으로 여겨지고 있다. 멘로벤처스의 디디 다스 파트너는 "포트폴리오에 이미 승자가 있는 상황에서 경쟁사에 투자하려 한다면 그 승자와의 관계를 망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그 대가로 큰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유현석 기자 guspo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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